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이천으로 가고 있는 차안, 신해철의 음악을 틀었다. 그의 데뷔곡 ‘그대에게’가 흘러 나온다. 흥겹다. 세번 째 곡 ‘내 마음 깊은 곳의 너’가 나올 때 쯤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왜그랬을까? 목이 메여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없었다. 다시 부를려고 했는데 또 그렇다.
잊고 지냈었다. 아마도 십수년은 넘게. 그러다 보니 제목도 가물가물했다. 오늘 들으니 내가 그의 노래를 정말 좋아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을 전공했던 신해철, 왠지 모르게 그의 가사에는 색다른 의미가 담겨있어 즐겨 따라 부르곤 했었지. 오늘 들으니 더 깊고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해철이형. 당신은 나에게도 영웅이며 마왕이었습니다. 잊고 지내서 죄송합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었던 형의 노래를 잊고 지냈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원래 그렇잖아요? 형도 바삐 지냈고 나도 어느덧 배도 나온 중년이 되었거든요. 그러니 너무 뭐라 그러진 마세요.
‘안녕’에서 형이 보여주었던 영어 랩도 새로웠어요. 다시 형의 노래를 들으며 그 랩까지 흥얼거리는 나를 보니 웃음도 나오더군요. 형의 덜 마왕스러운 목소리 분위기도 색다르더군요. 그 당시에 형의 랩도 거의 처음이지 아니었나 생각 드네요.
형이 최근에 JTBC ‘비정상회담’에서 말한 내용에서 또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런데 그 내용이 이미 20년도 전에 형의 ‘나에게 쓰는 편지’에도 고스란히 있더군요. 그래요, 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어요. 난 어땠을까? 나도 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러니 저도 형한테 인정받을 만 하죠?
“흔히 꿈은 이뤄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 안되는 것이 있고, 또한 그 꿈이 행복과 직결된 것은 아니다.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 지에 대해서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꿈을 이룬다는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신해철 @비정상회담에서
그런데, 형. 이별의 순간은 슬프고 가슴 아프지만 형은 왜 이리 작별인사도 없이 가셨나요? 이별을 준비할 마음의 여유를 두고 가셨어야죠? 형만 인생의 과정을 충분히 즐기고 가면 되는 건가요? 인생 이별의 순간을 형이 자발적으로 결정해도 되는 건가요? 이게 너무 밉고 싫어요.
형의 말은 창업하는 친구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다 Exit(투자 회수)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풍토에 그 과정까지 즐기라는 형의 말은 많은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어요. 창업 후 창업자들끼리 맨날 치고 받고 싸우기만 하고, Exit 하고 나면 다시 안보는 그런 스타트업은 설령 성공을 했다고 해도 그 구성원들 입장에선 진정한 행복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랜디 코미사의 ‘승려와 수수께끼’에도 이와 똑 같은 얘기를 했거든요.
“여정 자체가 보상이지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목적지에 도착하려고 하는 것 그게 바로 목적이죠. 그러니 우리에겐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No Time To Waste.”
형의 메시지 잘 기억할께요. 마왕의 카리스마 저승에 가서도 맘껏 부리십시오. 염라대왕 앞에서도 쫄지 않는 모습 보여주시구요. 이승에서 형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부디 편히 잠드소서.
마지막으로 형이 형에게 쓴 편지를 실어 봅니다. 나도 나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서 말이에요.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호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youtube http://www.youtube.com/watch?v=mxGloaTYl8Y]
신해철-민물장어의 꿈(99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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