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하나의 회사, 일곱 개의 시장

(c) Fortune

2007년 11월, 포천지 표지. 샌프란시스코 토스카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마피아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페이팔 마피아’라는 제목이 붙었다.

사진 속 인물들의 이름을 보면 놀랍다. 피터 틸, 리드 호프먼, 스티브 첸, 채드 헐리, 제러미 스토플먼, 자웨드 카림… 사진을 찍던 2007년 당시 이들은 이미 유튜브, 링크드인, 옐프를 만든 사람들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촬영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 역시 페이팔 출신이었다.

한 회사 출신이 이렇게 많은 거대 기업을 만든 전례가 없었다. 2007년 포천지 기사는 이들이 만든 기업의 가치를 합산해 약 300억 달러로 추정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이들이 만든 회사의 영역은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2000년, 현금 전쟁

2000년 초,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컨피니티(후에 페이팔)와 일론 머스크의 X.com. 두 회사는 똑같은 일을 했다. 온라인 결제.

고객 한 명을 유치하기 위해 20달러씩 현금을 뿌렸다. 가입만 하면 돈을 줬다. 친구를 초대하면 또 돈을 줬다. 두 회사 모두 현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닷컴 버블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2000년 3월, 선택의 여지 없이 합병했다. 틸은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머스크가 CEO가 됐다. 곧 문화 충돌이 시작됐다.

당시 페이팔 엔지니어였던 제러미 스토플먼은 후에 이렇게 회상했다. “경쟁사였기 때문에 어색했습니다. 그 어색함이 완전한 기능 장애와 전쟁으로 변했어요. 문화는 정말 지적인 자존심 싸움이었고,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X.com 출신 직원 대부분이 떠나거나 해고됐다. 2000년 9월, 머스크가 휴가를 간 사이 이사회는 그를 해임했다. 틸이 다시 CEO가 됐다. 머스크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그게 휴가의 문제죠.”

2002년 페이팔은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매각됐다. 하지만 이베이의 전통적인 기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4년 안에 초기 직원 50명 중 38명이 떠났다.

색스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고향에서 쫓겨났고 그들이 우리 신전을 불태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 곳곳으로 흩어졌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각자의 길

페이팔을 떠난 사람들이 만든 회사를 나열하면 이렇다.

2002년,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설립했다. 우주. 그는 페이팔 매각 직후 친구 아데오 레시에게 미래 계획을 묻는 질문을 받고 NASA 웹사이트를 찾았다. 화성 유인 탐사 계획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2001년부터 그는 “인류를 행성 간 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2002년, 호프먼은 링크드인을 설립했다. 직업 네트워크. 그는 페이팔에서 모든 외부 관계를 담당했던 사람이었다. 결제 인프라, 비즈니스 개발, 정부 관계, 법률 업무. 그는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이미 하고 있었다.

2003년, 틸은 팔란티어를 설립했다. 정부 데이터 분석. 페이팔에서 사기 탐지 시스템을 만든 경험이 있었다. FBI가 그 시스템에 관심을 보였다.

2004년, 스토플먼과 러셀 심몬스가 옐프를 설립했다. 지역 리뷰. 스토플먼은 페이팔에서 엔지니어링 부사장이었다.

2005년, 스티브 첸, 채드 헐리, 자웨드 카림이 유튜브를 설립했다. 동영상. 첸은 페이팔과 이베이에서 엔지니어링 매니저였다. 헐리는 페이팔의 웹 디자이너였다. 카림은 페이팔 엔지니어였다.

2008년, 데이비드 색스가 얌머를 설립했다. 기업용 소셜네트워크. 그는 페이팔에서 COO였다. 페이팔의 팀 협업 문제를 경험했고, 그 교훈을 얌머에 적용했다.

2012년, 막스 레브친이 어펌을 설립했다. 분할 결제. 그는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CTO였다. 페이팔에서 배운 온라인 사기 방지 기술을 어펌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적용했다.

영역이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서로의 지원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도왔다.

틸은 2005년 파운더스 펀드를 설립했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 2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호프먼의 링크드인 초기 투자자가 됐다. 색스의 Geni.com에 15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07년 포천지 기사에 따르면, 파운더스 펀드의 29명 직원 중 5명이 페이팔 출신이었다.

레브친은 스토플먼의 옐프에 100만 달러를 투자했고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시퀘이아 캐피털에도 돈을 맡겼는데, 시퀘이아는 페이팔 출신 로엘로프 보타가 파트너로 있었다.

2007년 포천지 기사는 이렇게 썼다. “그들은 돈이나 조언이 필요할 때 서로에게 전화한다. 그리고 둘 다 필요할 때는 틸에게 간다. 그가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역은 겹치지 않았지만, 돈과 조언은 서로 흘렀다.

채용과 문화

2007년 포천지 기사는 페이팔의 채용 기준을 상세히 다뤘다. 틸과 레브친은 특정한 유형의 사람을 찾고 있었다.

경쟁적이고, 책을 많이 읽고, 다국어를 구사하고, 무엇보다 수학에 능숙한 사람. 워커홀릭이어야 했다. MBA는 안 됐다. 컨설턴트도 안 됐다.

레브친은 한 인터뷰 지원자를 떨어뜨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재미로 뭘 하냐고 물었어요. 그는 ‘농구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고 했죠. ‘이 사람은 채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서 만난 농구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였거든요.”

포천지 기사는 이렇게 썼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

틸이 면접에서 던지는 질문이 있었다.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당신과 동의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페이팔 초기 임원이었던 키스 라보이스는 2022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기본 원칙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합의된 아이디어를 피하고, 독립적으로 견해를 도출하는 것이죠.”

생존 경험

2000년 합병 이후 페이팔은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해커 공격, 사기, 규제 당국의 압박,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적대감, 그리고 이베이의 경쟁.

틸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스타트업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주요 문제를 거의 다 겪었다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모든 유형의 문제를 다루는 경험을 쌓았죠.”

이베이가 자체 결제 서비스로 페이팔과 경쟁하기 시작했을 때, 페이팔 팀은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색스의 표현으로는 이베이가 “계산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베이는 크고 느렸다. 페이팔은 작고 민첩해야 했다.

위키피디아는 페이팔 마피아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페이팔 창업자들은 직원들 사이의 긴밀한 사회적 유대를 장려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페이팔을 떠난 후에도 계속 서로 신뢰하고 지원했다. 극도로 경쟁적인 환경과 많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공동의 투쟁은 전직 직원들 사이에 강하고 지속적인 동지애에 기여했다.”

대조

구글 출신들은 어땠나?

2018년부터 5년간 전 구글 직원들은 1,231개의 회사를 설립했다. 총 22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21개가 유니콘이 됐다.

하지만 대부분 AI, 광고 기술, 검색이다. 앤트로픽(다리오 아모데이), 퍼플렉시티(아라빈드 스리니바스), 미스트랄AI(아서 멘쉬) – 모두 AI다. 구글에서 했던 일의 연장이다.

페이팔 출신들은 달랐다. 우주, 동영상, 직업 네트워크, 지역 리뷰, 데이터 분석, 기업용 소셜네트워크, 분할 결제. 페이팔과 상관없는 영역들이다.

우정

2025년 3월, 레브친은 세마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머스크, 틸, 색스와의 우정은 정치보다 깊습니다. 우리는 토론하고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오랫동안 쉬거나 잠도 거의 자지 않고 하나의 도가니에서 함께 끓어올랐어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과 조언을 구하고, 때로는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틸은 2007년 당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네트워크’로 성취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을 나는 주저합니다. 나는 네트워크보다 우정이라는 단어를 선호합니다. 결정적인 부분은 매우 깊은 우정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2007년 포천지 사진으로 돌아간다.

2000년 그들은 20달러를 뿌리며 같은 일을 놓고 싸웠다. 합병하지 않으면 둘 다 죽을 상황이었다.

7년 후, 그들이 만든 회사는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우주, 동영상, 직업 네트워크, 지역 리뷰, 데이터 분석, 기업용 소셜네트워크, 분할 결제.

왜 그랬을까?

확실한 것은 이것이다. 그들은 경쟁의 소모성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지원했다. 그들은 각자 원래부터 관심 있던 영역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겹치지 않았다.

2007년 사진 속 그들은 웃고 있다. 이제 그들은 서로 싸울 이유가 없었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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