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 Vera Rubin 공개, 삼성·LG 신임 CEO 데뷔…한국 혁신상 60% 석권
“세탁기에 AI가 정말 필요한가(Do we really need AI in washing machines)?”
기즈모도의 레이먼드 웡이 CES 2026 개막을 앞두고 던진 질문이다. 2년 연속 AI가 전시장을 뒤덮으면서, 이제 업계는 ‘AI를 넣었다’가 아니라 ‘AI가 무엇을 해결하는가’를 증명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1월 6일(현지시간) 개막하는 CES 2026은 160개국 4,300여 개 기업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를 포함해 13개 베뉴에서 나흘간 진행된다. 올해 슬로건은 ‘혁신가의 등장(Innovators Show Up)’. 테크크런치는 “2026년 AI는 실용성(pragmatism)의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디어 데이: 신임 CEO들의 글로벌 데뷔전
공식 개막 전 미디어 데이(1월 4~5일)부터 빅테크들의 경쟁이 불붙었다. 삼성전자 노태문 CEO와 LG전자 류재철 CEO가 나란히 글로벌 무대에 데뷔했다. 지난해 말 취임한 두 수장 모두 AI를 핵심 성장 동력으로 내세웠다.
삼성전자는 윈 호텔에 역대 최대 규모인 약 4,628㎡(1,400평) 단독 전시관을 꾸렸다. ‘당신의 AI 일상 동반자(Your Companion to AI Living)’를 주제로 TV, 가전, 모바일이 끊김 없이 연결되는 생태계를 선보인다. 20년 넘게 삼성이 사용하던 LVCC 최대 규모 공간(3,368㎡)은 중국 TCL이 물려받았다.
LG전자는 ‘공감지능(Affectionate Intelligence)’을 전면에 내걸고 ‘가사 해방(Zero Labor Home)’ 시대를 선언했다. 류재철 CEO는 “기기 간 초연결을 넘어 AI가 실질적인 가사 노동을 수행해 고객에게 가치 있는 시간을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엔비디아, 차세대 AI 플랫폼 ‘Vera Rubin’ 공개
엔비디아 젠슨 황 CEO는 폰텐블로 호텔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특별 발표에서 차세대 AI 플랫폼 ‘Vera Rubin’을 공식 발표했다. 천문학자 베라 루빈의 이름을 딴 이 아키텍처는 6종의 칩으로 구성된다. Rubin GPU, Vera CPU, NVLink 6 Switch, ConnectX-9 SuperNIC, BlueField-4 DPU, Spectrum-6 Ethernet Switch가 하나의 시스템을 이룬다.
핵심은 성능과 효율이다. Rubin GPU는 3,360억 개 트랜지스터로 구성되며, 블랙웰 대비 추론 성능 5배, 훈련 성능 3.5배를 제공한다. 토큰당 비용은 최대 10분의 1로 줄어든다. 젠슨 황은 “Rubin은 AI 컴퓨팅 수요가 폭증하는 지금, 정확히 필요한 시점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Vera Rubin은 이미 풀 프로덕션에 들어갔으며, 2026년 하반기 파트너사 제품 출시가 예정돼 있다. AWS, Google Cloud, Microsoft, OCI가 첫 배포 대상이며, Anthropic, OpenAI, Meta, xAI 등 주요 AI 연구소들도 Rubin 플랫폼 도입을 예고했다.
피지컬 AI와 로보틱스의 부상
CES 2026의 또 다른 키워드는 ‘피지컬 AI(Physical AI)’다. 화면 속 챗봇을 넘어, 물리적 세계에서 행동하는 AI를 말한다. 로봇과 자율주행차의 두뇌가 되는 기술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전동식 모델을 최초로 실물 시연했다. 퍼포먼스 중심이었던 유압식 모델과 달리, 산업 현장에서 인간과 협업하는 상용화 능력을 강조했다. 정의선 회장을 비롯한 그룹 주요 경영진이 직접 로보틱스 비전을 발표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LG전자는 가사 도우미 로봇 ‘LG 클로이드(CLOiD)’를 공개했다. 양팔에 각각 5개 손가락을 갖춘 이 로봇은 키 높이를 105cm에서 143cm까지 스스로 조절하며, 약 87cm 길이의 팔로 바닥부터 높은 선반까지 물건을 집을 수 있다. 양팔은 7 자유도(DoF)로 움직이며, 손가락도 각각 관절을 갖춰 빨래 정리부터 식기 세척까지 섬세한 동작이 가능하다.
올해 로보틱스 분야 출품작은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는 중국 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전체 34개 휴머노이드 출품 기업 중 20개(59%)가 중국 기업이다.

한국, 혁신상 60% 석권…스타트업이 주역
한국 기업들은 CES 혁신상을 휩쓸었다. 코트라에 따르면 전체 284개 수상 기업 중 168개(약 60%)가 한국 기업이다. 3년 연속 최다 수상국이며, 2위 미국(54개)의 세 배가 넘는다. 최고 혁신상(Best of Innovation) 30개 중 15개를 한국이 차지했으며, 이 중 10개는 스타트업이 수상했다.
특히 AI 부문 최고 혁신상 3개를 한국 기업이 독식했다. 시티파이브(CityFive)는 실시간 대규모 멀티모달 추론이 가능한 웨어러블 AI 인터페이스로, 딥퓨전AI는 레이더만으로 360도 인지를 구현한 자율주행 솔루션으로, 두산로보틱스는 로봇팔과 자율이동로봇(AMR)을 결합한 ‘스캔앤고’로 각각 수상했다.
수상 기업의 80% 이상인 137개사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CTA의 존 T. 켈리 부사장은 한국을 ‘혁신의 밀도(innovation density)’라는 키워드로 요약했다. 전체 참가 기업 수는 약 853개사로, 미국(1,476개), 중국(942개)에 이어 3위다.
지역에서 세계로: 부산·대전·관악의 도전
대기업만의 무대가 아니다. 지역 혁신 클러스터들이 CES를 글로벌 진출 발판으로 삼고 있다. 산업부와 중기부는 38개 기관, 470개 기업이 참여하는 역대 최대 규모 통합한국관을 구축했다. 부스 디자인과 로고를 통일해 ‘코리아 프리미엄’ 마케팅을 강화한다.
부산시는 ‘Team Busan 2.0’ 브랜드로 해양·물류 스타트업을 집중 전시하고, 대전시는 유레카 파크에 과학기술 기반 스타트업 단체관을 꾸렸다. 서울 관악구는 3년 연속 독자 파빌리온을 운영하며 서울대 연계 딥테크 스타트업을 소개한다.
섹터별 하이라이트
디스플레이 — 삼성과 LG의 TV 전쟁이 뜨겁다. 삼성은 QD-OLED 패널로 최대 4,500니트 피크 밝기를 구현했고, LG는 전원 외 모든 연결이 무선인 ‘Wallpaper OLED W6’를 공개했다. LG는 27인치 720Hz OLED 게이밍 패널도 선보인다.
모빌리티 — 소니 혼다 모빌리티의 ‘아필라(Afeela)’가 실물 전시된다. 현대차의 모듈형 이동 플랫폼 ‘모베드(MobED)’는 로보틱스 부문 최고 혁신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1분기 양산을 시작한다.
뷰티테크 — K-뷰티의 기술 혁신도 조명받는다. 아모레퍼시픽, APR, 한국콜마 등이 ‘Lab-to-Life’ 콘셉트로 개인화된 뷰티 솔루션을 선보인다.
남은 질문
CES 무용론도 여전하다. 애플·구글·메타 같은 빅테크가 불참하고, 발표 제품 중 상당수가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올해 참가 기업 수도 전년(약 4,800개) 대비 500여 개 감소했다. 중국 기업의 비자 승인 지연과 부스 선구매 축소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CES 2026은 AI가 ‘실험실의 기술’에서 ‘산업과 일상의 도구’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보여준다. 기즈모도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AI를 넣는 것이 아니라, AI가 어떤 문제를 풀어주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160개국에서 모인 4,300개 기업이 나흘간 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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