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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 언어가 되는 시대, 한국 로봇의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좌)와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우)가 컴업 2025 퓨처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c)플래텀

2025년은 피지컬 AI의 해였다. 엔비디아 젠슨 황이 GPU 기술 콘퍼런스(GTC)에서 ‘피지컬 AI’를 언급하고, APEC에서 치킨 회동을 한 뒤 한국 증시는 그 가능성을 반영했다. 로보티즈의 주가는 1월 2일 종가 대비 현재 11.17배 올랐다. 상장 회사로서는 이례적인 성장이다.

12월 10일 컴업 2025에서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와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가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류 대표는 투자자에서 창업자로 변신한 지 1년 만에 회사를 수천억 원 밸류로 키운 인물이다.

2018년 상장한 로보티즈와 2024년 창업한 리얼월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준비된 기업과 도전하는 스타트업. 두 대표가 나눈 대화는 한국 로봇 산업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증권시장이 말하는 변화

변화를 가장 먼저 포착한 것은 증권시장이었다. 시장이 로봇 회사를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김 대표는 “과거에는 로보티즈가 FA(공장자동화) 회사로 분류됐다면 이제는 AI 회사로 봅니다.”

류 대표가 로보티즈를 파트너로 점찍은 이유가 있었다. 로보티즈는 사실 준비된 기업이었다. AI 소프트웨어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액추에이터 공급사. 논문을 보면 대부분 로보티즈 액추에이터를 사용한다. 그전까지는 로봇 연구자들의 제한적인 수요만 있었지만, 이제는 AI에 투자하는 빅테크와 대기업들이 액추에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변화는 1년 반 전부터 감지됐다. 주문량이 늘었지만 공장 증설은 쉽지 않았다. CNC 머신 같은 장비는 주문 후 1년이 지나야 도착한다. 빠른 매출 성장은 어려웠지만, 대신 양질의 고객을 선택할 수 있었고 흑자 전환도 가능했다. 로봇 개발 회사 중 흑자를 내는 곳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이 시장의 신뢰를 얻은 요인이 됐다.

류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퓨처플레이 대표로서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느낀 불안감. 한국에 세계적인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회사가 없다면, 결국 투자한 로보틱스와 AI 회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LLM 분야는 오픈AI와 구글이 치고 나갔지만, 로봇 쪽은 아직 무주공산이었다. 그리고 로보티즈 같은 하드웨어 회사와 연합군을 만들면 승산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고철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고철에 닿는 생명.” 김 대표가 AI와 로봇의 만남을 설명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그전까지 로봇은 공장 안에서만 존재했다. 수학적 모델 기반의 룰 베이스 시스템으로, 정해진 환경에서 정해진 일만 할 수 있었다.

산업용 로봇 시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숫자가 있다. 산업용 로봇 회사 1등인 화낙의 매출은 8조 원, 시장 점유율은 11%. 역으로 계산하면 전체 시장은 100조 원도 안 된다. 매출 100조 원을 훨씬 넘는 현대자동차와 비교하면, 로봇이 얼마나 제한적으로 쓰였는지 알 수 있다.

“로봇을 하는 사람들의 오랜 바람이었어요. 고철에 생명을 넣어줄 수 있는 무언가. 그게 없으면 로봇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AI가 나오면서 그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류 대표가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생명이다. 비전 랭귀지 액션 모델(VLA). LLM이 언어를 이해하고 언어로 답한다면, VLA는 시각 정보를 이해하고, 언어를 이해하고, 행동으로 답한다. 보고, 듣고, 움직이는 모델. 구조가 LLM보다 훨씬 복잡할 수밖에 없다.

난점은 두 가지다. 첫째, 어떤 구조가 로봇을 가장 잘 작동시키는지 아직 인류가 모른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둘째, 데이터를 웹에서 얻을 수 없다. 텍스트 데이터는 웹 크롤링으로 모을 수 있지만, 로봇이 보고 듣고 행동하는 데이터는 직접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가 경쟁력이다

그래서 김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간다. 12월 9일에는 부총리를, 10일에는 차관급 인사를 만났다. 땅과 지원을 약속받았다. 목적은 명확하다. 데이터 확보.

“로봇을 구매하는 기업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게 가격이 아니에요. 몇 시간의 작업 데이터를 갖고 있느냐입니다. 최소 천 시간, 만 시간 이상을 공급하는 회사들도 있는데,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죠.”

데이터 확보의 핵심은 인건비다. 테슬라는 하루 6시간 로봇 작업 데이터를 만드는 데 500달러를 지불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같은 돈으로 한 달을 일할 수 있다. 30분의 1이다. 중국의 1인당 GDP가 1만 2~3천 달러인 상황에서, 더 낮은 인건비로 양질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이것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우즈베키스탄 정부 관계자들은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 물류가 약한 나라에서 무엇을 만든다는 건지. “데이터를 만든다고 설명했는데, 그 개념부터 설명해야 했어요.”

예상 밖의 시장, 서비스 산업

류 대표의 시장 조사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다. 처음에는 공장에서 휴머노이드가 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제조업체들과 접촉했다. 하지만 가장 뜨거운 반응은 서비스 산업에서 나왔다. 편의점, 호텔, 물류센터.

“생각해보니 당연했습니다. 제조업은 공장을 베트남이나 인도로 옮길 수 있어요. 하지만 물류센터는 옮길 수 없습니다. 편의점이나 호텔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런 곳들이 사람이 가장 많이 필요한 곳입니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물류센터에서 사람이 직접 상품을 찾아 박스에 담는다. 편의점 진열도, 호텔 객실 관리도 사람의 손을 거친다. 이동할 수 없는 시설에서, 반복적이지만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곳. 바로 그곳이 휴머노이드 시장이었다.

일본 편의점 로손과 통신사 KDDI, 한국의 대형 호텔 체인과 물류 회사들이 리얼월드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내년 3월 공개 예정인 리얼월드의 모델은 엔비디의 그루트, 피지컬 인텔리전스의 파이 제로보다 나은 점들이 있을 것이라고 류 대표는 말했다.

현장에서 들은 말이 인상적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뽑기가 너무 힘듭니다.” 기술이 시장을 밀어붙이는 테크놀로지 푸시가 아니라, 시장이 기술을 끌어당기는 마켓풀 상황이었다.

행동이 언어가 되는 시대

김 대표는 10년 전 휴머노이드를 만들었지만 상업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잠정 중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로봇을 하는 사람 중에 휴머노이드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AI 개발자들도 챗GPT 이전에는 상업화를 가장 의심했죠. 그런데 현실이 됐습니다.”

류 대표가 강조한 것은 LLM과의 근본적 차이였다. “LLM의 기본 언어는 영어입니다. 한국어 데이터는 영어나 중국어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습니다. 하지만 VLA의 기본 언어는 행동입니다. 행동 데이터는 전 세계가 공용으로 쓸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공통 언어는 제조다. 제조 DNA를 가진 동아시아 국가들이 로보틱스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이유다. 언어 데이터의 한계를 벗어나, 행동 데이터의 시대로 들어서면 한국에 기회가 열린다는 전망이다. 젠슨 황이 한국을 피지컬 AI의 특별한 기회로 언급한 것도 이 맥락이었다.

한국의 밸류, 글로벌의 갭

류 대표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리얼월드는 현재 시드 2 라운드를 진행 중이며, 1년 차 기업으로서는 한국에서 전례 없는 수천 억 원의 높은 기업가치로 투자를 받고 있다.

하지만 창업 2년차인 미국의 피지컬 인텔리전스는 최근 구글 알파벳에서 투자받으며 약 8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한국에서는 과분하게 큰 밸류인데, 미국 회사와 비교하면 여전히 작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국 회사가 글로벌 챔피언이 되길 바라잖아요. 이 자본시장의 갭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가 큰 숙제입니다.”

김 대표의 조언은 현실적이었다. “빅테크와 1대 1로 붙으려 하지 마세요. 우리의 장점을 활용하고 우리만의 역할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자금이 많아도 빅테크와는 상대할 수 없는 규모니까요.”

류 대표는 올해 엔비디아, 아마존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와 협업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습니다. 왜 한국 1년 차 스타트업에게?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들이 손을 내민 건 리얼월드가 아니라 대한민국 생태계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로보틱스, AI 회사들에게 글로벌 플레이어와 협업할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대기업들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리얼월드의 시드 2 라운드에는 일본과 한국의 협력 파트너 기업들이 대거 참여했다. 로손, KDDI 같은 실제 현장 적용 파트너들이 투자자가 되는 구조. 비즈니스와 투자가 하나로 연결되는 형태다.

초심과 역할

김 대표는 후배 창업자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자금이 많다고 해서 투자 회사로 변하지 마세요. AI 회사로 상장한 곳들이 투자 회사가 되는 걸 많이 봤습니다. 초심을 잃지 마세요. 둘째, 우리만의 역할을 찾으세요. 빅테크와의 경쟁이자 협업입니다. 현실적인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류 대표는 용기를 강조했다. “글로벌 플레이를 하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김 대표가 최근 테슬라 FSD(완전자율주행)로 출퇴근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한 번도 핸들을 잡지 않고 집까지 갔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가치의 80%가 휴머노이드에서 나올 거라고 했죠.” 피지컬 AI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였다.

10년 뒤 휴머노이드 산업에서 한국 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가. 컴업 2025 객석에 던진 마지막 질문에, 형광봉은 동의를 뜻하는 파란색이 압도적이었다.

행동이 언어가 되는 시대, 제조 DNA가 경쟁력이 되는 시장. 한국 로봇 생태계의 기회는 이제 막 시작됐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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