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검색창 앞의 줄
새벽 2시, 검색창에 ‘파기환송’이라는 단어를 입력한다. 破棄還送. 한자를 아는 세대다. 깨뜨려 돌려보낸다는 뜻은 안다. 그러나 법원이 무엇을 깨뜨리고 어디로 돌려보낸다는 것인지는 모른다. 1심인가, 2심인가. 재판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건가.
‘파면’을 검색한다. 罷免. 면직시킨다. 알고는 있다. 그러나 탄핵과 파면은 어떻게 다른가. ‘각하’를 검색한다. 却下. 물리친다. 그렇다면 ‘기각’은? 棄却. 버려서 물리친다. 차이가 뭔가. 네 개의 창이 브라우저에 떠 있다. 모두 한자어지만, 모두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법률 용어다.
단어는 안다. 맥락을 모른다. 2025년 12월, 구글코리아가 발표한 검색어 통계에 따르면 이런 법률 용어들이 ‘뜻 검색’ 상위권을 차지했다. 새벽 2시, 검색창 앞에 앉은 사람은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뉴스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를 찾아본다. 10년 전이라면 아는 척이라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모르면 바로 검색한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모르면 속고, 속으면 손해를 본다. 법률 용어를 검색하는 행위는 시민의식의 발현이 아니라 자기방어의 시작이다.
검색창 안의 계급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방법’이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 중 하나였다. ‘상생페이백 사용 방법’도 상위권이다. 정부 지원금은 신청하는 사람만 받는다. TV 뉴스를 보다가 “아, 그런 게 있었구나” 하고 넘기면 끝이다. 검색하는 사람만이 혜택을 얻는다.
1990년대 말 IMF 시절, 사람들은 은행 문 앞에 줄을 섰다. 2025년, 우리는 검색창 앞에 줄을 선다. 보이지 않는 줄이다. 디지털 격차는 이제 단순히 인터넷 접속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검색할 줄 아는가, 검색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다.
‘유심 교체 방법’, ‘KT 소액 결제 차단 방법’을 검색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켰다. 검색하지 않은 사람들은 피해를 입었다. 국가도, 기업도 보호해주지 않는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검색은 무기다. 그리고 모든 무기가 그렇듯, 이것도 사용법을 아는 사람만이 휘두를 수 있다.
알고리즘에게 묻는 인생
‘챗GPT’,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AI 툴 검색이 급증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해 의존으로 끝난다. 이메일 초안을 작성하고, 회의록을 요약하고, 아이디어를 정리한다. AI가 주는 답을 자신의 생각처럼 사용한다.
문제는 AI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조차 AI에게 묻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생각의 외주화. 판단의 아웃소싱. 검색이 편리함을 넘어 사고의 회로를 바꾸고 있다.
더 이상 문제를 스스로 풀지 않는다. 누군가 이미 풀어놓은 답을 찾는다. ‘~하는 방법’이라는 검색어가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방법을 찾는 것과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전자를 선택했다.
우리를 보는 시선을 검색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미국 검색어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을 배경으로 소니가 제작한 영화다. 외국인이 한국을 칭찬하는 유튜브 영상이 인기를 끈다. K-콘텐츠가 해외에서 성공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환호. 왜 한국인은 타인의 인정에 이토록 예민한가.
승인 욕구가 아니다. 생존 전략이다. 작은 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인정받는 것뿐이다. 수출 의존도 80%의 경제구조에서, 외부의 시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국이 소재가 되고, 한국 배우가 출연하고, 한국 음악이 흐르는 콘텐츠를 세계가 소비해야 우리가 살 수 있다.
그래서 검색한다. 뉴욕타임스가 뭐라고 썼는지, 빌보드 순위는 몇 위인지,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에서 몇 위를 기록했는지. K-콘텐츠를 검색하는 행위에는 콘텐츠 자체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외부의 평가를 확인하려는 강박이 섞여 있다.
내재화되지 못한 자존감은 끊임없는 확인을 필요로 한다.
도파민 경제
‘쫀득쿠키’ 레시피의 검색 급증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버터 100g, 설탕 80g, 달걀 1개. 5천 원이면 20개를 만들 수 있다. 카페에서 한 개에 3천 원 하는 쿠키를 사는 대신, 집에서 만든다. 비용은 4분의 1로 줄이면서 SNS에 올릴 수 있는 ‘트렌디함’은 유지한다.
‘두바이 초콜릿’, ‘크보빵’, ‘메롱바’. 바이럴 간식들의 공통점은 희소성이다.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가 된다. 줄을 서서 사거나, 품절과 재입고를 확인하거나, 아예 직접 만들어낸다. 소비가 아니라 사냥이다.
김난도는 이를 ‘토스트 아웃’이라고 명명했다. 번아웃을 넘어 타버린 상태.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이 찾는 것은 확실하고 빠른 쾌감이다. ‘칠 가이’ 밈, ‘아이스크림 챌린지’, ‘APT.’ 댄스. 모두 3분 안에 소비되고 공유되고 잊힌다. 그리고 다음 검색이 시작된다.
도파민도 이제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자원이다.
검색하지 않은 것들
2025년 검색어 통계에 ‘공동체’는 없다. ‘연대’도 없다. ‘이웃’도 없다. ‘함께’보다 ‘혼자’가, ‘우리’보다 ‘나’가 더 많이 검색됐을 것이다. ‘드뮤어룩’, ‘영포티룩’, ‘보헤미안룩’. 모두 개인의 취향과 스타일이다.
검색은 개인의 행위다. 손안의 화면에 홀로 질문을 던지고, 알고리즘이 답을 건넨다. 그 과정에 타인은 없다.
상하이를 검색한 사람의 피드와 호치민을 검색한 사람의 피드는 교차하지 않는다. 챗GPT를 쓰는 사람과 제미나이를 쓰는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답을 받는다. 같은 시대를 살지만, 각자의 검색창 안에서 다른 세계를 본다.
2025년 12월의 검색창
검색은 확인이다. ‘파기환송 정확한 의미’, ‘2025년 검색어 순위’, ‘김난도 토스트 아웃’. 모든 것을 확인하고, 인용하고, 정확하려고 노력한다.
검색은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더 의존적으로 만들었는가. 더 연결되게 했는가. 아니면 더 고립되게 했는가.
2025년의 검색어들이 보여주는 것은 혼자서 방법을 찾고, 혼자서 위안받고, 혼자서 버티는 사람들이다.
내일도 검색창은 열린다. 질문의 방식은 같다. 고립도 같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