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첫 번째 일에 대해 생각한다.

서툴렀을 것이다. 슬랙에서 엉뚱한 채널에 메시지를 보내 식은땀을 흘리고, 줌 회의에서 화면 공유 버튼을 찾느라 허둥대고, 선배가 던진 질문에 “확인해보겠습니다”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실수하고, 배우고, 조금씩 나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요즘 피드를 스크롤하면 으레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것. 그런데 읽다 보면 이상하다. 구체적인 것이 없다. 누구의 어떤 일이, 왜, 어떻게. 그런 이야기는 없다. 공포만 있고 설명이 없다.
배움의 시간이 사라지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숫자가 있다. 챗GPT가 나온 뒤 삼 년간, 청년층 일자리 이십일만 개가 사라졌다. 그중 98.6%가 기계에 많이 노출된 업종이었다. 정보서비스업에서 23.8%, 출판업에서 20.4%,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11.2%가 줄었다.
같은 기간 오십 대 일자리는 이십만 개 넘게 늘었다. 놀랍게도 그중 상당수가 기계에 많이 노출된 바로 그 업종에서였다.
건조한 숫자지만, 그 안에 수많은 이력서와 면접과 불합격 통보가 들어 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스무 살에서 스물네 살 사이, 대학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의 실업률이 올라가고 있다. 2018년에서 2019년 사이 5.2%였던 것이 2025년에는 6.2%가 되었다. 같은 기간 대학을 가지 않은 또래들의 실업률은 오히려 내려갔다.
이상한 일이다. 더 오래 공부한 사람이 일자리를 찾기 더 어려워졌다.
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스물두 살에서 스물일곱 살 사이 사람들. 그들의 실업률은 1.7%에서 3.5%로 두 배가 되었다. 금융도, 경영도 비슷하다.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이 전통적으로 첫 번째 명함을 받던 바로 그 곳에서, 문이 닫히고 있다.
한 연구소는 이것을 “전문성의 격변”이라 불렀다. 기계가 잘하는 일이 있다. 자료를 찾고, 초안을 쓰고, 숫자를 정리하고, 정해진 형식의 이메일을 보내는 것. 그런데 그것은 정확히 새내기들이 하던 일이다.
기업들은 여전히 경험 많은 사람을 찾는다. 6년 이상 일한 사람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 줄어든 것은 배우는 자리, 처음 시작하는 자리다.
그래서 묻게 된다. 경험은 어디서 쌓는 것인가. 사다리의 아래 칸이 없는데, 어떻게 위로 올라가는가.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
바르셀로나에 사는 그림쟁이가 말했다. “일이 들어오지 않는다. 업계 전체가 그런 것 같다.”
브루클린에서 그림의 방향을 잡아주는 일을 하던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중 가장 힘든 해다.”
설문 하나.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중 넷 중 하나가 이미 기계 때문에 일감을 잃었다고 답했다. 특히 오래 일해서 값비싼 일을 하던 사람들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이상한 일이다. 보통 경험이 많으면 안전할 것 같은데.
게임과 만화영화를 만들던 한 사람은 이렇게 증언했다. 지난 십 년간 함께 일하던 동료들 중 절반이 떠났다고.
크몽 같은 곳에서 외주 일을 구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특정 분야의 의뢰가 급격히 줄었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에 돈을 내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역설도 있다. 글을 쓰는 프리랜서 열 명 중 여섯 명이 이제 기계를 함께 쓴다.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으면서 동시에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낸다.
예전에는 사진에서 배경을 오려내는 것만 하루 종일 하는 직업이 있었다. 지금은 전화기로 이 초면 끝나는 일이다. 그 일을 하던 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서명은 누가 하는가
기계가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다.
반복되는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은 잘한다. 그런데 세상일이 전부 반복은 아니다. 누군가는 확인을 해야 하고, 결과에 이름을 걸어야 한다.
법을 다루는 일을 보자. 미국에서 2024년 법대를 졸업한 사람들 중 93.4%가 열 달 안에 일자리를 찾았다. 역대 가장 높은 수치다. 기계가 법률 문서를 검토하고 판례를 찾아주는 시대에, 왜 법률가의 일자리는 늘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최종 서명은 사람이 해야 한다. 기계를 만든 회사도 그 결과물이 맞다고 보증하지 않는다. 책임은 언제나 사람의 몫이다.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의사들은 단순한 경우에는 기계와 상담하지만,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기계 사용을 꺼린다. 잘못되었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의 문제 때문이다.
한국의 회계업계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다. 기계가 아무리 정확해져도 회계감사는 수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다. 누군가는 도장을 찍어야 한다. 그 도장의 무게를 기계에게 넘길 수 있을까.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결과에 대해 “기계가 그렇게 말했는데요”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이 올까요?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기계가 백 번 중 백 번 맞추는 날이 오더라도, 그 백 번째가 틀렸을 때의 책임은 기계가 지지 않는다.
숫자를 세는 사람들의 겨울
요즘 회계사 시험에 붙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들린다. 천백오십 명이 합격했는데, 육백 명 가까이가 수습할 곳을 배정받지 못했다. 절반을 넘는다.
빅4라 불리는 대형 회계법인들의 채용 규모는 작년 842명에서 올해 700명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구직자는 천사백 명이 넘는다. 숫자가 맞지 않는다.
뉴스는 기계 탓을 한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도 있다. 몇 년 전 호황기에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 사모펀드나 스타트업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뽑았다. 그런데 이제 떠나는 사람이 없다. 대우가 좋아졌고, 다른 곳의 상황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새로 뽑을 이유가 줄었다.
기계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한 컨설팅 회사는 사무직의 업무 시간 중 사분의 일이 자동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숫자와 문서를 다루는 일에서. 미국의 한 대형 회계법인은 2028년까지 신입 채용을 삼분의 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시험에 붙은 사람 수와 필요한 사람 수가 맞지 않는 일. 그때마다 다른 이유를 댔다. 이번에는 기계가 그 이유가 되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매년 몇 명을 뽑을지 정하는 사람들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는 것. 혹은 보고도 모른 척했다는 것.
혼자서 시작하는 사람들
흥미로운 숫자가 있다. 혼자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의 비율이 2015년에는 다섯 명 중 한 명이었는데, 2024년에는 열 명 중 네 명에 가까워졌다.
그림을 만들어주는 어떤 서비스는 직원 열한 명으로 이억 달러를 벌었다. 이듬해에는 마흔 명으로 오억 달러에 가까워졌다. 외부에서 돈을 받지 않았고, 첫날부터 남는 장사였다.
혼자서도 할 수 있다. 기계가 도와주니까.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른 사람도 혼자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경쟁자가 끝없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기술이 있거나 돈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구나와 싸워야 한다.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것은 방어 장벽도 낮다는 뜻이다. 오늘 내가 만든 것을 내일 누군가 더 잘 만들 수 있다. 애매한 실력으로는 살아남기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기회는 오프라인에 있을지 모른다. 한 연구는 2028년까지 농업 분야 전문직이 삼천만 개 늘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기계가 복잡한 현장에서 몸을 쓰는 일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계 관련 일자리 중 완전히 원격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열에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어딘가에 가야 한다.
화면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자동화하기도 쉽다. 이미 디지털이니까.
뒤집힌 구조
한 연구소는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뒤집힌 피라미드.”
원래 조직은 아래가 넓었다. 새로 온 사람들이 많고, 그들이 배우면서 올라갔다. 위로 갈수록 좁아졌다. 그런데 이제 그 구조가 뒤집히고 있다.
기업들은 여전히 숙련된 사람을 원한다. 다만 그 숙련을 키우는 자리가 필요 없어졌다.
2023년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일 년 뒤에 학위가 필요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현상은 전염병이 퍼지기 전부터,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기 전부터 있었다. 더 깊은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십 년간 대학 교육을 받은 노동 인구가 칠백만에서 천백만 명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그들이 갈 수 있는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연구소는 이렇게 썼다. “문제는 너무 많이 가르친 것이 아니다. 가르친 것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 생각하는 것들
결국 이런 이야기다.
기계가 빼앗는 것은 “경험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찾고, 정리하고, 초안을 쓰고, 기본적인 것들을 분석하는 일. 그것은 정확히 새내기들이 하던 일이다. 배우면서 하던 일.
역설적으로 경험의 값어치는 더 높아진다. 숙련된 사람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았다.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고, 기계의 결과물을 날카롭게 다듬을 수 있는 사람.
문제는 그 경험을 어디서 얻느냐다.
사다리의 아래 칸이 사라지고 있다. 올라가는 법을 배우던 그 자리가.
밤에 가끔 생각한다.
지금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 곧 졸업하는 사람들, 첫 번째 일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쉬운 답은 없다. 다만 이것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예전의 길이 더 이상 같은 곳으로 데려다주지 않는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그 길은 기계가 못하는 곳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 곳에,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화면 밖에.
그런데 한 가지가 더 남는다.
이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학도 알고, 기업도 알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안다. 알면서도 여전히 같은 수의 학생을 뽑고, 같은 것을 가르치고, 같은 수의 합격증을 나눠준다. 그리고 졸업장을 받아든 사람들에게 말한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알아서 적응하라고.
사다리의 아래 칸을 치운 것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는 도구일 뿐이다. 칸을 치운 것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결정의 대가는 결정을 내리지 않은 사람들이 치르고 있다.
이것이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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