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KPMG 스타트업 경영 360 #5] ‘자금계획’이 도대체 왜 필요한 거죠?
데모데이가 끝나고, 어느 한 스타트업 대표님과의 짧은 대화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희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투자를 받고 싶습니다.”
“어디에 사용할 계획이십니까?”
“……”
“보유하고 계신 기술을 초등학교 과학수업이나 방학숙제용 교재로 출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래서 투자가 필요합니다.”
기술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자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경영자로써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만, 구체적인 목표(milestone)와 계획(plan) 없이는 기업을 운영하거나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투자수익을 목표로 하는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금은 투자하는 시점에 명확한 금액으로 지출되지만 투자수익은 알 수 없는 미래의 언젠가 불확실한 금액이 유입됩니다. 이는 물론 경영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확보한 자금을 기술개발, 상품개발 등에 투자하였지만 매출은 언제부터 발생할지, 과연 이윤은 남길 수 있을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다만 차이점은 자금은 투자자가, 미래에 대한 열쇠는 스타트업 경영자가 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계획’을 통해 어느 정도 합리적인 수준까지 그 ‘불확실성을 통제’할 수는 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팀과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면 실체가 없던 미래가 어느 정도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상세계획 별로 자금이 필요한 시기와 금액, 그리고 자금의 관리방법까지 명확히 제시한다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에 유리합니다. 이를 자금계획이라고 합니다. 자금계획에는 시기, 금액, 사용처, 조달방법과 관리방법의 다섯 가지 요소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자금계획이 기업의 장단기 목표인 마일스톤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이들 다섯 요소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자금계획 자체가 마일스톤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단계별로 자금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예시한 것입니다.
1단계: 마일스톤을 달성하기 위한 활동들을 열거한다.
가끔 투자유치 자체를 목표로 삼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투자유치는 걸어온 발자취 개념으로써의 마일스톤이 될 수는 있지만, 미래를 향한 비즈니스 계획으로써는 마일스톤이 될 수 없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미래의 마일스톤에 ‘시리즈A 투자유치’라고 기재하는 것은 자칫 ‘나의 목표는 비즈니스 자체가 아니라 투자자에게 이 사업을 팔고 떠나는 것’이라는 메시지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잠재적 투자자에게 그 다음의 엑싯 전략과 타이밍을 제시하는 것은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 표현방식에 있어 주의를 요합니다.
1단계에서는 각 마일스톤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들을 빠짐없이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팀원들과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실시하고 멘토와 기존 투자자들의 경험을 끌어내어, 지출이 필요한 모든 활동들을 완전성 있게 나열하여야 합니다. 마일스톤만으로 활동들을 떠올리는 것이 어렵다면, 마이클 포터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다음 그림의 각 칸에 기재된 활동에 해당하는 세부활동들을 떠올려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3D 프린터를 이용해 스마트 전기차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다가올 12월 ‘1호차 출고’를 목표1로 설정했다면, 이제 이를 위해서 아래 각 활동별로 어떠한 세부활동을 수행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기업하부구조 측면에서는, 기존에 간헐적으로 시제품 생산을 위해 외부 3D 프린터 보유 업체에 의뢰하였던 것을 양산 체제로 전환하면서 자체 제작을 위한 3D 프린터 구입이 필요할 것입니다. 인적자원관리 측면에서는 3D 프린터 유지보수 인력을 내부에 충원할 필요가 있으므로, 인재채용을 위한 구인광고 활동을 포함시키는 등의 방식입니다.
2단계: 각 활동 별로 필요한 자금의 액수와 시기를 결정한다.
다음으로 할 일은 1단계에서 정한 세부활동들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금액과 시기를 정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활동들 각각에 대해 얼마의 금액이 지출될지를 실제 거래를 하기 전에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이 단계는 몹시 지루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평상시 기업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파악하고 업데이트함으로써 추가적인 공수를 많이 투입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1~2단계를 거쳐서 정리한 자금계획은 아래와 같이 매우 긴 표의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3단계: 기간별 자금소요액과 필요한 자금의 규모를 파악한다.
흔히들 사용하는 자금계획표 형태를 사용하지 않고, 위와 같이 DB형태로 계획을 수립하는 이유는 업데이트나 확장이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필드(열)를 추가하여 거래처나 담당자 정보, 계산근거나 실제 지출액과의 비교 등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또 엑셀의 피벗기능이나 SQL의 Group By 함수를 통해 마일스톤이나 대∙중∙소 분류 등 다양한 수준으로 요약이 가능하고, 필터 기능을 활용하여 손쉽게 과거의 계획 자료를 검토하고 관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래의 표는 엑셀의 피벗기능을 활용하여 월별∙분류별 수입∙지출액을 표시한 것입니다. 당장 보유하고 있는 자금으로 9월까지는 운영이 가능하지만, 10월에 대규모 설비 도입이 예정돼있어 추가적인 자금조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4단계: 자금조달방법과 조달활동의 착수시기를 결정한다.
이제 2016년 10월의 부족자금 12.6억 원을 어떤 형태로 조달할지 정해야 합니다. 자금조달의 형태는 크게 상환의무와 기간의 여섯 가지 조합 중 현실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두 가지(자본이나 혼합 형태로 조달하는 경우에는 단기인 경우가 거의 없음)를 제외한 네 가지가 있습니다. 위 사례에서 2017년부터는 안정적으로 매출이 발생해서 동 매출대금을 회수함으로써 운영이 가능하다면, 11월에 유입되는 계약금 7억 원을 감안하여 투자유치 금액을 줄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본 사례의 경우 필자는 6억 원을 1개월 만기 부채로, 7억 원을 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투자자를 물색하고, 그들을 만나 설득하고, 투자자 내부의 결재 절차를 거쳐 실제로 자금이 입금되기까지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자금이 필요한 시점부터 최소한 3개월 전인 7월부터는 자금조달을 위해 (잠재)투자자들을 접촉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5단계: 자금의 관리방법을 결정한다.
자금의 관리방법까지 고려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닙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자금관리방법을 사전에 결정해놓는 것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상기 사례의 경우와 같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자금을 조달하였다면, 동 목적을 위해서만 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별도로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별도로 관리하지 않고 일반운영자금과 동일한 계좌에 관리하게 되면,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간에 당초 목적과 다른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작 거액의 시설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질구레한 항목들로 인해 설비투자가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경우 기업의 마일스톤 전체를 뒤로 미루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곧이어 투자자들이 갖고 있던 신뢰를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1~5단계를 거쳐, 이제는 ‘얼마 만큼’의 자금이 ‘언제’ 필요하고 ‘어떤 형태’로 조달해서 ‘어느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동 목적에의 사용을 담보하기 위해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정해졌습니다. 이제 기술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투자자와 시장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금계획을 통해 고객과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상기 내용은 기업 경영상 참고 목적으로만 사용하여야만 하며 어떠한 결과를 예상 또는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영은 그 본질적인 특성상, 동일한 의사결정이라 하더라도 개별 기업이 처한 산업, 경쟁환경과 기업의 내∙외부 역량, 그리고 실행 시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삼정KPMG의 공식적인 자문 없이 이를 기업에 그대로 적용함에 따른 결과에 대해 KPMG 및 그 임직원은 어떠한 책임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삼정KPMG SIC심종선회계사(jongseonshim@kr.kpmg.com)
심종선회계사는 삼정회계법인 국제통상본부에서 근무하며, 기업의 원재료 구매에서부터 생산, 유통과 수출, 그리고 해외지사에서의 추가가공∙재고관리를 거쳐 최종적으로 해외고객사에게 판매되는 일련의 기업활동을 연결하여 분석하고 이를 기초로 외국 정부의 수입규제를 방어하는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현재에는 Start-up Innovation Center에서 스타트업의 성장 지원과 대한민국 산업의 혁신을 위한 경영 자문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https://kr.linkedin.com/in/jongseons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