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라는 작은 잉어가 있다. 이 잉어는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 ~ 8cm 밖에 자라지 않지만, 수족관이나 연못에서는 15 ~ 25cm, 강에서는 90 ~ 120cm까지 성장한다고 한다. 바로 ‘코이의 법칙’이다. 어쩌면 이 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환경 속에서 자신도 모른 채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우리 내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어느 보통 날, 대한민국 보통 청년이, 보통의 청춘들을 대신해 세상에 질문을 하러 떠났다. 그는크라우드펀딩으로 그 비용을 마련했고 그를 응원하는 많은 팬들까지 얻었다. 평범한 시골백수 박재병은 자신이 얼마나 자랄 수 있을지, 자란다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대한민국의 젊은 ‘코이’들에게 전세계 500여 명의 꿈과 인생을 대신 들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가 피부로 느낀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황인범 : 여행을 하는 사람이 경비를 위해서 크라우드펀딩을 한다는 것은 생소한 느낌이다. 직접 진행한 프로젝트와 본인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박재병 : 나는 거리의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꿈을 인터뷰하는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나를 응원하는 분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금액으로 여행하며 그들에게 손편지 엽서, 인터뷰를 정리한 E-Book, 원하는 장소의 사진,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보상품으로 제공했다. 많은 금액으로 도와주신 분들께는 원하는 사람을 대신 만나주거나, 귀국해서 직접 소주 한 잔 사드리기도 했다.
나는 대한민국 보통 청년이다. 모두 그렇듯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온 후 취업준비를 미친듯이 했다. “돈이 최고다. 성공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군 전역 직후 내가 그토록 원하던 대기업 합격서류를 받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밤잠을 설쳐가며 스스로에게 행복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했고, 문득 내 청춘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대기업 합격서류를 던져버리고, 해외로 떠난다는 것에 주위 반응은 어땠는가.
말이 정말 많았다. 긍정과 부정의 반응이 반반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성격상 부정적인 반응은 귀에 잘 담지 않는다. 오히려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더 용기가 생겼고, 착실하게 하루하루를 준비했다. 대부분이 대단하다고 말을 많이 한다. 나는 대단하다는 말 대신, 길이 다른 것뿐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처음 살아보는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나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볼 때 더 대단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와디즈에서 펀딩을 진행하면서 크라우드펀딩에 도전하는 모든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여행자금 마련은 아르바이트로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크라우드펀딩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약간 관종(관심종자)이다. 주변사람은 물론 세상에 나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금연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결심했을 때 주변에 알리는 경우와 같은 이치다. 세상에 대한 나의 호기심의 반만이라도 세상이 나를 알고 있다면 내가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펀딩을 통해 여행경비 마련은 물론 그 이상의 내 재산을 가질 수 있었다고나 할까.
여행자 혹은 여행가. 스스로를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100% 여행자이다.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있지만, 여행에 전문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여행에 전문적인 노하우가 있었다면 노숙생활을 하거나,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여행자이고 싶다.
여행을 하며 가장 재미있는 경험이 있다면?
당연히 노숙생활이다. 일과 잠. 이 두 가지가 내 전부였던 시절, 바쁘고 외로운 생활 속에서 나를 처음 받아준 사람이 노숙자들이다. 그냥 나는 내 이야기를 했고 그들은 들어줬다. 세계일주의 첫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약 100명의 노숙자를 인터뷰하면서 궁금증이 생겼고, 노숙자가 되기로 했다. 노숙생활은 25시간이었지만 250시간 같았다. 경찰을 피하고, 구걸하며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비참했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왜 계속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지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박스는 참 따뜻했고 세상은 차가웠다.
그렇다면 여행과 크라우드펀딩. 두 마리 토끼모두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행에는 초심, 크라우드펀딩에는 설계도가 가장 중요하다. 어떤 일정을 바탕으로 어떤 리워드를 후원자들에게 제공할지를 잘 고민해봐야 한다. 나는 그들이 응원해주는 만큼 책임을 다해야하기에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범위 내에서 계획을 잡았다. 가끔 밤을 새면서 한국으로 보낼 상품들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여행의 일부였고 그만큼 중요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여행의 본질을 흐려서도 안되기에 초심을 잡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얼마 전 갑자기 호주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번엔 무엇을 위해서 떠났는지.
2년 전 시작했던 세계여행의 연장선이자, 내 마지막 여행이다. 지금은 시드니에서 여행자금을 모으고 있다. 오토바이를 사서 미국 서부를 일주할 예정이다. 여행의 목적은 처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겜블러와 CEO, 오바마 대통령, 워렌버핏을 만나는 것이 목표다. 내 힘으로 직접 그들과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곳에서도 하루하루가 소중하지만, 하루빨리 새로운 여정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아끼고 있다. 물론 오바마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나를 초청할 때를 대비해 턱시도 한 벌 값은 항상 준비되어 있다.
최근에 법인을 설립했다고 들었다. 창업을 한건가?
한국에 머문 6주 동안, 절단장애인들을 후원할 수 있는 법인을 설립했다. 여행을 하며 노숙이나 알프스 등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튼튼한 몸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절단장애인들에겐 꿈 같은 이야기다.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설립하게 되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 것처럼, 절단장애인들을 위한 캠페인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 때 이 캠페인을 다시 크라우드펀딩으로 접목시켜서 진행해보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기대해주셨으면 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정말 많은 일들을 하는 것 같다. 앞으로의 인생 계획은?
내 마지막 여행에 대한 미련을 다 쏟아내고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고 싶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열심히 행복하게 살 것이다.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느낀 것들이 여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떠나야 함에 미련이 없기에 남아있음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글 : 황인범 現 와디즈 홍보/온라인 마케팅 총괄 팀장, 크라우드산업연구소 연구원
와디즈는 생소한 ‘크라우드펀딩 투자’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와디즈 투자인사이드’를 신설하여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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