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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에서 로봇이 춤을 췄다-CES 2026, 예고편이 끝났다

휴머노이드는 ‘배치 일정’을 말했고, 한국 스타트업은 혁신상의 59%를 가져갔다

로봇이 춤을 췄다. 빨래를 개고, 블랙잭 딜러가 되어 카드를 섞었다. 1967년 첫 개최 이래 59년째 라스베이거스를 점령해온 CES가 1월 9일(현지시간) 나흘간의 일정을 마쳤다. 주최 측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미래가 도착했다(The Future is Here)”고 선언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도착한 것은 본편이 아니라 예고편에 가까웠다.

사전 집계(감사 전) 기준 14만 8천여 명이 다녀갔고, 4,100여 개 기업이 전시에 참여했다.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다. 참관객의 55% 이상이 임원급이라는 숫자는 CES가 여전히 글로벌 의사결정자들의 교차로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들이 무엇을 보았느냐다.

로봇, ‘언젠가’에서 ‘언제’로

올해의 주인공은 단연 로봇이었다. CTA 공식 전시사 목록에 따르면 40개 이상의 기업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언급했다. 엔비디아(NVIDIA) CEO 젠슨 황은 이를 ‘피지컬 AI(Physical AI)’라 명명했다. 소프트웨어에 갇혀 있던 인공지능이 물리적 형태를 얻어 현실 세계로 걸어 나왔다는 선언이다.

주목할 점은 문법의 변화다. 과거 CES의 로봇들은 “우리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올해 로봇들은 “우리는 언제 배치됩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산하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전기 구동 Atlas 로봇의 양산형을 처음 공개하며 2026년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배치 일정을 발표했다. 구글 딥마인드와 협력해 제미나이 로보틱스 AI(Gemini Robotics AI)를 탑재, 비정형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중국 유니트리(Unitree)는 G1 휴머노이드로 고속 무술 동작을 시연하며 로봇-애즈-어-서비스(RaaS) 모델과 가격 경쟁력을 내세웠다. 스위치봇(SwitchBot)의 가사 도우미 로봇 오네로 H1(Onero H1)은 빨래를 집어 세탁기에 넣는 시연으로 엔가젯(Engadget) ‘베스트 로봇’ 부문을 수상했다. LG전자의 클로이디(CLOiD)는 식기세척기를 비우고 빨래를 개며 ‘제로 레이버 홈’ 비전을 구체화했다.

황은 “올해 안에 일부 인간 수준의 능력을 갖춘 로봇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도 있었다. CCS 인사이트의 수석 애널리스트 벤 우드는 “휴머노이드가 쇼의 주인공이었지만, 상용화까지는 아직 먼 길”이라고 말했다. 쇼플로어에서 공장 바닥까지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AI, 편재의 역설

AI는 CES 2026의 또 다른 축이었다. TV, PC,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냉장고, 변기, 심지어 롤리팝에까지 AI가 붙었다. AMD CEO 리사 수는 2시간짜리 기조연설에서 “AI는 어디에나 있고,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멘스(Siemens)와 엔비디아는 산업용 AI 운영체계 구축을 위한 파트너십 확대를 발표하며 제조업 디지털 트윈의 본격화를 예고했다.

의외의 참가자도 있었다. 레고(LEGO)가 CES에 처음 참가해 ‘스마트 브릭’을 공개했다. 4.1mm 칩이 내장된 브릭이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다른 브릭과 상호작용한다. 59년 된 전시회에 94년 된 장난감 회사가 처음 등장한 것이다. 전통 기업의 기술 융합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러나 편재(遍在)는 피로를 낳기도 했다. 엔가젯은 “기업들이 기조연설에서 실제 제품 발표 대신 AI 수사에 시간을 할애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정작 기다리던 제품 발표를 AI 얘기 사이에서 찾을 수가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CES가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올해는 그 피로감이 AI라는 단일 키워드에 집중됐다.

수리 권리 단체 아이픽스잇(iFixit)이 주관한 ‘워스트 인 쇼(Worst in Show)’ 시상도 눈길을 끌었다. AI 음성인식으로 문을 여는 냉장고가 ‘수리 용이성 최악’ 부문에, 60분만 사용 가능한 일회용 전자 롤리팝이 ‘환경 영향 최악’ 부문에 선정됐다. 혁신의 화려함 뒤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따라붙었다.

한국, 실험실에서 시상대로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은 수치로 증명됐다. CTA가 발표한 35개 분야 347개 혁신상 중 206개(59.3%)를 한국 기업이 가져갔다. 3년 연속 세계 1위다. 더 주목할 것은 구성이다. 206개 수상작 중 150개가 중소기업, 그중 144개가 벤처·스타트업이었다. AI 분야 최고혁신상 3개를 모두 한국 기업-긱스로프트, 딥퓨전에이아이, 시티파이브-이 휩쓸었다.

유레카파크 내 ‘K-스타트업 통합관’에는 19개 지원기관과 81개 스타트업이 참여했다. 전체적으로 470개 한국 스타트업이 38개 공공·기관 파트너의 지원을 받아 전시에 나섰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참가국 규모다. 셸리 버클리 라스베이거스 시장은 K-스타트업 통합관을 방문해 창업진흥원에 표창을 수여했다.

대기업도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미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갤럭시 Z 트라이폴드를 공개했다. 10인치 화면의 삼중 폴더블폰이다. 현대자동차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함께 로봇 대량생산 밸류체인 구축 계획을 발표하며 2028년 공장 배치 로드맵을 제시했다.

예고편 이후의 질문

CES 2026은 기술이 ‘개념’에서 ‘적용’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보여줬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배치 일정을 공개했고, 산업용 AI는 구체적인 파트너십으로 구현됐다. 한국 스타트업은 수상 실적으로 기술 경쟁력을 증명했다.

그러나 쇼플로어의 화려함이 곧바로 일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맥킨지(McKinsey)는 범용 로보틱스 시장이 2040년까지 3,7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지만, 그것은 14년 뒤의 이야기다. 연구진은 여전히 로봇 손의 촉각 센서를 개선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가사노동은 로봇에게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다.

CES 2027은 내년 1월 6~9일, 60주년을 맞아 다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 그때쯤이면 Atlas가 정말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까. 클로이디가 누군가의 집에서 빨래를 개고 있을까. 예고편은 끝났다. 본편의 상영 일정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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