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2.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1999년 3월, 나의 첫 직장 한국종합기술금융(현 KTB 네트워크)이 민영화되었다. 1997년 12월 발생한 IMF 때에도 현금이 넘쳐 은행에 Call 자금 돌리기도 했던 회사가 하루 아침에 스웨터 만드는 의류회사 ‘미래와사람’에 인수된 것이다. 국내 최고의 벤처캐피탈 회사로 자존심 하나로 지내온 직장 선후배들은 한마디로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인수를 주도한 한국 M&A와 대표인 권성문 사장이 경영진으로 들어왔다.
1981년 설립되어 1996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우리나라 대표 벤처캐피탈회사가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DJ 정부의 민영화 바람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그리고, 그 전까지 듣도 보지도 못했던 사람에게 인수된 것이다.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난 입사 3년차인 말단 사원이다 보니 그 충격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부장급 이상 선배들은 제법 동요가 있었다.
KTB가 여의도에 있었던 시절이다. KBS 별관 바로 뒤에 있는 KTB 빌딩, 거기에 인수팀이 몰려왔다. 권성문 대표이하 이정주 전무, 백기웅 상무, 조강본 감사가 신규 경영진으로 합류하고 기존 경영진은 다 떠났다. 몇몇 부장급 이상 선배들도 회사를 떠났다. 신임 경영진은 인수자금(92억원) 납입 후 2차례에 걸쳐 유상증자를 거쳐 지분율을 제법 끌어 올렸다. 유상증자시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임직원들의 자율적(?) 참여를 유도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나도 회사에서 연결해준 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아 유상증자에 참여하였다.
유상증자로 인수 당시 약속한 자금을 모두 확보한 신임 경영진은 본격적으로 제 색깔을 내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바꾼 것은 출근을 한 시간 앞당긴 아침 8시 출근이었다.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된다나. 나 같이 아침 잠 많은 사람에겐 제일 싫은 조치였다. 그리고, 신임 경영진은 회사 경영난을 이유로 구조조정에 착수하였다. 경영 정상화되기까지 급여 30% 상당을 삭감한 것이다. 나의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 것이다. 가뜩이나 술 값도 부족했는데, 새파란 청년의 피 같은 돈을 깍다니. 내가 회사 경영에 무슨 잘못을 했다고, 말단 사원들의 봉급까지 깍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피를 거꾸로 솟게 만든 것은 비단 급여 삭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느 직원도 신임 경영진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비록 노조가 유야무야 되었다고 하지만 노조를 다시 살리려는 노력도 없었고, 노조 부활이 어려웠다면(실제론 어느 누구도 노조 위원장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직원협의회 구성을 해서라도 직원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는데 그것도 없었다. 그게 나를 더 열불나게 만들었다.
그 당시 모든 구조조정은 2인자인 이정주 전무의 지시하에 이루어 졌다. 원래 넘버 원은 이런 일로 자기 칼에 피를 묻게 하지 않는 법이니깐. 그래서 모든 비난의 화살이 이전무에게로 쏠렸다. 애꿎은 전무님이 무슨 죄가 있었겠냐만은…
그 당시 젊은 혈기 28세의 청년 이희우는 그런 상황을 그냥 보고만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회사의 구조조정안에 모두 동의하는 것이 아니고, 하물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난 이내 사내 인트라웨어에 접속했다. 핸디소프트에서 만든 인트라웨어엔 사내 게시판이 있었다. 게시판에는 기명 또는 무기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었다. 난 글쓴이를 무기명(무명씨)으로 선택하고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專務(전무)
專務가
全無하여
全霧하니
田舞하게나
이렇게 쓰고 ‘올리기’ 버튼을 클릭 했다. 기분이 묘했다. 과연 몇명이 이걸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단 네줄짜리 漢詩이다. 그것도 다 동음이의어인 ‘전무’이다. 전무가, 전무하여, 전무하니, 전무하게나. 직원들이 이해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한시에 해석을 곁들이기로 했다. 물론 이번에도 무기명으로. 그런데, 과잉친절이었다.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그 한시로 인해 KTB 나올때 까지 가슴 졸이고 산 것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專務(전무)
專務가 (전무가)
全無하여 (완전 무식하여)
全霧하니 (모든 게 안개속 같으니)
田舞하게나 (딴짓 말고 밭에서 춤이나 한판 추세요)
클릭하는 순간 속이 시원했던 것도 잠깐, 이내 불안감이 밀려왔다. 금새 조회수가 100회가 넘어갔다. 순식간에 전직원이 본 것이다. 죄 지은 사람처럼 초조불안 상태가 지속되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 사무실을 바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술을 마셨다.
그 다음 날, “이거 올린 놈 당장 찾아내! 본때를 보여야돼” 전무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전산실이 난리가 났다. 그 시간에 접속한 ID는 물론 IP 주소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다 한시 얘기를 한다. 난 모른 척 했다. 오후 무렵 전산실에 근무하는 입사동기인 안상준(현 코오롱인베스트먼트 상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지?”
…. “엉”
난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안상준은 내가 중국에도 있었고 시 쓰는 것도 좋아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대 접속자는 몇명 없었는데 그런 시를 쓸 놈(?)은 너 밖에 없었다고 한다. 순간 멍!,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안상준은 무기명 게시판이 그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누가 썼는지 공개되면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직원들이 울분을 토할 유일한 언로라고. 그 당시에는 나 말고도 민영화로 인해 상심한 직원들에게 위로의 글을 많이 올려준 ‘파랑새’라는 필명을 가진 분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총무부, 전무님의 압박에도 끝까지 소스를 오픈하지 않았다. 그 안상준 덕분에 내가 아직도 VC에 있을 수 있는 거다.
이 지면을 빌려 이정주 전무님께 사죄드리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전무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혹 아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으셨기 때문에 현재의 제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전무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를 직접적으로 VC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도움을 준 동기 상준이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