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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게임이 끝난 후, 남은 질문들

The Thinking Game / Google DeepMind

The Thinking Game」은 84분짜리 다큐멘터리다. 구글 딥마인드가 알파폴드 5주년을 기념해 자사 유튜브 채널에 무료로 공개했다.

무료다. 광고도 없다. 누구나 볼 수 있다.

영화는 데미스 허사비스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체스 신동이었다. 게임을 만들었다. 뇌과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AI 회사를 차렸다.

각 단계가 다음 단계를 설명한다. 체스는 전략을 가르쳤고, 게임은 시스템 사고를 키웠고, 뇌과학은 지능의 본질을 보게 했다. 그래서 AGI를 만들게 됐다는 논리.

깔끔하다. 너무 깔끔하다.

현실에서 커리어는 이렇게 선형적이지 않다. 우연, 실패, 방향 전환, 운이 섞인다. 하지만 성공한 후에는 모든 게 필연처럼 재배치된다. 영화는 이미 재배치된 버전을 보여준다.

알파고가 바둑을 이겼다. 알파제로는 인간의 가르침 없이 체스를 학습했다. 영화는 이것을 “생각하는 기계”의 증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게임은 특수한 환경이다. 규칙이 완전히 정해져 있고, 승패가 명확하고, 변수가 제한적이고, 보상이 즉각적이다. 현실은 다르다. 규칙이 불완전하고, 목표가 모호하고, 변수가 무한하고, 보상이 지연되거나 아예 없다.

게임에서의 압도적 성능이 일반 지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이 거리를 좁혀 보이게 만든다.

알파폴드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에서 압도적 점수를 받는다. 연구실 사람들이 환호한다. “50년 난제 해결”이라는 자막이 뜬다. 인터뷰이들이 “생물학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맞다. 알파폴드는 대단하다. 단백질의 3D 구조를 DNA 서열만으로 예측한다. 구조생물학자들이 수개월 걸리던 일을 몇 분 만에 한다.

하지만 “단백질 구조 예측”과 “신약 개발” 사이엔 여전히 긴 거리가 있다. 구조를 안다고 약이 되는 게 아니다. 독성이 있는지, 체내에서 어떻게 대사되는지, 실제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이 모든 단계를 거쳐야 한다. 후보 물질이 실제 승인받는 비율은 10% 정도다.

알파폴드는 첫 단계를 극적으로 개선했다. 획기적이다. 하지만 나머지 단계는 그대로 남았다. 영화는 첫 단계의 성공과 최종 결과 사이의 간격을 압축한다.

영화에 거의 나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딥마인드가 구글에 인수된 이후의 과정. 2018년 Project Maven을 둘러싼 내부 논란. AI 윤리 연구자들과의 갈등. 퇴사한 핵심 연구자들의 이야기.

84분에 5년을 담을 순 없다. 모든 다큐는 선택한다. 문제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빼느냐다.

이 영화는 성공만 담았다. 실패, 갈등, 윤리적 딜레마는 최소화됐다. 연구실 내부의 토론 장면도 나오지만, 실제로 조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주제들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순수한 과학자들이 인류를 위해 일한다”는 이미지를 만든다.

영화 곳곳에서 “AGI”라는 단어가 나온다. 허사비스는 말한다. “지능을 해결하면, 나머지 모든 것도 해결할 수 있다.”

이 문장엔 몇 가지 전제가 숨어 있다. 지능은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 지능이 해결되면 다른 문제들도 해결된다는 것. 해결된 세상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것.

세 가지 모두 자명하지 않다.

지능의 정의부터 모호하다. 학계에서도 합의된 정의가 없다. AGI의 기준은 더 불분명하다. ‘해결’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해결한다는 건가. 누구에게 문제이고, 누구에게 해결인가.

영화는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않는다. AGI를 당연히 좋은 것, 추구해야 할 것으로 제시한다.

영화 크레딧을 보면 흥미롭다. 구글 딥마인드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됐다. 촬영 접근, 인터뷰 대상자 섭외, 자료 제공이 모두 회사를 통해 이뤄졌을 것이다.

이건 나쁜 게 아니다. 내부 접근 없이는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다. 하지만 결과물의 성격을 규정한다. 이건 딥마인드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딥마인드가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희망적으로 끝난다. AGI가 인류의 난제들을 풀 것이라는 비전. 아름다운 그림이다.

하지만 누가 그 AGI를 만드는가. 누가 소유하는가. 누가 사용 방식을 결정하는가. 이익은 누구에게 가고, 위험은 누구에게 가는가.

이런 질문들은 영화 밖에 남겨졌다.

「The Thinking Game」은 잘 만든 영화다. 기술적 성취를 감동적으로 담았고, 복잡한 과학을 이해하기 쉽게 풀었고, 연구자들의 열정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다만 이게 전부라고 믿으면 안 된다. 모든 서사 뒤엔 편집이 있고, 모든 편집 뒤엔 선택이 있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댓글 (1)

  1. 123 아바타
    123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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