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게임에서 보스를 거의 잡을 뻔한 그 순간, 광고가 뜬다.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이상하게 관심이 가는 상품이 나타난다. 우연일까?
그 찰나에 벌어진 일을 알면 소름이 돋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매가 열리고, 당신에 대한 모든 정보가 순식간에 분석되고, 승자가 정해진다. 당신은 ‘선택’한다. 모든 과정이 당신이 인지할 수도 없는 시간에 끝난다.
12일 서울 강남구 몰로코 오피스에서 열린 미디어 브리핑은 이런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보고서였다.
“12년 전에 AI 비즈니스 회사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안익진 CEO는 과거를 회상했다. 2013년, AI가 아직 공상과학소설의 소재에 가까웠던 시절 이야기다.
지금 와서 보면 그들이 옳았다. 2020년 1,000만 달러에서 2024년 20억 달러로, 4년 만에 200배 성장. 전 세계 2천 개 이상의 플랫폼과 18만 개의 브랜드가 이들의 생태계에 편입되었고, 총 거래액만 60조원에 달한다. 네이버와 쿠팡이 경쟁하는 그 규모에 맞먹는 에코시스템이 조용히 형성된 것이다.
안 CEO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에서 먼저 만들어진 판도라TV보다 유튜브가, 좋은 제품을 만든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 기술보다 중요한 건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AI 성장 엔진이었다는 얘기다. 지금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에 500조 이상의 가치를 기여하고 있다.
전동환 CTO가 공개한 숫자는 충격적이었다. 몰로코는 피크 타임에 초당 600만 건 이상의 광고 기회를 검토한다. 서울시 전체 인구를 2초 만에 개인화하여 분석할 수 있는 규모다.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는데 한 달 뒤에 또 다른 소개팅이 잡혀 있다면?”라는 전 CTO의 비유가 핵심이다. 지금 당장 좋은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릴 것인가. 이 딜레마를 AI가 실시간으로 해결한다.
그들의 기술 진화는 흥미롭다. 로지스틱 회귀분석에서 시작해 딥러닝, 트랜스포머, TPU까지. 그리고 이제 ‘MOLOCO NEXT’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앱에서 웹으로, 웹에서 CTV로. “App-to-App”에서 “Any-to-Any”로의 전환이다.
의외의 사실도 드러났다. 국내 커머스 플랫폼에서 웹이 70%, 앱이 30%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 모바일 중심 시대라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웹이 압도적이었다.
안재균 한국 지사장이 공개한 데이터가 우리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국내 사용자들은 하루 평균 5.6~6.8개의 쇼핑앱을 사용하며, 하루 4시간 이상을 쇼핑앱에서 보낸다.
더 놀라운 건 오픈 인터넷과 월드가든의 실제 비중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지배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오픈 인터넷에서 66%의 시간을 보내고 월드가든은 34%에 불과하다. 그리고 성과도 압도적으로 다르다. 쇼핑앱 ROAS는 1,603%, 게임앱은 567% 증가를 기록했다.
이현채 커머스 미디어 아태지역 성장 전략팀 총괄은 개인적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싱가포르에서 평소 먹던 매운 라면을 사러 갔다가 “매운 맛 짜장 라면” 광고를 보고 전혀 다른 제품을 구매하게 된 경험. 이것이 바로 커머스 미디어의 힘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명확한 역할 분담이 있었다. 브랜드 인지는 소셜에서, 전환은 검색에서. 하지만 지금은 무신사 같은 커머스 플랫폼에서 상품 발견부터 구매까지 한 번에 이루어진다. 미국에서는 2027년 전체 온라인 광고비의 21.8%가 커머스 미디어로 갈 것으로 예상되고, 한국에서는 향후 5년간 500% 성장이 전망된다.
성과는 더욱 극적이다. 한 고객사는 광고 집행 후 일매출이 42% 증가했고, ROAS는 4,525%를 기록했다. 또 다른 고객사는 셀아웃이 1,500% 증가했다. A사는 광고주 리텐션율 95%, C사는 ROAS 2배 향상이라는 구체적 성과를 달성했다.
결국 변한 건 인간이다. 취향도, 습관도, 욕망까지도 알고리즘이 더 정확히 예측한다. 매운 맛 짜장 라면을 고른 그 순간, 자유의지라고 믿었지만 실은 이미 계산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안익진 CEO가 제시한 “인터넷 경제를 위한 확장 엔진”이라는 비전이 현실이 되고 있다. 국내 상위 20개 커머스 플랫폼 중 60% 이상이 이미 몰로코의 고객이다. CTV 시장만 해도 560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하고 있다.
매일 4시간씩 쇼핑앱을 들여다보는 동안, 찰나마다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투명해져간다. 그것이 편의인지 감시인지, 혁신인지 통제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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