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도의 소설 『드래곤 라자』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작중 대마법사 핸드레이크의 말이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내 주관만이 아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각 다른 ‘나’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믿음직한 동료,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선배, 누군가에게는 재수 없는 놈.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된 모습들이 모여 ‘나’를 구성한다.
창업자도 마찬가지다.
창업 초기의 ‘나’는 단순하다. 공동창업자와의 관계가 거의 전부다. 둘이서, 혹은 셋이서. “우리”가 곧 회사였던 시절. 역할 구분이 모호해도 괜찮았다. 누가 대표인지보다 누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때의 창업자는 빌더다. 만드는 사람.
회사가 자라면 관계도 늘어난다. 투자자가 들어온다. 직원이 생긴다. 고객이 붙는다. 투자자 앞에서는 성장을 약속하고, 직원들 앞에서는 비전을 말하고, 고객 앞에서는 문제를 해결한다. 각각이 기대하는 ‘나’가 다르다. 그리고 그 기대들은 충돌한다. 투자자에게 약속한 속도와 팀원들의 지속 가능성. 사업적으로 옳은 피벗과 초기 비전을 믿고 합류한 동료들. 창업자는 매 순간 어떤 ‘나’를 우선할지 선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결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시리즈A 단계까지는 탁월하다. 제품을 만들고, 시장을 찾고, 초기 성장을 이끈다. 하지만 그 이후—조직을 설계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수백 명을 이끄는 일—는 다른 종류의 일이다. 이걸 인정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바통을 넘기는 창업자들이 있다. 빌더로서의 자신이 가장 강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 그 앎이 회사를 더 멀리 데려간다.
엑시트 이후의 경로도 갈린다. 다시 창업하는 사람이 있다. 0에서 1을 만드는 ‘나’를 반복해서 꺼내는 사람들. 그들에게 회사의 완성은 목적지가 아니라 하나의 사이클이다. 투자자로 전향하는 사람도 있다. 창업자들은 이런 투자자를 알아본다. 창업자 출신 액셀러레이터나 투자사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건 그래서다. 아무래도 창업자의 마음을 이해하니까. 투자자가 됐어도 창업자였던 자신이 사라진 건 아니다. 지금의 역할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창업자에게 이중의 의미다. 동시에 여러 역할을 산다는 것. 시간 축 위에서 여러 버전의 자신을 거친다는 것.
창업자는 종종 “변했다”는 말을 듣는다. 초기의 열정적인 빌더가 신중한 경영자가 된다. 모든 것을 직접 하던 사람이 위임을 배운다. 하지만 그게 정말 변한 걸까. 원래 있던 모습이 드러난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변한다 해도 나쁜 건 아니다. 창업 초기부터 엑시트까지 똑같은 사람은 드물다.
핸드레이크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여러 모습 중 무엇이 더 진짜인지 따지지 않았다. 그저 그 모든 것이 그 사람이라고 했다. 창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빌더였던 시절, 조직을 이끌었던 시절, 바통을 넘긴 이후까지. 투자자가 기억하는 모습, 직원이 기억하는 모습, 고객이 기억하는 모습. 그들은 단수가 아니다. 창업자는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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