글로벌

가장 똑똑한 기계들이 바보가 되는 날

중국의 6월은 언제나 숨이 막힌다. 1,335만 명의 고등학생들이 동시에 깊은 숨을 들이마시는 달이기 때문이다. 가오카오(高考), 이 두 글자가 주는 무게감은 한국의 수능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수시라는 것이 있고, 재수라는 것도 그나마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중국에서 가오카오는 말 그대로 ‘한 번의 기회’다. 특히 소도시나 농촌 출신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부유한 가정 아이들처럼 해외 유학이라는 플랜 B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의 인맥으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가오카오, 그 하나의 시험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런데 올해 6월, 중국의 AI 회사들이 흥미로운 결정을 내렸다. 알리바바의 치웬, 텐센트의 위안바오, 문샷의 키미 같은 인기 AI 챗봇들이 가오카오 기간 동안 이미지 인식 기능을 일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화면에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메시지가 떴다. “대학입학시험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시험 기간 중에는 이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기계들이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순간이니까.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2025년의 현실이다. AI가 문제를 푸는 속도는 인간을 압도하지만, 그 똑똑함이 오히려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가이드라인도 이런 딜레마를 보여준다. “학교는 어린 나이부터 AI 인재를 양성해야 하지만, 학생들은 숙제와 시험에서 AI가 생성한 답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마치 “불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월요일 오후, 치웬에게 시험지 사진을 보여주며 문제 해결을 요청하면 “6월 7일부터 10일까지 시험 시간 동안 서비스가 일시적으로 중단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바이트댄스의 더우바오는 더 직설적이다. “업로드된 사진이 규정에 위반됩니다.”

가오카오가 이토록 엄격하게 관리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시험이 단순한 대학 입시를 넘어 중국 사회의 계층 이동을 결정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다양한 평가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처럼 학생부종합전형 같은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가오카오 점수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1,335만 명. 이 숫자를 조금 다르게 표현해보자.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학생들이 동시에 같은 시험을 본다고 상상해보라. 그중에서도 특히 농촌과 소도시 출신 학생들에게는 이 시험이 문자 그대로 ‘인생역전’의 기회다. 실패하면? 한 해를 더 공부하거나, 아니면 평생 그 결과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조치가 ‘공정성’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AI 챗봇 기능을 차단하는 것도, 시험장에서 전자기기를 금지하는 것도, 모두 모든 학생들에게 동등한 조건을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정말 공정할까?

베이징의 한 사립학교 학생은 이미 몇 년 전부터 AI 튜터의 도움을 받아 공부해왔을 것이다. 반면 구이저우성의 산간 지역 학생은 인터넷 연결조차 불안정한 환경에서 공부한다. 시험 당일 AI 기능을 차단하는 것만으로 과연 이런 격차가 해소될까?

중국 정부의 고민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AI 강국을 꿈꾸며 어린 학생들부터 인공지능 교육을 시키고 싶어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교육 제도와 평가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이는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교육계가 직면한 근본적인 딜레마다.

AI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학생들이 숙제를 할 때, 연구자들이 논문을 쓸 때, 심지어 작가들이 소설을 쓸 때도 AI의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유독 시험에서만 AI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6월 7일부터 10일까지, 중국 전역의 AI 챗봇들이 일시적으로 ‘바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1,335만 명의 학생들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야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 아닐까.

물론 시험이 끝나면 다시 AI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치웬도, 위안바오도, 키미도 다시 똑똑해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며칠 동안은 오직 인간의 지능만이 평가받았다. 아마도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순수함일지도 모른다.

가오카오가 끝나고 나면, 합격한 학생들 중 상당수는 AI 관련 전공을 택할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갈 미래의 AI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더 똑똑해질까, 아니면 더 현명해질까? 그 답은 아마도 몇 년 후에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만, 꺼진 화면 앞에서 연필을 잡은 1,335만 명의 손이 떨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플래텀 중국 연구소장 / 편견 없는 시각으로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현지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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