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할 때면 기자가 마치 점쟁이를 대하듯 내게 묻더라, 어떤 게 뜰 것 같으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스타트업과 투자사가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으로 봐야 맞지 않겠는가?”
필자가 권혁태 대표를 만나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결혼’, ‘사람’,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었다. 투자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가 배우자 고르는 법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투자에 관해 그보다 적절한 비유가 없는 것 같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국내에서 M&A 전문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를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Coolidge Corner Investment) 권혁태 대표
투자사 설립 계기
나는 새로 시작하는 산업 분야에 있고 싶었다. 뱁슨 대학(Babson College)에서 MBA를 수료한 까닭도 기업가정신 교육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곳이라는 평가 때문이었다. 하지만 MBA 수료만으로 창투업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먼저 M&A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비상장 전문 M&A를 맡아서 하던 중 2010년, 국내에서도 스타트업 기류가 감지되었고,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하겠다 싶어 그 해 3월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Coolidge Corner Investment)를 설립하였다. 그때 설립 멤버가 나와 이현주 부사장, 강신혁 부장, 서희정 차장 이렇게 넷이었다. 이 부사장은 보스턴에서 언어 연수 학원에 다닐 때 처음 만났던 사이이고, 강 부장은 내 아내가 아끼는 후배의 남자친구로 소개받아 알게 된 사이이고, 서 차장은 전 직장 지인의 소개를 통해 만났다. 현재 12명이서 다같이 회사를 꾸려가고 있는데, 5년이 지나도 이렇게 모두 함께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투자 자금은 어떻게 조성했나.
4가지 버전의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8개월 넘게 투자사 설립을 준비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할 것 없이 방방곡곡을 뛰어다니며 투자자분들을 모았다. 그중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이북동 회장님은 내가 M&A 전문가로 활동하던 2006년에 이현주 부사장을 통해 처음 만나뵈었던 분이다. 부탁을 받고선 부산에 내려가 이북동 회장님의 케이블회사 M&A 작업을 총괄했었는데, 당시 모습이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내 사업계획서 발표를 다 들으시더니, “잘할 수 있겠어?”라고 말씀하시길래, “네,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럼 해봐.”라고 짧게 답하시더라. 이북동 회장님도 결국 사람을 믿고 투자하신 거로 생각한다. 나도 그 정신을 계속 이어나가는 셈이다.
‘사람을 믿고 투자한다’라..
우리는 그런 투자를 하고 싶다. 예를 들어 어떤 창업가가 이번 투자 아이템으로 실패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그 창업가의 다음 아이템에도 투자할 수 있는 투자사로 관계 맺고 싶다. 결국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투자사들이 제일 처음으로 고민하는 게 뭐냐면, ‘혹시 내일부터 전화 안 받으면 어떡하지?’이다. 잘 모르는 사람한테 투자한 다음에 연락이 안 되면 큰일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신뢰가 쌓여있어야 한다. 그게 학벌은 아닌 것 같더라. 물론 학벌이 좋은 창업가가 업무 진행이 빠르고 매끄럽다. 그러나 나는 그 똑똑함이 궁극적인 성공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빨리 간다고 해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 포기도 빠른 것 같다. ‘이쯤에서 그만 접고 다른 것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끈기와 고집, 리더십, 오픈마인드가 장기적인 성공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원한다. 그래서 흔히 투자를 결혼에 비유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결혼에 있어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가. 나는 스타트업이 남자이고, 투자사가 여자라고 생각한다. 결혼 전에는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결혼 후에는 남자가 잘되어야 여자도 잘된다. 행여 남자가 하는 일이 잘 안 된다고 이혼을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다음 사업도 밀어주고 응원하는 게 부부이다. 투자하고 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조’ 밖에 없다. 열심히 ‘내조’하는 투자사로 계속 가고 싶다.
투자 금액 및 투자 검토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는 지난 5년간 총 34개 초기 스타트업에 3~5억 원씩을 투자하여 500%의 수익률을 기록하였다. 여기서 3~5억 원이란, 가설을 검증하고 비즈니스모델을 체계화하는 데에 필요한 금액이다. 정부의 경우 보통 5천만 원을 지원하던데, 우리나라 물가 기준에서 그 금액으로는 가설을 검증하기 어렵다.
현재 10여 개 회사를 투자 검토 중인데, 우리는 팀이 훌륭하다거나 제품이 좋다고 해서 투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투자한 사례를 살펴보면, 최소 3개월 이상 서로 알고 지내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했던 사람에게만 투자하였다. 그리고 투자 후에도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오고,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할수록 회사가 더 좋아진다.
결혼과 똑같다. 투자만 받으면 모든 게 끝나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결혼을 마치 연애의 종착역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결혼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지 않나. 그때부터 시작이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는 ‘결혼하자마자 집에 들어오지 않고 돈만 보내주는 남편’이 아니라 ‘힘들어도 매일 밤에 그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남편’을 원한다. 투자 결정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투자한 후에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와 연이 없는 스타트업이라면.
나뿐만 아니라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의 모든 심사역은 매달 각종 창업가 모임에 참석하여 항상 스타트업 가까이에 있다. 물론 가장 빠른 방법은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의 포트폴리오 스타트업 대표들의 소개를 받는 것이다. 신뢰를 기반으로 시작해야 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단지 우리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높지 않다. 이메일이 오면 접수는 되지만 일단 오픈트레이드에서 활동하는 내역을 지켜보겠다는 답변을 드린다. 신뢰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심사역들은 예전에 알던 팀, 소개 및 추천을 받은 팀 명단을 매주에 한 번씩 공유한 뒤 유망 팀을 추려 구글 닥스로 정리하여 지속적으로 공유한다.
이 밖에도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가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하는 방법이 있다. 창업경진대회에 선발된 팀은 16주간의 인큐베이팅을 받은 후 투자 검토를 받게 된다.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점이 있다면.
엔젤투자자들에게 투자 결정을 한 이유를 물어보면 100명 중 100명 다 사람을 보고 투자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처음 투자자를 만나면 자신의 사업아이템 이야기밖에 안 한다.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업계획서’라고 쓰여 있는 걸 ‘제품설명서’라는 제목으로 바꿔서 봐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투자자는 사람을 보고 싶어한다. 창업가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일을 하다 보니 이런 게 꼭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팀원들은 누구인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권하는 바이다.
스타트업에게 있어 좋은 투자자란 어느 한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배우자감을 고르는 것과 같다. 아무리 예쁘고 화려한 이성이라고 해도 나의 최고의 배우자감이라고 할 수 없다. 나에게 맞는 배우자가 누구인지 고민하지 않고선 단순히 ‘저 사람은 검사 출신이니까’, ‘저 사람은 미스코리아 출신이니까’ 하는 등의 사회적 명성에 따라 배우자를 고르는 것은 위험하다. 자신에게 맞는 배우자는 따로 있다.
앞으로의 계획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는 모바일커머스, 크라우드펀딩 분야에 관심을 두고 투자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관심 분야를 디지털콘텐츠와 사회적기업으로 확장해볼 생각이다. 이 두 분야는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도 열악한 분야에 속하며, 자금뿐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인큐베이팅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한편, 작년 말에 파트너십을 맺은 Non-US 스타트업 전문 액셀러레이터 ‘부트스트랩랩스(BootstrapLabs)‘와 함께 스타트업의 실리콘밸리 진출을 지원할 예정이다. 참고로 이곳의 코파운더(Co-founder) Benjamin Levy는 그의 아내가 한국인인 까닭에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도 있다.
출처원문 : [우리지금만나 2] ‘투자라 쓰고 결혼이라 읽는’ 권혁태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대표
안경은 앱센터 외부필진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즐깁니다. 글로 정리해 사람들과 공유할 때 신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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