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 25년 독점을 뒤흔드는 대변혁의 시작
“구글링”이라는 단어가 언젠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다. 키워드 몇 개 입력하고 파란색 링크를 클릭하던 그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 대신 AI에게 마치 친구에게 묻듯 자연스럽게 질문하고 바로 답을 얻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 변화가 워낙 빨라서 검색의 왕이었던 구글조차 허둥지둥 따라가고 있고, 수조 달러짜리 새로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2022년 11월 ChatGPT가 나타나면서 시작되었다. 오픈AI가 만든 이 대화형 AI는 출시 두 달 만에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다른 앱들이 몇 년에 걸쳐 이룬 일을 순식간에 해낸 것이다. 하지만 진짜 충격적인 것은 숫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검색 습관 자체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구글에 검색해볼게”가 “ChatGPT에 물어볼게”로 바뀌기 시작했다.
구글은 바로 위기감을 느꼈다. 1998년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으로 검색 시장을 접수한 이후 25년간 누려온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구글의 검색 방식은 혁명적이었다. 콘텐츠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웹사이트의 링크 수까지 고려해 신뢰도를 측정했다. 하지만 이제 AI는 아예 게임의 룰 자체를 바꿔버렸다.
링크에서 대화로: 검색 패러다임의 전환
새로운 검색의 핵심은 더 이상 ‘링크’가 아니라 ‘AI 요약’이다. 예전엔 구글이 수많은 링크를 보여주며 “여기서 알아서 찾아가세요”였다면, 이제 AI는 인터넷 전체를 뒤져서 완성된 답을 바로 제공한다. 사용자는 더 이상 여러 사이트를 클릭할 필요가 없어졌다.
“20대 커플이 주말에 부산에서 데이트할 만한 곳 있나? 예산은 15만원 정도야” 이렇게 물으면, AI가 온갖 블로그와 여행 사이트 정보를 수집해서 맞춤형 답변을 만들어준다. 사용자는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으니 굳이 원본 사이트들을 방문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바로 ‘제로클릭’ 현상이다. AI가 정보의 ‘가두리 양식장’ 역할을 하면서 모든 정보 소비가 AI 플랫폼 안에서만 끝나버린다. 정보를 만든 웹사이트나 언론사는? 트래픽도 없고 광고 수익도 없다. 사용자는 편하지만, 정보 생태계 전체로 보면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구글도 이 변화를 느끼고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2023년 5월부터 ‘AI 오버뷰’를 테스트해서 지금은 100개국 이상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쓰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이걸 “오랜 시간 동안 검색에 가한 가장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라고 말했다.
빅테크 전쟁과 한국의 선택
이런 글로벌 변화 속에서 구글만이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 전체가 차세대 검색 패권을 두고 격돌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4년 9월 빙에 생성형 검색 결과를 도입했고, 메타도 자체 AI 검색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퍼플렉시티(Perplexity) 같은 스타트업들이다. 실리콘밸리의 “빠르게 움직여서 기존 것을 다 부숴버리자”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아예 “링크를 건너뛰세요(Skip the links)”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웹사이트 방문 없이 AI가 바로 완성된 답을 주겠다는 의미이다. 사용자에게는 편리하지만, 정보를 만든 원본 사이트들에게는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기업이 차세대 정보 검색의 패권을 쥐게 될 것이며, 여기에는 수조 달러 규모의 글로벌 광고 시장이 걸려 있다. 기존 검색광고는 사용자가 특정 키워드를 검색할 때 관련 광고를 노출하는 방식이었지만, AI 검색에서는 대화 맥락과 사용자 의도에 맞춘 개인화된 광고가 가능해진다.
국내 검색 1위 네이버도 생성형 AI로 글로벌 빅테크들에 맞서고 있다. 27년간 쌓아온 한국 사용자 데이터와 독자적인 검색 시스템을 무기로 ‘K-AI 검색’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통합검색에 도입된 ‘AI 브리핑’은 출시 초기 대비 노출이 3배 확대되며 사용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고, 연내 20% 수준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네이버의 차별점은 블로그, 카페, 지식iN 등 한국형 인터넷 생태계와 쇼핑·지도·페이 등 버티컬 서비스를 AI 검색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내년 중 도입 예정인 ‘AI 탭’은 연속 대화를 통해 사용자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여행지 추천부터 숙박 예약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진정한 의미의 AI 에이전트를 목표로 한다.
정부도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오늘(15일) 네이버클라우드 AI 혁신센터장 출신인 하정우를 AI미래기획수석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AI 검색 시대를 맞아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민간 전문가에게 국가 AI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긴다는 의미다.
하정우 신임 수석이 강조해온 ‘소버린 AI’ 개념은 이번 기사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소버린 AI는 각 국가가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로 그 나라의 제도, 문화, 역사, 가치관을 정확히 이해하는 AI를 개발한다는 의미로, 미국 중심 빅테크 기업이 주도하는 AI 기술에서 벗어나 기술 주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가 해외 경쟁사 모델보다 6,500배 많은 순수 한국 데이터로 학습된 것도 이러한 철학의 반영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현재 5-6위권인 한국의 AI 기술 경쟁력을 세계 3대 강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100조원 규모의 국가 AI 투자가 예고됐다. 구글 스칼라 기준 약 1만 피인용 수를 기록하고 세계적 AI 학회에 4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하정우 수석이 이 전략의 설계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AI 검색 시대의 가장 큰 과제는 여전히 콘텐츠 창작자들과의 관계 정립이다. 네이버는 ‘AI 하이라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AI 브리핑에 인용된 창작자 콘텐츠를 배지로 강조해 원본 콘텐츠로의 유입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지상파 3사와 신문협회의 법적 대응이 이어지는 등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두리 양식장의 딜레마
하지만 이런 편리함 뒤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숨어 있다. AI 검색의 문제점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025년 6월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2022년 4월부터 2025년 4월까지 3년간 유기 검색 트래픽이 55% 급감했고, 허프포스트와 워싱턴포스트도 같은 기간 50% 이상의 트래픽이 줄었다. 블룸버그는 패션·여행·라이프스타일 등 25개 중소 웹사이트의 트래픽이 구글 AI 검색 도입 이후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국내 상황도 유사하다. 한 인터넷 매체의 최근 3개월 간 Top Referrals 데이터를 보면 국내외 포털이 1, 2위를 차지한 가운데, 3위와 4위를 ChatGPT와 Perplexity가 차지했다. AI 검색 도구들이 기존 검색 포털에 이어 주요 트래픽 유입원으로 부상한 것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서비스들이 네이버 다음으로 중요한 트래픽 소스가 된 것은 검색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다.
핵심은 ‘정보 접근성의 역설’이다. AI가 정보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지만, 동시에 정보 생산자들을 고립시키는 가두리 양식장을 만들고 있다. 사용자는 원하는 답을 즉시 얻지만, 그 답을 만들어낸 수많은 웹사이트와 언론사들은 트래픽도, 수익도 잃는 구조다. 결국 양질의 정보를 생산할 동력이 사라지면, AI가 학습할 새로운 정보 자체가 고갈될 수 있다.
돈의 흐름이 바뀐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결국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정보 생태계는 ‘클릭 → 광고 → 수익’이라는 단순한 구조로 돌아갔다. 하지만 AI가 클릭을 대신하면서 이 수익 구조가 무너졌다. 새로운 돈의 흐름을 만들지 않으면 정보 생산 자체가 지속 불가능해진다.
해외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다. 오픈AI는 뉴욕타임즈에 연간 5천만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이는 뉴욕타임즈 전체 매출(약 24억 달러)의 2% 수준으로, 아직 미미하지만 새로운 수익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글은 프랑스 언론사들과 2억 유로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이는 선의가 아니라 비즈니스 판단이다. 양질의 데이터 없이는 AI가 경쟁력을 잃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지상파 3사와 신문협회의 법적 대응은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유럽의 디지털서비스법, 호주의 뉴스 미디어 교섭법처럼 플랫폼이 콘텐츠 제공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강제하는 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AI 검색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가트너에 따르면 2028년까지 일상적인 업무 결정의 15% 이상이 에이전틱 AI를 통해 자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며, 2030년에는 개인 비서 수준의 AI 에이전트가 보편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의 검색은 단순한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 동영상, 심지어 실시간 영상 분석까지 포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술의 편리함과 정보 생태계의 지속가능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경제적 압박과 법적 대응, 시장의 자정 작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모델이 최종적으로 정착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AI 플랫폼과 콘텐츠 생산자 간의 갈등이 협력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아니면 더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질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여러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규제 당국이 얼마나 강력하게 개입할지, 사용자들이 정보 생태계의 건전성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실제로 작동할지는 모두 지켜봐야 할 문제들이다. 한국의 경우 네이버의 한국형 생태계 전략이 글로벌 경쟁에서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을지, 정부의 제도적 대응이 적절한 수준을 찾을 수 있을지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AI 검색 시대를 준비하려면 다음과 같은 변화들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AI 플랫폼과 언론사 간 라이선스 계약 체결 현황, 각국 정부의 AI 규제법 제정 동향, 네이버와 구글 등 주요 플랫폼의 AI 검색 노출 비중 변화, 콘텐츠 창작자들의 새로운 수익 모델 실험 결과, 사용자들의 검색 행동 패턴 변화 속도.
확실한 것은 이 변화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복합적 조정 과정이라는 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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