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하는 모든 물건을 살 수 없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욕망을 뒷받침해줄 정도로 충분한 액수의 돈이 수중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대안은 있다.
가방 렌탈 서비스 더클로젯(theclozet)은 이러한 개인의 욕망을 풀어주는 서비스를 제공중이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가방을 월정액으로 대여해 준다. 여기에 당일배송, 한 달에 3번의 교체까지 가능하다.
동명의 스타트업 더클로젯은 시작단계의 기업이지만, 대표인 성주희씨는 창업경력 7년차의 연속 창업자다. 그가 이 사업을 선택한 이유, 그리고 이 사업을 통해 지향하는 바를 들어봤다.
네 번째 창업이다.
학원, 의류 쇼핑몰, 소셜 벤처를 거쳐왔다. 어느새 7년 차다. 9월 1일 더클로젯을 론칭했으니, 갓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더클로젯은 2014년부터 해왔던 에코백 브랜드 위브아워스(weaveours)의 연장선상에 있다. 위브아워스 시절까지 합치면 2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있었던 셈이다.
‘에코백을 파는 위브아워스’와 ‘명품백을 대여하는 더클로젯’은 성격이 전혀 다른 서비스로 보인다. 피봇의 계기와 목적은 무엇이었나.
패션 재화 낭비 문제를 풀고자 한다는 점에서 두 사업의 뿌리는 같다. 영국을 기준으로 한 사람당 1년 섬유 소비량이 30kg이다. 평균적으로 옷 한 벌을 6번 입고 버린다. 이런 재화 낭비는 환경 파괴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노동 문제로도 번질 수 있다. 위브아워스는 에코백 브랜드로, ‘회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고객이 안 쓰는 가방을 회수해 업사이클링해서, 제 3세계에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회수가 잘 안되더라. 제조업 자체의 한계도 느꼈다. ‘회수가 필수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업이 뭘까를 고민했다. 그런 숙고 끝에 탄생한 서비스가 가방 대여 서비스인 더클로젯이다.
고가의 명품 가방을 대여해 소비 문제를 개선한다는 말이 잘 와 닿지 않는다.
겉에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이 사업의 말단에는 ‘패션 공유 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는 미션이 있다. 위브아워스 때는 제조와 회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고객에게 ‘착한 소비’를 설득해야 했다. 반면에 더클로젯은 회수에 집중한다. 공유를 통해 한 제품의 수명을 최대로 늘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정의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좋은 일인 동시에 고객에게도 확실한 이익이 돌아간다. ‘좋아서 한 소비’가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게 진정한 소셜임팩트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고객은 월 정액으로 일정기간 고가 브랜드의 가방을 소유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실 명품백을 내세운 이유는 고객 유입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이후에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등으로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패션 공유 경제’에 대한 세계적인 트렌드를 소개해 준다면?
일본 기업 락서스의 발표에 따르면, 패션 공유 경제 규모는 40조 원을 넘을 것이라 한다. 유럽, 영미권 및 동남 아시아에서 렌탈 비즈니스가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유니콘 기업인 렌트더런어웨이(Rent the runway)는 2009년 파티복 대여로 사업을 시작했다.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을 10분의 1 가격으로 빌려준다는 컨셉으로 말이다. 현재는 의류, 잡화 전 부분을 다 다룬다. 연 매출은 8천억이 넘는다. 아마 이들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업을 시작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선택했고, 이들은 돈을 벌었다. 동시에 ‘패션 공유 경제 문화’가 메인 스트림이 됐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회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지 않을까.
잘 된다는 전제조건이 붙겠지만,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 경계할 수 있다고 본다.
렌트더런어웨이의 경우 오히려 브랜드들이 좋아한다.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첫 경험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구매할 수 있는 고가 가방의 수는 한정되어 있지 않나. 하지만 렌탈 서비스를 통해 여러 브랜드의 가방을 들어본 사람은 잠재 고객이 되는 거다. 고객에게는 경험 가치를 주고, 브랜드에게는 잠재 고객을 만들어준다.
명품 대여 서비스가 없는 것이 아니다. 더클로젯의 제품 대여 절차는 어떻게 되나.
기존 오프라인 거래의 경우, 얼굴을 아는 단골을 대상으로 거래를 한다. 하지만 고객이 직접 매장을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또 온라인 거래의 경우 고객이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총 8가지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신분증, 메일 주소, 집 주소, 심지어 재직증명서까지 요구한다. 우리는 이 단계를 단축하면서도, 분실 위험을 줄일 수 있게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이트 내에서는 핸드폰 본인 인증과 신용 카드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다. 이후에는 원클릭 결제까지 접목할 예정이다.
시스템이 어려워 보이지 않고 시장성도 보이는 사업인데, 왜 다른 회사들은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을까?
이 서비스를 구상할 때 이미 하고 있는 기업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찾아보니 없더라. 진짜 아무도 안 하고 있길래, ‘아, 창업 네 번째 만에 이제 진짜 내 차례가 왔다’고 생각하고 덥썩 물었다.
우리가 서비스를 출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업 계열사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출시하기는 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지금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 품목의 집중도 그리고 배송 부분에서 우리와는 다른 궤를 걷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사업의 목적이 다르다는 거다. 우리의 목표는 패션 공유 경제 문화를 키우는 거다. 미션이 있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때까지, 끝까지 갈 거다.
가방으로 아이템을 한정한 이유는 뭔가. 명품 의류도 취급할 수 있었을텐데.
일단 가방 분야는 제조, 판매, 회수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의류는 소비자의 니즈가 너무 다양하다. 치수, 재고, 개인 취향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다. 적은 자본으로 재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아이템이 가방이라고 봤다. 향후엔 캐리어, 여행 가방도 다루는 등 가방 분야로만 더 깊게 파고들 예정이다. 가방에서만큼은 ‘더클로젯’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가방 품목 선택 기준은 뭔가.
먼저 내부적으로 구매 상한가를 정해놨다. 그 이상은 넘기면 안 된다. 또 너무 상처가 쉽게 나는 예민한 재질의 가방은 일단 제외 했다. 우리가 내거는 브랜딩은 ‘럭셔리’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다. 짜여진 예산 안에서 다양한 성격의 브랜드를 조합해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처음 우리가 서비스를 기획할 때 가졌던 전략은 프리미엄, 신진 디자이너, 컨템포러리 브랜드를 골고루 잘 섞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품목은 서른 개 정도로 많지 않지만, 선호도가 높은 모델을 파악해 유휴 재고도 늘릴 예정이다. 우선 10월 중 품목이 두 배 정도 늘어난다.
대여 서비스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생활 스크래치다. 잘못하면 큰 돈을 물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서비스에서 생활 스크래치 부분은 안심해도 된다. 대여 된 가방의 3분의 1이 망가져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AS 예산을 따로 책정해뒀다. 그런데 아직까지 보수 비용은 0원이다. 다들 너무 깨끗하게 사용하고 되돌려 준다.
기본 서비스 외 배송부분이 강점이라고 본다. 자체 배송을 원칙으로 하나.
그렇다. 팀원 3명이 직접 발로 뛰고 있다. 기본적으로 무료 배송이고, 오전에 주문하면 당일 오후에 받을 수 있다. 2시간 내에 받고 싶으면 특송비 만 원만 지불하면 된다. 기존 렌탈 서비스와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다. 자체 당일 배송은 고객 입장에서도 좋지만, 우리에게도 이득이다. 먼저 직접 고객과 대면하기 때문에 분실 위험이 줄어든다. 또 직접 배송을 하면 실시간 재고 관리가 가능하다. 일반 택배로 배송하면, 동시에 2개 제품이 묶이게 돼서 효율이 떨어진다. 매번 유니폼을 갖춰 입고 방문하는데, 고객 접점 확장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더클로젯의 진정한 경쟁자는 어디라고 보나. 중고 시장이나 모조품 시장이 될 수도 있겠다.
중고, 모조품 시장의 규모가 크다는 건, 역으로 우리가 점유할 수 있는 시장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당연히 현재 온·오프라인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명품 가방 렌탈 서비스가 1차 경쟁자다. 더 나아가 우리는 스파 브랜드를 강력한 경쟁자로 보고 있다. 스파 브랜드는 유행에 민감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제품을 경험하고 싶은 소비자들을 확보해 성장해 왔다. 우리가 스파 브랜드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회원 간 거래(P2P)도 얼마든지 가능할 모델로 보인다.
P2P 공유 모델도 고려해봤다. 하지만 설문 조사 결과가 안 좋았다. 일단 직장인 여성이 가지고 있는 명품 가방의 수가 많지 않다. 돈 몇 푼 벌겠다고, 자신의 소중한 가방을 내놓고 싶지는 않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 분야 공유 경제 활성화는 시기상조라 봤다. VIP 만을 위한 폐쇄적 형태의 개인 간 거래 마켓은 가능하리라 본다.
투자 계획은 있나.
운 좋게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해외 엔젤투자자로부터 초기 자금을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 11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본격적인 IR에 나설 예정이다. 커머스와 O2O, 렌탈 비즈니스에 관심 있는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싶다.
사업은 대표 혼자하는 것은 아니다. 팀의 강점을 소개한다면.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있다. 운영 총괄은 넥슨에서 10년 이상 인사 부문을 맡았던 전문가고, 마케팅팀장은 리모택시, 바풀 등에서 경력을 쌓은 O2O 인재다. MD는 보그걸, 휴고 보스 등 패션계에서 오래 일해 네트워크가 넓은 사람이고. 공동 창업자인 디자이너는 위브아워스 시절부터 함께 일해온 동료다. 이후 개발자 동료를 영입할 계획이다.
해외 진출 계획은 어떻게 되나. 해외 시장에는 이 분야 주요 기업이 존재한다.
일본, 유럽, 미국은 우리의 타깃 시장이 아니다. 중국의 경우도 O2O 서비스가 너무 많고, 진입이 어렵다. 우리 목표는 동남아 시장이다. 국내에서 사업을 공고히 한 후 빠르게 진출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신진 브랜드도 해외에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엔젤 투자자가 싱가폴에 사업 네트워크가 넓다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본다.
내년 상반기 까지의 단기 목표를 말해달라.
투자유치 유무에 따라 시기가 유동적이겠지만, 부산지역에 진출하는 거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방을 빌려서 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문화를 만들고 싶다. 오히려 가방을 직접 구매하기 전, 렌탈해서 자신과 궁합을 따져보는 게 쿨하고 스마트하다는 정서를 형성시키고 싶다. 패션 공유 경제가 일상이 되도록 만드는 라이프스타일 체인저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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