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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분해되고, 재조합된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가 12일 컴업 2025 퓨처토크 세션에서 발표하고 있다 (c)플래텀

농기구 전문가가 고연봉 직업이 된다. 중장비를 아는 사람, 공장에서 일해본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 AI 시대에 현장 경험이 무기가 된다. AI가 업무를 쪼개면 시장이 다시 묶는다. 화이트칼라가 아니라 블루칼라가 새 직업의 주인공이다.

12월 12일 컴업 2025에서 손재권 더밀크 대표가 “아직 세상에 없지만 곧 생길 직업”을 소개했다.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더밀크는 국경을 넘나드는 리서치 미디어다. 손 대표는 젠슨 황, 샘 알트만, 퍼플렉시티 CEO를 직접 인터뷰하며 실리콘밸리 현장을 취재해왔다.

손 대표는 말했다. “3년 전에 LLM(대규모 언어모델)이 온다고 했을 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드리는 새로운 직업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일자리는 해체되고 있다

일자리(job)가 일(work)과 자리(position)로 분리되고 있다. AI가 직업 자체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업무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재무분석가를 예로 들었다. 데이터 수집, 보고서 작성, 재무 모델링, 고객 미팅, 전략 제안. 한 사람이 다섯 가지 업무를 한다. 이 중 데이터 수집과 보고서 작성은 AI로 자동화된다. 주니어가 하던 일이 사라진다.

“지금 신입 일자리 시장이 축소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인턴들이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어요. 주니어 업무가 AI로 대체되니까 기업들이 뽑을 이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회계사들이 시위하고 있다. 정부에 “수요 예측을 왜 못했느냐”고 항의한다. “앞으로 변호사, 관세사도 시위할 겁니다. 전문직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어요.”

MIT는 최근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AI 에이전트 현황을 집계하는 ‘아이스버그 지수’를 만들었다. 지금 보이는 일자리 감소는 2.2%에 불과하다. 나머지 11.7%는 AI에 노출되어 있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현재 경제 지표가 측정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손 대표는 일자리 개념 자체를 재정의했다. “일자리는 일과 자리의 합성어죠. AI로 인해서 일자리가 분해되고 있는 겁니다. 일은 일이고 자리는 자리예요. 일은 분리되고 있고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2016년 3월에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알파고 모멘트

손 대표는 개인적 경험을 공유했다. “2016년 포시즌스 호텔에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취재했어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죠. 진짜 충격이었어요.”

2026년 3월은 알파고 모멘트 10주년이다. 알파고 대국 이후 이세돌은 은퇴했다. 그는 다시 태어나면 바둑은 즐기기만 할 거라고 이야기 한다.

손 대표는 모든 사람이 이세돌 모멘트를 겪는다고 말했다. “나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나를 알아야 돼요. AI도 중요하지만 나를 알아야 됩니다. 나의 한계를 알지 못하면 AI를 절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일자리는 재조합된다

하지만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인터넷이 나왔을 때 웹 디자이너, 유튜버, 인플루언서가 생겼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앱 개발자, 모바일 마케터가 생겼다. AI라는 더 큰 것이 나타났다. 새로운 직업이 탄생한다.

“일자리는 리모델링됩니다. 해체되고 분리되고 다시 조합됩니다. 재조합이 되는 거죠.”

왜 다시 묶이는가. AI가 업무를 나누면 조율이 안 된다. “누군가 해야 돼요. 인간이 해야 돼요. AI 결과물이 막 나와도 누가 책임지지 않아요. 누군가 검증해야 돼요.”

시장이 네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효율성 검증. 둘째, 책임성. 셋째, 신뢰성. 넷째, 창의성과 방향 설정. “이거는 시장 원리예요. 당위가 아닙니다. 시장 원리에 따라서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는 거예요.”

이미지=손재권 대표 발표 장표

재조합은 세 가지 패턴으로 일어난다.

첫째, 인간의 고유성과 결합한다. HR 담당자, 심리상담사, 조직 컨설턴트가 해체된다. 각각의 업무가 나눠지고 다시 합쳐진다. 새로운 직업이 탄생한다. 이름은 ‘휴먼 다이나믹스 전문가’.

둘째, AI 협업과 결합한다. 에이전트를 조율하고 설계하고 훈련하는 일. “AI 오케스트레이터는 고연봉 직업이 됩니다. 이것을 다 알아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입니다. 아마 임원급으로 올 겁니다.”

셋째, 기존과 신규가 결합한다. 변호사의 판례 해석과 고객 상담은 인간이 한다. AI 법률 리서치 검증, 계약서 초안 편집, 법률 시스템 훈련은 새로운 업무다. 합쳐서 ‘AI 법률 큐레이터’가 탄생한다.

손 대표는 분야별 전문성을 강조했다. “농기구 전문가가 고연봉 직업입니다. 농기구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화이트칼라들은 농기구를 모릅니다. 현장 노동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직업을 가질 수가 없는 거예요. 농기구를 아는 사람, 중장비를 아는 사람, 공장에서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 여기에 AI가 붙어서 새로운 직업이 나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리가 아닌 일

손 대표는 한국의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는 일자리를 얘기할 때 일보다는 자리를 봤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커리어, 공무원, 직급, 승진, 정년 보장. 지금도 우리 머릿속에는 그게 있습니다.”

미국 대형 IT기업은 채용할 때 업무를 중심으로 제시한다. 한국은 다르다. “대기업에 가고 싶은 것이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대기업 공채 문화가 원래 그렇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할지는 회사 가서 알아. 근데 그게 적성에 안 맞으니까 회사를 그만두는 겁니다.”

체크리스트

손 대표는 AI 시대를 준비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직무 명세서가 아닌 스킬 단위로 학습하라. “요즘 미국 대학생들은 가고 싶은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지원합니다. 이력서는 AI가 걸러내거든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난 당신 회사를 이렇게 설계했다’고 보여주는 겁니다.” 직무가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둘째, 정답을 찾는 공부가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아라. “AI는 정답을 줍니다. 인간은 문제를 정의해야 합니다.” 암기형 학습이 아니라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셋째, 모든 경험을 스킬 획득 프로젝트로 재정의하라. “수업, 인턴, 공모전을 기술 단위로 재정의하세요. 이것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단순한 이력이 아니라 역량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도메인 전문성을 깊게 파라.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야 됩니다. 팔란티어 주식을 사면서 왜 팔란티어가 무슨 얘기하는지는 안 보나요?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는 ‘남들이 하지 말라는 일을 하라, 남들이 없는 것을 하라’고 얘기합니다.” AI를 활용해 자신만의 분야를 더 깊이 파야 한다.

다섯째, AI가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강화하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 명확하게 소통하는 능력, 효과적으로 협업하는 능력. 이것이 AI 시대의 경쟁력입니다.” 기술보다 본질적 역량이 중요하다.

이미지=손재권 대표 발표 장표

AI는 업무를 쪼갠다. 시장은 다시 묶는다. 그 사이에 새로운 직업이 탄생한다. 농기구 AI 전문가, 로봇 행동 설계사, 에이전트 중개인. 이런 직업이 3년 안에 온다.

자리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일의 시대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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