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르샤바르다나 키케리의 죽음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생존은 성공보다 먼저다. 살아있어야 꿈도 꿀 수 있다. 죽은 자는 꿈을 꾸지 못한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이제 자신의 건강을 창업 아이템만큼 소중히 여겨야 할 때다. 그것이 진정한 성공의 첫걸음이다.
정신건강이 신체 건강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관리 영역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벤처캐피탈은 창업자의 건강 상태도 투자 포인트로 삼아야 한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가 번아웃으로 쓰러진다면, 그 투자는 바닷속에 가라앉은 배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나무는 뿌리가 깊다. 뿌리 없는 나무는 첫 번째 폭풍에 쓰러진다. 창업자들의 뿌리는 건강이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 그것이 없으면 모든 성공은 허상이 된다. 잠시 빛나다 사라지는 별똥별처럼. 깊은 뿌리를 내린 나무는 때로는 성장이 더디더라도 백 년, 천 년을 산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창업자가 이끄는 기업만이 오래 살아남는다.
2025년 4월, 미국 워싱턴주 뉴캐슬에서 인도계 로봇 스타트업 창업자 하르샤바르다나 키케리가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회사 홀로월드는 코로나19로 폐업했다. 가족과 함께 세상을 등진 그는 몰아치는 재정적·심리적 압박을 이기지 못했다.
이는 불행히도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2023년 인도 이커머스 기업 에피가미아의 로한 미르찬다니는 자금난 끝에 자살했고, 외식 체인 페퍼프라이의 창업자 암바리쉬 머티는 영업 중단 스트레스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2018년에는 오토바이 제조사 로열 엔필드의 루드라텝 싱이 지속적인 과로와 스트레스로 사망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육체가 보내는 경고를 무시했다. 잠 못 이루는 밤,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 식은땀, 두통. 이런 신호들이 마지막 경고인 줄 몰랐다.
창업자들의 마음속에는 늘 폭풍이 분다. 자금 압박의 폭풍, 인간관계의 폭풍, 실적 부진의 폭풍이 그들의 마음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들은 폭풍 속에서 서 있다. 그리고 무너진다.
창업자가 된다는 것은 깊은 계곡을 혼자 건너는 일과 같다. 그 여정에서 육체는 마모되고, 정신은 지치고, 영혼은 갈증을 느낀다. 그런데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순간 실패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서다.
‘정상에서의 고독’ 증후군이라고 한다. 정서적 소진과 동기 저하, 심한 경우 우울증이나 중독으로 이어진다. 특히 인도, 영국, 미국 등에서는 창업자들이 가족, 동료, 투자자 누구와도 고민을 쉽게 나누지 못해 극심한 고립을 경험한다.
그들은 자신이 슈퍼맨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외로운 슈퍼맨은 번아웃과 고립 속에서 힘을 잃고 추락한다. 벼랑 끝에 선 자들이 있다. 그들은 창업자라 불린다. 한 발짝만 더 내딛으면 깊은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다. 그 심연의 이름은 ‘과로사’다. 이들은 정작 자신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성공이라는 유령이 손짓하니 눈이 멀어버렸다.
최근 인도의 IT 산업에서는 과로 문화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인포시스 창업자 나라야나 무르티의 ‘주 70시간 근무’ 발언은 불을 지폈다. 샤디닷컴의 아만 미탈은 거들었다. 샤크 탱크의 심사위원 나미타 타파르는 ‘헛소리’라며 반박했다. 직원과 창업자는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이미 흐릿하다. 모두 같은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다. 같은 물이라도 깊이에 따라 수압이 다르다. 창업자는 가장 깊은 곳에 산다. 그곳의 압력은 뼈를 으스러뜨린다.
깊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자신이 느끼는 압력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성공을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 여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늘어가고, 두통이 찾아오고, 가슴이 조여 온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커피로 달래고, 술로 마비시키고, 진통제로 속인다.
요즘 생태계에서는 창업자의 정신건강을 도울 거울을 만들어주려는 시도가 있다. ‘창업가들의 마음상담소’가 그렇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아산나눔재단, 디캠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같은 기관들이 힘을 모아 만든 그곳에서는 전문가 심리상담, 웰니스 자가점검 테스트, 경영 고민 토크룸을 운영한다. 서울창업허브 성수에서도 입주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심리진단, 멘탈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외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뉴질랜드 칼라한 이노베이션은 창업자를 위한 무료 심리상담을 제공한다. 영국의 버진 스타트업은 ‘Walk & Talk’ 오프라인 멘탈케어 이벤트, 주간 웰빙 어드바이저, 동료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런데도 창업자들은 이런 지원을 받지 않는다. “치료를 위해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창업자가 많다. “타인에게 나약한 사람으로 비칠까 봐”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스트렝스 마스터스의 창업자 아비셰크 조시는 정기적인 휴식과 휴가를 권한다. 쉬어야 한다. 멈춰야 한다. 호흡해야 한다. 하지만 달리는 말에게 이 말들은 들리지 않는다. 귀와 눈이 달리는 방향으로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이징 스타 커뮤니케이션의 CEO 두르베쉬 야다브는 가정의 지지를 강조한다. “개인 생활과 업무 사이에는 경계가 있습니다. 일 이상의 계획을 갖는 것이 인간에게는 중요합니다.” 그의 말은 진리다. 육신은 기계가 아니다. 마음은 컴퓨터가 아니다. 인간은 숫자 너머의 존재다. 가족과의 웃음, 친구와의 술잔,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 이런 것들은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에 포함되지 않지만, 인간의 생명 방정식에는 필수적이다.
동료 창업자와의 그룹 세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과 연대가 위로가 된다는 이야기가 많다. 홀로 싸우는 전사는 결국 지친다.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전우가 필요하다. 함께 가는 길은 덜 외롭다.
현대 사회는 IT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정신건강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에서는 INUKA 코칭, 메데아 마인드 같은 디지털 멘탈헬스 스타트업이 AI 기반 정신건강 진단, 실시간 코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에서도 포티파이, 콰블 같은 스타트업들이 심리진단, 1:1 비대면 상담, 커뮤니티 기반의 멘탈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테바소프트 같은 곳은 AI로 감정을 분석하고 공감과 위로, 해결책을 제안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기술은 좋다. 하지만 창업자의 상처 입은 마음을 완전히 치유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내재적 동기가 강한 창업자일수록 우울과 불안이 줄어든다. 돈과 명예가 아닌, 자아실현, 성장, 즐거움을 추구하는 이들은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다. 외적인 성공보다 내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이들은 폭풍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나침반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나침반은 돈이나 주가가 아닌, 자신의 가치와 열정을 가리킨다.
스타트업이라는 전쟁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과의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전략가의 모습이다.
이제 창업자의 멘탈케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건강성과 혁신의 지속성은 창업자의 정신건강에 달려 있다. 그들이 타고 소진되어 버리면, 혁신의 불꽃도 함께 꺼진다. 우리 사회는 이제 그들의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읽지 못하면 배는 난파한다. 육체의 신호를 읽지 못하면 사람은 무너진다. 스타트업의 바다에서 항해하는 이들은 자신의 몸을 먼저 살펴야 한다. 나침반이 없는 배는 표류한다. 건강을 잃은 창업자는 표류하다 가라앉는다.
우리는 왜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야 건강의 중요성을 말하는가. 산불이 나고 나서야 방화 시설의 중요성을 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은 언제나 재앙 뒤에 지혜를 배운다. 먼저 간 자들의 희생은 남은 자들에게 거울이 되어야 한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말을 창업자들에게는 뒤집어 해야 한다. “희망이 있으려면 생명이 있어야 한다.” 물고기는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새는 하늘이 있어야 날 수 있다. 창업자는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어야 꿈을 이룰 수 있다.
하르샤바르다나 키케리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교훈이다. 이제 행동해야 할 때다. 투자자들은 분기별 성과표만큼이나 창업자의 건강 상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와 지원 기관은 창업 인프라만큼이나 멘탈케어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업자 여러분, 오늘 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드시길. 내일의 혁신은 오늘 밤의 충분한 휴식 위에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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