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물 가격을 결정 짓는 변수는 다양하다. 기후, 국제 곡물 시세에 따른 사료값 변동, 수요 변화, 질병·자연 재해 유무는 물론 국가 정책 마저 고기값에 영향을 준다.
지금까지 축산물 수입 원가에 대한 정보는 시장 내 소수의 집단 내에서만 공유되어 왔다. 원가를 모르는 요식업자나 일반 소비자는 이 고기가 얼마에 수입되었는지, 도매업자가 붙인 중간 마진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미트박스는 이러한 축산업계 정보 비대칭성을 해결하고자 나선 축산물 오픈마켓이다. 지난 2014년 설립 이후 올 4월 누적 거래량 100억 원을 달성했고, 올해 3월에는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3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축산물을 포함해 식자재 분야의 블룸버그를 꿈꾸는 미트박스 김기봉 대표를 만났다.
대기업 축산MD 출신이라고.
지금은 GS리테일이 된 LG유통에서 10년을 일했다. 단체급식 사업을 하는 아워홈에서 축산MD로 일했는데,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가장 저렴하고 안전한 축산물을 소싱하러 다녔다. 이 경험이 ‘축산 유통 시장 이해’라는 자산이 됐다.
미트박스 창업 이전에 이미 6년 이상 사업가로 살았다.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푸디아를 6년 째 경영하고 있다. ‘미스터보쌈’과 ‘스탠딩스테이크’라는 프랜차이즈를 운영한다. 지금까지 130여개 매장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프랜차이즈 창업자나 소규모 요식업자에게 더 저렴하고 안정적인 가격으로 식자재를 공급할 수 없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지금 하고 있는 사업과도 시너지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고민을 하던 차에 웹젠에서 전략기획총괄을 맡았던 서영직 현 사장과 의기투합하게 됐다. 나는 축산 비즈니스를 해왔고, 서영직 사장은 금융과 IT 쪽 전문가다. 전통적인 축산과 IT가 만나 미트박스가 탄생했다.
기존 축산 유통 과정에 있었던 문제는 뭐였나.
고기의 진짜 값을 아는 게 어려웠다. 예를 들어 축산물을 구매하는 최종 사용자(end user), 즉 요식업자들은 축산물 수입원가를 알 길이 없었다. 수입업자와 일부 도매업자 사이에서만 비밀리에 거래되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도매업자가 20%가 넘는 마진을 붙여서 팔기도 했다. 원가를 모르는 소비자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가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미트박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지.
먼저 매일의 육류 도매 유통 시세를 한 데 모아 공개한다. 사용자는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만 하면 시세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다. 고기 종류, 부위, 등급, 보관방법에 따라 분류되어 있고, 최저가를 확인할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가격 왜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최근 한 달 간의 해당 육류의 평균 거래가와 등락 폭도 확인할 수 있다. 앱 내에서 바로 육류를 구매할 수 있으며, 아직 미트박스 내에서 거래되지 않는 품목에 대해서는 상품요청을 할 수도 있다. 고기의 진짜 값을 알려주고, 물류, 결제 구매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중간 과정을 없애고 수입업자와 소비자 간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게 목표다.
육류 시세 정보는 어떻게 수집하고 있나.
현재 미트박스에 입점해있는 판매 업체가 100개 정도 된다. MD 한 명 당 배정된 판매자가 10명 정도 되고, 매일 이들이 판매하고 있는 육류의 도매 가격을 확인해서 최저가를 올린다. 그런데 일부 품목의 경우 입점 업체보다 국내 가장 큰 축산물 시장인 마장동의 도매가가 더 싼 경우도 있다. 이렇게 누락된 정보들은 직접 실제 마장동 도매 업자에게 연락해 취합하고 있다. 미트박스 규모가 더 커지고, 입점 업체가 늘어나면 추가 정보를 조사할 필요도 없이 우리 플랫폼 내 거래가가 시세가 될 것이다. 실제로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저렴한 가격으로 육류를 구매할 수 있나.
20% 이상 저렴한 가격이다. 요식업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세 가지다. 인건비, 임대료, 식자재 비용이다. 인건비나 임대료는 시세라는 게 있어서 요식업자가 쉽게 내릴 수가 없다. 그나마 변동 가능성이 높은 게 식자재 비용이다. 월 3천만 원 정도의 육류를 구매하는 식당이 있다고 할 때, 미트박스를 이용하면 300~40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 두 명 분의 인건비가 남는 거다. 이 비용을 재투자해서 가게를 넓힐 수도 있고, 재원을 확보할 수도 있다.
육류 판매 업체 입장에서는 어떤 이득을 보나.
일반 대형 마트나 소셜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해 고기를 팔면 최소 15~20% 이상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우리 플랫폼에서 육류 구매가 이뤄졌을 때 3.5%의 수수료만 낸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마케팅 활동도 지원한다. 육류 사진과 동영상도 우리가 직접 찍어서 올리고 있고, 좋은 가격에 좋은 제품이 나오면 고객에게 푸시 알림을 날려 마케팅을 대신 해주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미수금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고기집을 창업한다고 하면 다수의 업체가 ‘2~3개월 간 외상으로 고기를 제공해주겠다’는 영업을 시작한다. 자신들 제품을 쓰라는 거다. 결국 미수금의 덫에 갇혀 부도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미트박스는 구매자가 선충전을 해야만 품목을 구매할 수 있어 이런 위험이 원천 차단된다.
기존 대형마트나 소셜커머스 플랫폼은 허들이 높다. 미트박스의 입점 자격 조건이 있다면?
대형 마트에 입점하는 것보다는 수월하다 .하지만 B2B 거래 플랫폼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판매 업체여야 한다. 예를 들어, 음식점이 그 거래처를 믿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는데 당장 공급이 끊겨버리면 손해를 입게 된다. 안정성을 위해 현재는 300~500억 이상의 매출을 내는 기업이 입점해 있다.
중간 마진을 취하던 유통·도매업자들은 미트박스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은데.
당연히 반발이 있다. 하지만 등록되어 있는 외식업체만 60만 개다. 그 중 유통업자는 만분의 일도 채 되지 않는다. 고기 가격이 오르면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게 소비자다. 하지만 반대로 고기 가격이 내렸을 때 가장 늦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소비자다. 유통 업자가 가격을 서서히 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할까. 답은 명백하다.
기존 유통업자들도 미트박스를 통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유통업자도 우리의 판매 고객으로 등록할 수가 있다. 이를테면, 대구 돼지와 강원도 돼지 가격이 현재 차이가 난다고 가정해보자. 대구에서 싼 가격에 돈육을 사서 강원도에 팔면 이익을 볼 수 있다. 실제 우리 플랫폼에도 그런 유통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다나와, 네이버 가격 비교와 같은 가격 비교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용산 전자 상가가 몰락했다. 앞으로 축산계 역시 소비자가 칼자루를 쥐는 투명한 시장으로 변해갈 거라고 본다.
향후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해갈 예정인가.
먼저 단순 시세 정보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좀 더 고차원적인 분석 리포트를 제공하고 싶다. 국제 시세, 곡물 시세, 질병 발생 지역 등의 정보를 조합해 가격을 예측해주는 시스템이다. 블룸버그처럼 기존 시세 정보에 인사이트를 넣어 좀 더 가치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또 물류 쪽 투자를 계획 중이다. 강원, 호남, 경상도 지역에 각각 유통 허브들을 세울 예정이다. 현재는 오뚜기의 물류 자회사인 OLS와 파트너쉽을 맺고 익일 배송 체제를 하고 있다. 자체 허브가 구축되면 당일 배송까지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투자도 더 유치할 예정이다.
향후 목표를 말해달라.
올해 내로 월간 거래액 60억 원을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내년 상반기에는 손익분기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19년에는 연간 거래량이 조단위까지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중장기적인 방향은 두 가지다. 앞서 말했듯 식자재 분야에 있어서는 블룸버그 같은 데이터 분석 기업이 되고 싶다. 국내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아시아, 유럽까지 모두 아우르고 싶다. 동시에 고도의 지능화된 물류 기업으로 거듭나는 게 꿈이다. 축산업, 외식업계와 상생하는 오래 지속 가능한 플랫폼이 되고 싶다. 지켜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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