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더이상 외롭지 않다. 연결하고 참여하고 다시 태어난다.’ 제주 더 크래비티 2016 현장
지난주 제주벤처마루에서는 ‘제주 더 크래비티’라는 행사가 열렸다. 올해로 2번째. 창조적이란 뜻의 creative와 중력을 의미하는 gravity를 조합한 크래비티라는 단어는 이 행사의 성격을 정확히 표현한다. 창조적이고 새롭고 낯선것들을 제주도로 끌어들이는 서로의 힘. 이 중력은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얽힐 수록,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적될 수록 점점 커져나가게 될 것이다.
외롭고 고립된 이미지의 제주섬은 최근 몇년간 큰 변화를 겪고있다. 관광객과 이주민의 수가 급증하고 이로인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음들 속에 양질변환의 에너지가 꿈틀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주민의 시각으로 본 제주, 제주도민들의 전통에 대한 새로운 각성, 고립된 섬이 아닌 전세계와 네트워크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의 지정학적 위치, 지역성에 기반한 산업적 고민, 제주에서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젊은 창업자들의 노력 등. 이 모든 것으로 제주 곳곳이 시끄러우며, 이번 제주 더 크래비티는 그 소란스러움의 축소판처럼 흥겹고 떠들석한 축제의 연속이었다.
이번 제주 더 크래비티의 큰 흐름 중 하나는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주목과 노력이었다. 우선 크래비티의 주요 행사로 ‘The Rise of the co-working space in Jeju’라는 글로벌 컨퍼런스가 열렸다. 방콕의 디지털 노마드 공유공간으로 유명한 허바 타일랜드의 창업자 아마리트 차론판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도 역시 디지털 노마드의 허브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방콕도 몇년 전에는 유흥과 관광의 도시로만 알려져 있었다.”며 “작업 공간도 중요하지만 투자와 네트워크가 가능한 스타트업 에코시스템 전체가 함께 집약된 공간이 될 때 스타트업과 디지털 노마드들을 위한 진정한 co-working space”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함께 토론에 나선 베트남 Hub.IT의 바비 리우 역시 “디지털 노마드들에게 인기있는 세부나 페낭 등도 대도시가 아닌 세컨 시티”라며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화산섬으로서의 매력 등 기존 자산을 충분히 활용하고 지역사회와 연계된 개방적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면 서울 등 대도시 못지 않은 창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제주도에서는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실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년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디지털 노마드 관련 컨퍼런스와 사례발표 등이 이어져왔었다. 지난 9월 해커 파라다이스를 통해 제주를 찾았던 디지털 노마드들과 교류하며 제주에서의 작업과 생활을 도왔던 브릿지 참여자들도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지용민씨는 “함께 했던 해외 디지털 노마드들도 제주를 꽤 즐기고 돌아갔다”며 “아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은 있지만 조용한 카페도 많고 작업환경이 좋아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또 제주도에서 디지털노마드 코워킹 공간을 준비 중에 있는 곽재원 cosmo+politan 대표의 발표도 있었다. 곽대표는 올해 4개월간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공유공간들을 돌며 느낀 점들을 설명했다. 여행을 하며 일하고, 일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요리도 배우고 새로운 경험들을 해 왔다는 그는 틈틈히 찍어온 100여장의 사진으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특별한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이미 노마드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제주 더 크래비티의 또 하나의 흐름은 지역성(localization)에 대한 고찰이었다. 급격히 변하는 제주도에서 제주다움을 잃지 않고, 제주도만의 특성을 글로벌화하고 상업적으로 성공시켜 다시 지역 구성원에 되돌리는 일은 최근 제주도의 최대 관심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청년과 IT를 지역성과 결합 시키려는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도시공간에 대한 IT 접합 가능성’이란 주제로 밋업에 나선 제주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이승택 센터장은 점점 쇠락하고 공동화하고 있는 제주시의 원도심 지역을 재생하기 위한 계획을 설명했다. 20년전 만 해도 제주도의 상업과 행정의 중심지였던 원도심은 “제주의 문화적 원형질이 곳곳에 있어 보존가치가 높다. 이 지역을 되살리기 위한 IT기술적 접근을 고민하고있다”고 말했다. 또 “계획수립부터 청년층의 참여와 아이디어가 절실하며 참여를 위한 길은 언제든지 열려있다”며 다양한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주도의 농산물과 IT서비스의 만남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카카오파머도 1년 동안의 성과와 경험을 발표했다. 이상근 매니저는 서비스 런칭 전 농가와 IT회사의 문화적 차이가 커서 한동안 고생했었다며 직원들이 손이 노랗게 될 정도로 귤을 먹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일하고 놀면서 이 차이를 극복해왔다고 설명했다. 1년여의 시범 서비스를 통해 10개 브랜드 40종의 상품으로 올해 8월 정식 서비스로 오픈 했으며,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60%의 농가의 월매출액이 1000만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또 카카오파머의 역할은 정직하고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생산자들을 돕는 일이라며, 생산자들이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디자인, 마케팅과 CS 등으로 상품가치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3기 입주기업으로 선정된 업체들도 자신들의 사업모델과 제주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시소의 박병규 대표는 SI 아웃소싱 플랫폼을 만들고 있으며 이 사업모델을 제주도에서도 충분히 구현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제주에는 우선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시는 분이 많고, 또 리모트 워크를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향후에는 서울 등 다른 곳에 계시는 분들도 잠깐이라도 제주도에 내려와서 일을 할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입주기업 대표들은 입을 모아 입주사가 사업에 성공해야 지원해주는 센터도 빛날 수 있다며 성공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조희제 / 프리랜서 아무거나 기획자, 전 비트도트 대표
제주도를 걷다가 제주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간간히 제주의 새로운 변화와 에너지를 육지에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