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3. 벤처캐피탈 입문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1996년 7월, IMF 터지기 전 한참 성장을 구가하던 시기, 난 삼성 SDS에 입사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인턴교육. 4학년 1학기를 마친 상태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삼성에서 인턴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그 당시로서는 유행하던 입도선매 형식이었다.
7-4제. 이름만 들어도 아찔하다. 인턴 사원들도 새벽 7시까지 출근해서 교육을 받으란다. 유독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주문이었지만, 그래도 삼성 아닌가 하는 생각에 출근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어지는 프로그래밍 교육, C언어, 시스템 등 어쩌고 떠드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차라리 C언어로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시를 쓰라고 하면 그게 더 자신 있는데. 그렇게 열흘이 지나갔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프로그래밍에 메달리다 보니 머리가 거의 돌 지경이었다. 그것도, 경제학을 전공한 나에게는.
저녁 때 하숙집 친구와 술을 마셨다. 서강대 캠퍼스 잔디밭에서. 그 당시에는 캠퍼스에서 술한잔 하는 정도는 허용되던 시기였으니깐. 술마시고 떠들다 12시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잠결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다. 신기하게도 ‘컴퓨터’ 가위에 눌린거다. 신기했다, 내가 프로그래밍을 광적으로 싫어했나 보다. 컴퓨터에도 가위 눌리다니. 그리고, 눈을 뜨니 이미 8시. 죽었다.
9시쯤 회사에 도착했다. 인사부 직원이 부른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여자분이었다. 인턴사원이 정신 나갔느니, 그런 정신상태론 삼성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나를 깬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와 삼성의 인연은 끝났다.
1996년 10월, 도서관 앞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고 있는데 앞에 있던 경영학과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야, 영화투자하면서 놀고 먹는 금융회사가 있데”
“뭐, 그게 어딘데?”
“한국기술금융(현 산은캐피탈)이라고, 선배가 있는데 영화투자하고 맨날 배우들이랑 놀고 그런다던데’
“맞아, 학과 사무실에 한국기술금융 입사원서 나눠주더라구”
(1996년이 벤처캐피탈이 영화에 투자하기 시작하던 해였다. 은행나무침대(강제규 감독)가 아마도 벤처캐피탈의 첫 투자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귀가 쫑끗, 눈이 번쩍. 영화투자하면서 회사를 다닌다? 이거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경제과 사무실로 갔다. 한국기술금융 입사원서 5장이 있는데, 신청을 하면 신청자 중에서 성적순으로 원서를 나눠준단다. 그 당시에는 온라인 지원 이런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회사별로 학교 및 학과를 선택해서 제한적인 입사원서를 배포할 뿐이었다. 우리 경제과에 배정된 것은 5장이었고. 난 바로 공고 게시판에 내 이름을 적어 두었다.
며칠 후, 내 앞순서에서 원서가 마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적때문에 친구들에게 밀린거다. 암울했다. 내 평점 3.01(4.3 만점 기준). 학점이 짜기로 유명한 서강대에서도 더 짠 경제과. 상위 30% 안에는 들었을 거라고 자부하는 성적인데 내가 가고 싶은 회사 원서도 못 받다니.
그리고, 또 2주가 흘렀다. 한국기술금융과 이름이 비슷한 한국종합기술금융(현 KTB 네트워크) 원서 배포 공지가 올라왔다. 한국기술금융과 회사명이 ‘종합’이라는 글자만 더 들어간 회사였다. 이름이 거의 비슷한 것 보니 여기도 영화투자를 할 것처럼 보였다. 바로 입사원서를 신청하였고 운 좋게 원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나와 KTB, 나와 벤처캐피탈의 첫 인연이었다.(사실 그 당시 KTB는 영화투자 부서가 없었다. 영화투자 부서가 생긴 것은 1999년 중반 무렵이었다. 물론 그때 난 거기에 있었다.)
1996년 11월 어느 토요일. 여의도 전경련빌딩(KTB가 전경련빌딩에 입주하던 시절) 앞에 전세버스 2대가 서있다. 난 운 좋게 서류전형, 1차 영어시험(인터뷰 포함)을 통과하였다. 그리고, 1차 집단면접이다. 아침 9시 서류 및 영어시험에 합격한 총 70명의 입사지원자들이 각 35명씩 두대의 버스로 나눠 탄다. 버스 입구쪽에서 노트 한권과 펜 하나씩 나눠준다. 그리고, 토론 면접 주제가 적혀있는 시험지를 한 장씩 나눠준다. 버스는 출발했고 승객들(?)은 시험지를 꺼내들고 토론 준비를 한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 나는 토론 주제 문제 중에서는 1. 포르노 전용 상영관 2. 국가보안법 폐지 3. 기부 입학금 제도 4. 지하경제 활성화 방안 등이 있다.
버스가 가평 KTB 연수원에 도착할때 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도착하자마자 정신 없이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35명씩 나눠 1, 2층 강당으로 이동했다. 난 1층 강당이었다. 자기소개 면접이 시작되었다. 앞 강단에 나가서 3분 동안 자기소개, 입사 지원동기 등을 말하는 시간이다. 뒤에는 인사부 직원이 큰 시계로 남은 시간을 알린다. 2분 50초부터는 경고음이 들리고 3분 되면 마이크를 끊는다. 살벌한 자기소개시간이다.
벤처캐피탈, 난 1차 면접을 가면서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내가 뒷 순서 인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 밖에. 앞의 친구들이 자기소개 및 지원동기를 얘기하는 동안 난 벤처캐피탈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다 파악했고 그것으로 내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멀쑥하게 생긴 한 친구가 막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저는 대학 동아리가 락주회입니다. 떨어질 落, 술 酒. 그래서 뭐든지 떨어지면 회원들과 술을 먹었습니다. 비가 떨어저도, 눈이 떨어저도 술마시고. 성적이 떨어저도 술마시고”. 듣던 친구들이 다 빵 터졌다. 그 친구가 바로 현재 IMM 인베스트먼트에서 상무로 있는 이민근이다.
그리고, 내 소개시간. “벤처캐피탈은 모험자본 입니다. 리스크를 지면서 투자하는 자본이죠. 멋진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그것을 상용화하고 사업화하고 키워가는데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태어나서 부모의 보살핌 아래에서 보호 받으며 크고, 교육도 받고 그래야 제대로 사람구실을 하듯이 막 생긴 기업들도 그런 부모역할을 해주는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벤처캐피탈이고 전 그런 역할을 이 회사에서 하고 싶습니다.”
몇몇 기억나는 친구가 더 있었다. 이승헌(현 SL 인베스트먼트 상무), 김종필(현 한국투자파트너스 전무) 등. 35명 모두 3분 자기소개가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집단토론. 8명씩 소그룹으로 나눈 다음 한 주제를 가지고 찬반 양쪽 편으로 나눠 치열하게 공격과 방어를 하는 토론시간. 토론 면접관 두분이 토론을 주관 하신다. 총 2번 정도 토론을 하는데 그 토론 모두 이승헌, 김종필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것도 인연이다. 둘다 학교 동기들이다.
기부금 입학제에 대해 의견을 묻는다. 그 당시부터 이빨로 유명했던 김종필이 토론을 주도한다. 거기에 밀리지 않고 느린 듯 하지만 정확한 논조를 이어가는 이승헌. 내가 조금 밀린다. 토론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난 마지막 발언을 청했다. “지금까지 기부금 입학제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어느 유명한 경제학자가 말 했듯이 세상 어느 사람보다 부자들이 병원을 더 많이 지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제 의견을 대신하겠습니다.” 그리고, 난 KTB에 합격했다.
1997년 1월 입사한 그때의 동기들이 십수년이 지난 현재, 카카오 · 에이블씨엔씨(김종필), 파티스튜디오 · GD(이승헌), 선데이토즈 · 컴투스(안상준) 등에 투자한 우리나라 대표 벤처투자자로 성장했다. 나만 빼고. 그래서, 내가 아직도 이런 글 나부랭이를 쓰고 있는 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