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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23. 발상의 전환과 실행력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지난 주말 우리 가족 함께 저녁 먹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다섯살 배기 딸이 또 엄마를 도발한다.

: 엄마와 뽀로로에 나오는 ‘루피’가 똑 같은게 뭔지 알어?
엄마: 이쁜거?
: 아니 아니(강하게 부정하며), ‘루피’도 화나면 친구들 한테 “다 집밖으로 나가” 하자나
모두: 매에에~ 매에에~(염소 소리)

아무래도 나의 유머감각(?)을 닮은 것 같다. 아닌가? 아니면 어쩔 수 없고. 하여튼, 딸과 내가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 것 만은 틀림없다. 그런 딸 덕분에 오늘도 웃는다. 이번 글에서는 다소 생뚱맞을 수 있는 세 편의 에피소드를 한번 엮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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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스 커피의 역발상

아이스커피는 얼음에 커피를 넣어 시원하게 먹는 커피이다. 그런데, 마시면 마실 수록 커피 맛은 옅어지고 얼음 맛만 나게 된다. 즉, 첫 맛은 괜찮을지 모르나 뒷맛은 별로이다.

역발상! 반대로 생각해 보자. 진한 아메리카노(또는 에스프레소)를 얼려서 얼음으로 만들자. 그리고 그 얼음에 찬 물을 넣자. 그럼 마시면 마실수록 커피 얼려놓은 얼음이 녹아 커피맛이 진해질 것이다. 첫 맛은 커피 얼음이 덜 녹아 맛이 밋밋할 수 있으나 끝 맛은 진한 커피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런 역발상을 통해 대박난 커피집이 강남 어딘가에 있다고 한다. 짧은 커피 얘기지만 어제 하루 종일 머리속에 신선한 충격으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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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택시기사의 발상의 전환

한번은 제 친구(남경우)가 대전에서 술을 많이 먹고 거나하게 취한 채 택시를 잡고 서울로 올라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머니에 택시비가 고작 10만원 밖에 없는 것이었지요. 일단 택시를 잡아 세운 다음 흥정하기로 마음 먹고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습니다.

“아저씨, 저 10만원 밖에 없는데 서울까지 좀 가실 수 있으세요?”
“일단, 일단 한번 타보시죠”

제 친구는 “일단”이라는 말에 약간 동요가 되었지만 새벽 2시에 다른 방법도 없고, 집엔 반드시 들어가야 되는 관계로 택시에 올라 탔습니다. 택시에서 잠이 들었는데 얼마 후 택시기사가 막 내리라고 했단다. 다른 택시로 갈아타라고.

상황을 파악해 보니, 그 택시기사는 대전 톨게이트 옆에 차를 세워두고 빈 차로 올라가는 서울 택시를 잡고 있었습니다.

“총 10만원 중 내가 5만원 먹을 테니 당신은 빈 택시로 올라가는 것 보다 5만원 받고 이 손님 좀 데라다 주쇼. 서로 Win-Win 아닙니까?”
“뭐 그러시죠”

졸지에 제 친구는 다른 택시로 옮겨져 무사히 서울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답니다.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한 택시기사의 역발상 덕분에 제 친구도, 대전 택시기사도, 빈 차로 올라가려던 서울 택시기사도 다 만족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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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째는 놈과 꼬매는 놈

수술실에 들어선 교수님이 항상 복부 절개를 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찢는 것이었다. 수술을 마친 다음, 뒷 마무리는 너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나가 버리신단다. 그리고, 남은 의사들은 항상 우리 교수님은 생각 보다 더 많이 절개하신다고 투덜되면서 봉합을 하고 했단다. 조금만 찢어도 수술에도 지장없고 봉합하는 시간도 줄이고 좋을 거라며 투덜대더란다.

며칠 후 내 친구가 교수님을 찾아가서 왜 그리 많이 절개하시냐고, 절개하는 기준이 뭐냐고 물었단다. 교수님의 답변이 걸작이다.”꼬매는 놈은 꼬매는 일의 양을 줄일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 그래서는 제대로된 수술을 할 수 가 없어. 그래서 난 환자의 상태를 신경쓰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찢는 거구. 그 이유로 내가 직접 꼬매지 않는 거지.

역시나. 벤처캐피탈에서도 비슷 한 일들이 있다. 투자를 한 사람은 그 회사가 어려워졌을때 냉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몇번 투자실패를 경험해본 사람은 투자건을 소극적,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르는 놈과 수습하는 놈을 구분해서 투자인력을 운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중용도 중요하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교수의 말 그대로 처음 칼을 들고 째는 것이다. 얼마를 째느냐는 전적으로 그 교수의 손에 달려있다. 이것은 벤처캐피탈에서도 명백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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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으로 성공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콜럼버스의 달걀도 뉴턴의 사과도 새로운 발견이라기 보다 발상의 전환이다. 스티브잡스의 아이폰도 기존에 있었지만 거의 사장될뻔한 멀티터치 기술을 잘 융합하여 만든 역발상 같은 작품인 것이고. “왜 평범한 사진을 살 수 있는 곳은 없지?” 라는 생각으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 사진을 판매하는 사이트를 만들어 주식시장 상장도 하고 억만장자가 된 ‘셔터스톡(Shutter Stock’의 ‘존 오린저’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역발상의 근원에는 항상 왜(Why) 라는 질문, 고도의 집중력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이 깔려있다.

역발상으로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더라도 실행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잠재 고객들이 간지러워 하는 부위(Pain Point)를 정확히 긁어주어야 한다. 수술에 집도하는 의사처럼 질병부위를 정확히 절개하여 수술을 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도 해결되고 상처도 빨리 치유가 된다. 그런데 상처부위는 발견했는데 얼마의 깊이로 얼마를 절개해야 되는지 몰라 부들부들 떨고만 있으면 칼도 다른 의사에게 뺐길 뿐더러 환자의 상태도 더 악화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창업자의 자질이 없다.

스타트업의 대표이사는 주로 지르는 스타일이 많고 또 그런 스타일이 창업 초기에 더 적합하다. 그렇다고 그런 결단력, 실행력이 있는 창업자 옆에 아무도 없으면 그것도 완벽히 문제해결을 이루기 힘들다. 그런 대표 옆에는 절개부위를 안전하게 꼬매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CFO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 팀이며 더 크고 완벽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역으로 생각해서 접근하는 역발상도 필요하고, 그런 생각이 확고히 섰다면 그것을 과감히 실행할 수 있는 결단력, 실행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진격하고 저지르는(?) CEO 옆에서 수습해주는 CFO까지 있다면 앞으로 진격하면서 수습도 하는 이상적이며 안정적인 팀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도 주절주절이다. 글의 질이 점점 떨어지지 않나 걱정도 된다. 이게 다 애독자들이 늘어난(?) 탓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이때 다시 한번 외쳐본다. “야! 이희우! 쫄지말라고. 한번 사는 인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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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지난회 보기 

  1. 연재를 시작하며
  2.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3. 벤처캐피탈 입문
  4. 미뤄진 인생계획
  5. 영화투자의 시작
  6. 벤처투자의 기초
  7. 닷컴 그 늪에 빠지다.
  8.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9. 벤처캐피탈과 사주
  10.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11.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12.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13.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14.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
  15. 벤처캐피탈의 자녀 금융교육법
  16. 두 번의 죽을 고비, 그리고 무한 긍정의 힘
  17. 쇼트트랙 넘버3의 행운
  18. 어떻게 살 것인가? 
  19. 벤처캐피탈과 겸손 
  20. 초대받지 못한 파티, 그리고 쫄투의 인연
  21. 창업스쿨을 열다 – 린스타트업 방식의 접근법
  22. 잠깐 쉬어가자
  23. 발상의 전환과 실행력

1997년 KTB 네트워크에서 벤처캐피탈에 입문한 후 현재 코그니티브인베스트먼트를 설립 및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스타트업을 위한 고품격 투자상담 토크쇼 “쫄투! 쫄지말고 투자하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교육에 관심 많아 예비 창업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창업교육 프로그램인 “쫄지마! 창업스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그 동안 플래텀에 연재한 글과 새로운 창업이야기를 담은 ‘쫄지 말고 창업(이콘출판)’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벤처캐피탈, 창업, 스타트업, 기업가정신 등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론 그쪽 분야를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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