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개→10개→5개… ‘국가대표 AI’ 최종 선정 D-데이, 게임사까지 뛰어든 전방위 경쟁
15개 팀에서 10개로, 그리고 곧 5개로. 한국 AI 생태계의 판도를 바꿀 ‘국가대표 AI’ 최종 선정을 앞두고 업계가 숨죽이고 있다. 8월 말 발표될 최종 5개 팀 선정 결과는 단순한 프로젝트 선정을 넘어, 향후 10년간 한국 AI 산업의 주도권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번 경쟁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와 SK텔레콤, KT 등 통신사뿐만 아니라 엔씨소프트, 크래프톤 등 게임사들까지 합류하며 ‘전방위 AI 패권 경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사들의 강력한 도전
이번 경쟁에서 가장 주목받는 변화는 게임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엔씨소프트는 자회사 NC AI로 독자 컨소시엄을 구성해 정면승부를 선언했고, 크래프톤은 SK텔레콤 컨소시엄의 핵심 파트너로 참여했다.
NC AI는 국내 게임사 최초로 자체 개발한 대규모언어모델(LLM) ‘바르코(VARCO)’를 보유하고 있다. 바르코는 현재 게임 시나리오 자동 생성, 아트 제작, 디지털 휴먼 생성 등 실무에 직접 활용되고 있으며, ‘바르코 스튜디오’와 ‘AI 평가모델 바르코 저지 LLM’으로 생태계를 확장 중이다. 8월 캐나다 밴쿠버 ‘SIGGRAPH 2025’를 시작으로 외부 라이선스 사업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크래프톤은 누적 1000억 원을 AI 분야에 투입해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게임 속 상호작용캐릭터(CPC) 기술을 인조이에 적용했고 배틀그라운드로의 확장도 검토 중이다. 올해 세계 최고 권위의 AI 학회인 ICLR과 ICML에 제출한 논문 10편이 채택되는 등 학술적 성과도 인정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사들이 이제 기술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로 전환하고 있다”며 “AI를 게임에만 가두지 않고 IP 기반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이 뚜렷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빅테크와 통신사의 차별화 전략
대기업들 역시 강력한 컨소시엄을 구축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실리콘밸리 영상 멀티모달 AI 스타트업 트웰브랩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여기에 서울대, 포항공대, 고려대, 한양대, KAIST 등 주요 대학들도 참여했다. 기존 하이퍼클로바X의 텍스트·음성 처리 능력에 트웰브랩스의 비전 AI 기술을 결합해 완전한 멀티모달 AI를 구현한다는 전략이다.
SK텔레콤은 자체 AI ‘에이닷 3.1’을 기반으로 모빌리티 데이터 전문 기업 포티투닷, NPU 개발사 리벨리온, 검색 특화 AI 에이전트 업체 라이너, 그리고 크래프톤까지 영입해 강력한 진영을 구축했다.
KT는 자체 AI ‘믿음 2.0’을 바탕으로 크라우드웍스, 솔트룩스, 경찰청, 고려대 의료원, 글로벌 AI학습 플랫폼 매스프레소 등 18개 기관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 밖에도 LG AI연구원, 카카오, 업스테이지, 모티프테크놀로지스, 코난테크놀로지, KAIST가 각자의 강점을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데이터가 승부를 가른다
이번 경쟁에서 핵심 차별화 요소는 ‘데이터’다. KT 컨소시엄에 참여한 크라우드웍스는 30만 건 이상의 의료 데이터와 저작권이 확보된 국내 도서 데이터, 그리고 자사 ‘A1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를 통한 다양한 멀티모달 데이터셋을 보유하고 있다.
크라우드웍스 김우승 대표는 “AI 모델의 경쟁력은 전문가가 만든 고품질 데이터에서 시작된다”며 “국가대표급 데이터 전문성을 바탕으로 데이터 중심의 AI 기술 자립 실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K-AI’ 브랜드의 탄생
정부는 이번 선정을 국가 브랜드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표는 6개월 이내 발표된 글로벌 AI(오픈AI, 구글 등) 대비 95% 이상의 성능을 갖춘 범용 인공지능을 한국의 힘으로 개발하고, 그 결과를 오픈소스로 전환해 국내 AI 산업 생태계 전반에 파급효과를 내는 것이다.
최종 5개 팀으로 선정된 컨소시엄은 ‘K-AI’, ‘K-AI 개발사’ 등의 브랜드를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각 컨소시엄마다 5~10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어 최종적으로 다수의 ‘국가대표 AI 업체’들이 탄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027년까지 5개 팀을 2개 팀으로 재압축해 최종 ‘국가대표 AI’를 선정할 계획이며, 이들이 K-팝, K-뷰티에 이은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이유
벤처캐피털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거운 이유는 정부 지원 규모가 상당할 뿐만 아니라 ‘K-AI’ 브랜드라는 국가적 인증이 주는 마케팅 효과까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약 2,1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대규모 GPU 클러스터, 방대한 데이터셋, 전문 인력 지원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실제로 업스테이지는 2020년 설립 이후 ‘AI 올림픽’으로 불리는 캐글 대회에서 아마존,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빅테크를 제치고 금메달을 휩쓸며 기술력을 입증해왔다. 시리즈A 316억 원, 시리즈B 1000억 원 등 총 1316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것도 시장의 기대를 보여준다.
더불어 최근 자체 개발한 추론 특화 언어모델 ‘Solar Pro 2’가 인공지능 분석 전문기관 ArtificialAnalysis.ai의 종합 벤치마크 평가에서 58점을 기록하며 20개 주요 AI 모델 중 12위에 올라 주목받았다. 이는 한국에서 개발된 AI 모델이 글로벌 평가에서 상위권에 진입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모티프테크놀로지스 역시 멀티모달 AI 기술력을 인정받아 투자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들이 최종 선정될 경우 밸류에이션은 기하급수적으로 뛸 것으로 예상된다.
선정 기준과 향후 과정
과기정통부는 기술력뿐만 아니라 실용성과 상용화 가능성을 중시하고 있다. 단순히 논문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AI 모델을 만들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네이버클라우드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모델 성능 그 자체보다 국민 누구나 활용 가능한 AI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실용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현 정부의 AI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하정우 AI 미래기획수석이 네이버클라우드 출신이라는 점도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정부는 최종 5개 팀을 선정할 때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균형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과 상용화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8월 말, 새로운 판이 열린다
최종 발표를 앞두고 각 팀들은 대면 브리핑을 통해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어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게임사들의 참여로 AI 산업의 경계가 확장되면서, 기존 IT·통신업계를 넘어 콘텐츠 산업 전반으로 파급효과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정되지 못한 5개 팀에게는 다른 기회가 주어질지도 관심사다. 정부가 별도의 후속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할 가능성도 있고, 민간 투자자들이 ‘국가대표 AI’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고 기술력을 인정해 투자할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게임사들의 참여로 AI 개발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며 “선정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과정 자체가 한국 AI 생태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8월 말, 한국 AI 산업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다. 15개에서 시작된 경쟁이 5개로 압축되는 순간, 과연 누가 한국 AI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인공으로 선정될까. 빅테크부터 게임사까지, 산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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