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외면한 시장에서 중국 오픈소스가 영토를 넓히고 있다
벨라루스에서는 AI 사용자 10명 중 6명이 딥시크를 쓴다. 쿠바에서는 절반, 러시아에서는 10명 중 4명이다. ChatGPT나 Claude가 아니다. 중국 스타트업이 만든, 무료 오픈소스 모델이다.
글로벌 AI 채택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동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 딥시크(DeepSeek)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컴퓨팅 파워가 제한된 중국이, 오픈소스와 효율성으로 무장해 서방이 진출하지 못한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확대되는 AI 디바이드
마이크로소프트 AI Economy Institute가 9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기준 전 세계 생성형 AI 채택률은 16.3%로 상반기 15.1%에서 상승했다. 전 세계 6명 중 1명이 AI를 사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글로벌 노스(선진국)의 AI 채택률은 24.7%인 반면, 글로벌 사우스(개발도상국)는 14.1%에 그쳤다. 격차는 직전 분기 9.8%포인트에서 10.6%포인트로 벌어졌다. AI 채택 상위 10개국은 모두 고소득 국가다.
세계은행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2024년 기준 고소득 국가들이 전 세계 주요 AI 모델의 87%, AI 스타트업의 86%, 벤처캐피털 투자의 91%를 점유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의 인구는 전 세계의 17%에 불과하다.
UAE(64.0%), 싱가포르(60.9%), 노르웨이(45.3%) 등 디지털 인프라와 AI 교육에 일찍 투자한 국가들이 채택률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최빈국의 채택률은 10% 미만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보고서는 GDP 2만 달러 이하 국가에서 격차가 급격히 벌어진다고 분석했다.
딥시크, 빈틈을 파고들다
이 격차 속에서 딥시크가 부상하고 있다. 2023년 설립된 딥시크는 무료 서비스와 MIT 라이선스 오픈소스 정책으로 가격에 민감한 시장을 공략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딥시크의 국가별 시장점유율은 중국 89%, 벨라루스 56%, 쿠바 49%, 러시아 43%, 이란 25%, 시리아 23% 순이다. 에티오피아, 짐바브웨, 우간다, 니제르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11~14%를 기록했다.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미국의 서비스가 제한되거나 서방 기술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다. 화웨이 등 중국 제조사 스마트폰에 딥시크가 기본 탑재된 것도 확산을 가속화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소스 AI가 서방 플랫폼이 쉽게 진출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지정학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규제, 의도치 않은 결과
딥시크의 부상은 미·중 기술 경쟁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2022년부터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를 본격화했다. ASML의 EUV 장비 판매 차단, 엔비디아 A100·H100 칩 수출 제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규제 등을 통해 중국의 AI 컴퓨팅 역량을 제한하려 했다.
제재는 효과를 거뒀다. 미 상무부 제프리 케슬러(Jeffrey Kessler) 산업안보 차관의 의회 증언에 따르면, 화웨이는 2025년 약 20만 개의 AI 칩만 생산할 수 있다. 반면 엔비디아는 지난 4분기 동안 600만 개의 블랙웰 GPU를 출하했다. 격차는 압도적이다.
그러나 중국은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딥시크가 공개한 기술보고서에 따르면, V3 모델은 2,048개의 H800 GPU로 2개월 만에 학습을 완료했고, 공식 훈련 비용은 약 558만 달러였다. 다만 이 수치는 연구개발, 인프라, 실패한 훈련 등을 제외한 것으로, 일부 분석기관은 딥시크의 실제 총 투자액을 1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한다. 그럼에도 하드웨어 열세를 알고리즘 효율성으로 상쇄하려는 시도는 업계에 충격을 줬다.
중국의 오픈소스 전략도 주효했다. OpenRouter와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오픈소스 LLM의 글로벌 점유율은 2024년 말 1.2%에서 2025년 약 30%까지 급등했다. 알리바바 Qwen과 딥시크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혁신의 한계, 드러나는 천장
다만 딥시크의 모멘텀이 지속되고 있는지는 논쟁적이다. 2025년 1월 R1 모델 출시 당시 엔비디아 주가가 17% 급락하며 시가총액 6,000억 달러가 증발했지만, 이후 엔비디아는 10월 사상 처음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했다.
가트너의 하리타 칸다바투 수석 디렉터는 CNBC에 “1월의 R1은 프론티어 모델 비용 곡선과 중국의 경쟁력에 대한 글로벌 인식을 바꿨기 때문에 시장 재평가를 촉발했다”면서도 “이후 딥시크의 업데이트들은 새로운 충격파가 아닌 ‘연속과 통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딥시크는 2025년 내내 V3와 R1의 업데이트만 발표했을 뿐, 완전히 새로운 모델은 내놓지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당초 5월로 예정됐던 R2 모델 출시도 화웨이 칩으로 훈련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지연됐다. 딥시크 스스로도 최근 연구논문에서 “Gemini 3 같은 프론티어 비공개 모델과 비교해 컴퓨팅 자원 등에서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칩 워’ 저자 크리스 밀러는 “중국은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칩 판매 제한으로 접근할 수 있는 컴퓨팅 파워가 제한됐다”며 “고급 모델을 만들려면 고급 컴퓨팅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알고리즘 효율성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의미다.
서방의 부재, 중국의 기회
딥시크가 확산되는 지역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서방의 제재로 미국 서비스 자체가 차단된 곳이고, 다른 하나는 인프라 부족으로 서방 기업들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중국 AI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제재 국가들부터 보자.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엔비디아와 TSMC의 공급이 중단됐다. 러시아 최대 AI 기업 스베르(Sber)는 2022년 이후 약 9,000개의 GPU만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LLM들은 글로벌 벤치마크에서 12~17위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딥시크는 43%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러시아 AI 업계는 중국 기술과의 협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도 중국산 전자부품이 점점 더 많이 발견되고 있다.
벨라루스(56%)와 쿠바(49%)는 러시아보다 더 높은 점유율을 보인다. 두 국가 모두 전체 AI 채택률 자체는 낮지만, AI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딥시크가 사실상 표준이 됐다. 이란(25%)과 시리아(23%)에서도 미국 플랫폼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딥시크가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인프라 부족 지역인 아프리카는 다른 양상이다. 약 6억 명의 아프리카인이 전기 접근성이 없고, 비슷한 수가 4G 커버리지 밖에 있다. 대륙 전체 데이터센터 용량은 전 세계의 1% 미만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 중 남아프리카공화국 외 지역에 AI 인프라를 구축한 곳은 거의 없다. 서방 기업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외면한 시장이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도 있다. 2025년 1분기 아프리카 AI 스타트업 펀딩의 83%가 케냐, 나이지리아, 남아공, 이집트 4개국에 집중됐다. 아프리카연합(AU)은 2024년 대륙 AI 전략을 채택하고, AI를 ‘전략적 우선순위’로 선언했다. 케냐는 2025년 3월 국가 AI 전략을 발표했고, 세네갈은 2028년까지 9만 명의 데이터 과학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딥시크의 아프리카 시장점유율(11~14%)은 제재 국가들보다 낮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보고서는 “화웨이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아프리카 전역에서 급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웨이 스마트폰에 기본 탑재된 딥시크가 인프라의 한계를 우회하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AI 질서의 서막
후안 라비스타 페레스 마이크로소프트 AI for Good Lab 수석 데이터 과학자는 딥시크에 대해 “수학이나 코딩 같은 작업에서 좋은 모델”이라면서도 “정치적 질문에 대해서는 미국 모델과 다르게 작동한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인터넷 검열 정책이 AI 모델에도 반영된다는 의미다.
서방 국가들의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호주, 독일, 미국은 보안 우려를 이유로 딥시크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자사 직원의 딥시크 사용을 금지했다. 이탈리아, 덴마크, 체코 등 유럽 국가들도 정부 기관에서의 사용을 차단했다.
그러나 규제만으로 흐름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보고서는 “글로벌 AI 채택이 모델 품질만큼이나 접근성과 가용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결론지었다. 딥시크는 프론티어 모델 경쟁에서는 컴퓨팅의 벽에 부딪히고 있지만, 서방이 외면하거나 진출하지 못한 시장에서는 여전히 빠르게 영토를 넓히고 있다.
미국이 칩을 통제하는 동안, 중국은 소프트웨어로 다른 지도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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