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실험은 스타트업이, 과실은 기성기관이”…STO 인가에서 샌드박스 개척자 배제되나

금융위 ‘샌드박스 제도화’ 밝혔지만, 정작 샌드박스 사업자는 배제

금융위원회의 STO(토큰증권)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심사에서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NXT) 컨소시엄이 선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샌드박스 초기부터 해당 시장을 개척해온 스타트업 루센트블록은 탈락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리스크를 감수한 ‘퍼스트펭귄’은 밀리고, 멀찍이 구경하던 ‘공룡’들이 시장의 과실을 챙기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오는 14일 정례회의에서 ‘한국거래소-코스콤(KDX컨소시엄)’과 ‘넥스트레이드-뮤직카우(NXT컨소시엄)’에 대한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안건을 심의할 예정이다. 금융위가 앞서 최대 2곳에만 인가를 내주겠다고 밝힌 만큼, 이변이 없는 한 두 컨소시엄이 예비인가를 획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일한 민간 스타트업 주도 컨소시엄이었던 루센트블록은 탈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루센트블록은 대전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으로, 2018년 법인 설립 후 2021년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다. 2022년 부동산 STO 플랫폼 ‘소유’를 론칭해 국내 최초로 STO ‘안국 다운타우너’를 공모했고, 2023년에는 업계 점유율 70%(거래량 기준)를 달성했다. 루센트블록은 758개 규제샌드박스 참여 기업 가운데 중도 철수나 인수 없이 해당 사업을 주력으로 유지한 사실상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다. 이용자 50만 명을 확보하고 11개 건물을 상장했으며, 누적 300억 원 규모의 자산을 발행·유통하는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

반면 한국거래소는 2023년 12월 조각투자 장내거래소 규제 샌드박스를 획득했으나 운영실적은 0건이다. 넥스트레이드는 별도의 STO 사업 실적 없이 지난해 10월부터 인가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STO 유통 플랫폼 히스토리. 루센트블록은 7년간 시장을 개척한 반면, 한국거래소는 2달, 넥스트레이드는 2주 만에 인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자료: 루센트블록)

“샌드박스 제도화”라더니…심사 결과는 정반대

논란의 핵심은 금융당국이 직접 밝힌 제도 취지와 예상되는 결과 사이의 괴리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4일 보도자료에서 이번 인가가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운영되어 온 시범 서비스를 제도화하는 과정”이라고 명시했다. “규제샌드박스 사업자 또는 해당 사업자가 포함된 컨소시엄에 대해서는 인가 심사 시 가점을 부여하겠다”는 방침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알려진 심사 결과는 달랐다. 시장을 직접 개척해온 혁신기업은 배제되고, 공공기관과 대형 금융 인프라 중심의 컨소시엄만 남게 될 전망이다. 루센트블록 측은 “실제 사업을 영위해본 적 없는 기업의 기술력 및 안정성이 3년 이상 STO 플랫폼을 운영한 루센트블록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심사 기준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같은 우려는 이미 지난해 10월에도 제기된 바 있다.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상임이사는 당시 플래텀 기고를 통해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제23조는 실증을 통해 사업성을 입증한 기업에게 최대 2년간 ‘배타적 운영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현실에서 이 조항은 작동하지 않았다. 인가 경쟁의 출발선은 ‘퍼스트펭귄’이나 ‘먼발치에서 구경하던 공룡’ 모두에게 동일했다”고 지적했다.

NDA 체결 후 경쟁자로 돌변…국감서도 문제 제기

넥스트레이드를 둘러싼 기술탈취 의혹도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루센트블록에 따르면 NXT는 인가 신청 전 투자 및 컨소시엄 참여 검토를 명분으로 접근해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했다. 이후 재무정보, 주주명부, 사업계획, 핵심 기술 자료 등 민감한 내부 정보를 제공받았으나, 투자나 컨소시엄 참여 없이 2~3주 만에 동일 사업 영역에 직접 인가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NXT 측은 루센트블록이 먼저 출자를 요청했으며, 제공받은 자료도 일반적인 수준이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최 이사는 기고에서 “투자 검토 대상이라 여겨 비밀유지계약까지 체결하고 자료를 넘겼는데, 그 자료를 들여다본 기관이 직접 경쟁에 뛰어들었다”며 “실증 기업의 기술과 데이터가 제도화 과정에서 정당하게 보호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해당 문제는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당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성을 가진 기관이 혁신기업의 정보를 취득하고 경쟁자로 뛰어드는 것은 구단주가 선수로 직접 뛰는 것과 같다”며 공정경쟁 위반이자 스타트업 혁신 침해라고 지적했다.

우려가 현실로…업계 “배신감 느낀다”

지난해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이 됐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고문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혁신을 실험한 자는 배제되고, 결과만 가져간 자가 보상받는 나라에서 누가 창업을 하겠느냐”며 “스타트업 생태계는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고 고문은 “샌드박스 제도의 취지는 ‘혁신을 먼저 시도한 자에게 제도화 이후의 기회를 보장한다’는 것이었다”며 “이번 결정은 ‘실험은 스타트업이 하고, 성공의 과실은 기성기관이 가져간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셈”이라고 비판했다.

최 이사 역시 기고에서 이런 구조가 반복될 경우를 우려했다. “스타트업은 실증에 참여할 이유를 잃는다. 샌드박스는 혁신의 인큐베이터가 아닌 ‘무료 실험실’로 전락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국 금융감독청(FCA), 싱가포르 통화청(MAS) 등은 실증 기업의 시장 테스트 결과와 기술 역량을 제도화 단계에서 반영해 인허가 전환 경로나 규제 우대 절차를 지원한다”며 해외 사례와의 차이를 언급했다.

루센트블록 측은 “이번 사안은 한 기업의 탈락 문제가 아니다. 혁신을 먼저 시도한 기업의 노력이 제도화 과정에서 합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의 문제”라며 재점검을 촉구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인가 관련 사항은 확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자 /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I want to get to know and connect with the diverse world of start-ups, as well as discover their stories and tell them.

댓글

댓글 남기기


관련 기사

스타트업

루센트블록, ‘범정부 공공데이터 활용 창업경진대회’ NIA 원장상 수상

스타트업

하이어다이버시티, 금융위 주관 ‘K-핀테크 30’ 선정

Uncategorized

루센트블록-카카오뱅크, 토큰증권 시장 확대 협력

스타트업

루센트블록 컨소시엄에 글로벌 보안기업 ‘티오리’ 합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