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역대 최고, 최악의 위기 관리 사례는?
‘홍보(promotion)보다 보호(protection)가 더 중요하다’
보도 자료가 반영되지 않으면 아쉽다. 하지만 위기 관리를 해내지 못하면 회사가 망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는 피알(PR, Public Relation) 업무의 방점을 홍보 활동에 두고 있다. 특히 위기 관리 전문 팀을 갖추기 어려운 여건에 있는 스타트업의 경우, 잘못된 대처가 사고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장 많은 사고가 마케팅 부문에서 발생하지만 사실 상 기업을 위협하는 컴퍼니 킬러(Company Killer) 요인은 다방면에 도사리고 있다. 시장 변화, 내부 인력 유출, 창업자 간의 불화 등, 비가 새는 집처럼 한 곳을 막으면 다른 한 곳이 터진다.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잃을 것이 많아지므로, 위기 관리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게 되어 있다. 한정된 재화를 가진 스타트업이 준비해 놓을 수 있는 최선의 위기 대비책은 무엇일까. 업계 종사자들에게 최고·최악의 위기 관리 사례와 그 대처법에 관해 물었다.
최고의 위기 관리 사례
배달의 민족, 수수료 0% 깜짝 발표 / 위기를 기회로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최고의 리스크 관리다. 2015년 8월, 배달의민족은 배달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배달앱 간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수익성은 낮은 상황에서 결제 수수료로 인해 소상공인을 착취한다는 부정적 여론까지 겪으며 큰 위기에 봉착했던 것이다. 그 때 배달의 민족은 ‘결제 수수료 0%’ 정책을 깜짝 발표했다. 이는 가맹점주와 상생하겠다는 배달의민족의 브랜드 가치를 지킨 결정으로써, 눈앞의 수수료 이익보다는 미래의 브랜드 가치를 염두해둔 결정이었다. 이 결정으로 여론은 돌아섰고, 결정 자체가 상당한 홍보거리가 되었다. 그 이후 배달의민족은 배민다움이라는 자신들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이성길 AD)
8퍼센트, 금감원 웹사이트 폐쇄 사건 / 적극적인 언론 대처와 여론 형성
2015년 2월, 금융감독원은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P2P 대출업체인 8퍼센트에 폐쇄조치를 내렸다. 정식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은 채, 대출을 중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8퍼센트 이효진 대표는 ‘1월 27일 금감원에 질의를 넣고 답변을 기다리던 중에 사이트가 차단되어 당황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후 8퍼센트 이효진 대표는 매체와 각종 포럼 등을 통해 논리적으로 P2P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설명하고 규제 완화를 호소함으로써, 자사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어갔다. 결론적으로는 P2P 대출에 대해 잘 몰랐던 대중에게도 홍보 효과를 거두며, 8퍼센트는 새로운 금융 기업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사례다. 현재 8퍼센트는 업계 선두로 자리잡았다. (투믹스 하희철 PR매니저)
우버, 운전사 수입 감소 논란 대처 / 기업은 데이터로 말한다
2016년 2월, 우버드라이버네트워크 라는 그룹이 미디엄에 글 하나를 게시했다. 이는 우버 대표와 우버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으로, 주요 내용은 사용자 요금은 20% 인하하면서도 기사 수수료는 그대로 유지하는 우버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요금을 2014년 여름 이전 수준으로 원상복귀할 것’을 요구했다. 이 포스팅이 올라온 지 3시간 후, 우버의 트래비스 칼라닉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매해 우버 기사의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는 데이터를 증거로 내세우며 반박했다. 기사 집단이 가족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하는 장문의 감정적 글을 올린 반면, 우버 대표는 이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나 장황한 입장 발표 대신 데이터와 팩트 위주로 간결히 대응했다. 이는 ‘데이터가 말보다 중요하다(Data speaks louder than words)’는 비즈니스의 공식을 잘 증명해주는 사례다. 우버 대표의 이러한 대응은 기사들을 100%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논란은 스스로 잠잠해졌다. (마케팅크루 박혜원 대표)
최악의 위기 관리 사례
미미박스의 여성비하 광고 논란 /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
리스크가 얼마나 업체에 치명적이었는가 보다, 리스크를 얼마나 잘못 관리했는가의 기준으로 생각했다. 2016년 10월, 미미박스는 명품 화장품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틴트 제품을 홍보하며 ‘남친에게 조르지오’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미미박스 측은 여성 비하 광고라는 여성 소비자 항의에 대해 정식 사과를 했고 논란은 어느 정도 수그러졌다. 그러나 실수는 반복될 때 가장 치명적인 법인데, 한 달 후 미미박스는 더 심한 여성비하 광고로 구설수에 올랐다. 바디 미백크림을 판매하면서 ‘늑대들이 좋아하는 핑크빛 유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등의 문구를 광고한 것이다. 화장품을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인 미미박스의 주요 고객은 당연히 여성이다. 이러한 주요 고객의 심리를 잘 읽지 못한 점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위기 관리 사례였다. (이성길 AD)
플레이베이직, 데이트폭력 희화화 논란 대응 / 미숙한 대응의 대표적 사례
깊이 없이 재미만 좇는 브랜디드 콘텐츠가 도리어 큰 리스크를 갖고 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색조 전문 브랜드 플레이베이직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 ‘톡톡’에 한 영상을 올렸다. 내용은 이렇다. 두 남녀가 주차장에서 다툼을 벌이고 있다. 남자가 손찌검하는 것을 말리려 하자, 오히려 여자가 ‘더 때려줘’ 라고 말한다. 이는 자사의 클렌징 제품 ‘싸다구 밀크’의 기능을 부각하기 위한 홍보 영상이다. 기업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다수의 고객은 이 콘텐츠에 대해 ‘데이트 폭력을 미화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한 기업 측 미숙한 대응이 논란에 불을 짚혔다. 플레이베이직 측은 몇일 후 사과문을 올렸지만 사과의 대상을 ‘일부 고객’이라고 특정지었고, 이는 다시 사과의 진정성 논란을 낳았다. 심지어 페이스북 실시간 댓글을 차단하고 홈페이지 후기 작성도 막았다. 이에 결국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으로 대응했다. 진심 어린 사과로 그칠 일이 결국 기업 신뢰도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게 된 사건이었다. (투믹스 하희철 PR매니저)
호주의 테크 스타트업 소셔블, 인터뷰 사건 / 언론을 적으로 만든 기업
호주의 테크 스타트업 소셔블(Sociabl) 사건은 PR 역사 상 가장 실패한 사례로 손꼽힌다. 2016년 1월 출시한 소셔블은, 사용자가 최대 500달러를 지불하면 인기 연예인과 비디오 채팅을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수익의 절반이 연예인이 지정하는 자선 단체에 기부되는 시스템으로, 출시와 동시에 대대적인 언론 홍보에 들어갔다. 그런데 출시 첫날 채널9(Channel9)의 TV 프로그램에 초청된 두 20대 창업가는 날벼락을 맞았다. 바로 인터뷰 진행자였던 유명 가수 데이비드 캠벨(David Campbell)이 앱 내 연예인 목록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있지만, 자신은 계약을 한 바가 없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방송 후 다른 일부 유명 인사들도 참여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소셔블은 출시 하루만에 서비스를 접어야 했다.
당시 소셔블 창업가들은 총 25분 동안 진행됐던 인터뷰가 일명 방송국의 ‘악마의 편집’을 거쳐 3분으로 줄어들었으며, 자신들이 시청률의 희생양이었다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또한 데이비드 캠벨 본인이 아닌 그의 소속사와 계약을 진행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 소셔블의 정직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소셔블의 대 언론 대응이 미숙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소셔블은 비즈니스의 핵심인 언론 및 파트너를 공식적으로 비난함으로써 이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이 경우에는 이들을 비난하기보다는, 반대로 자신들을 옹호해 줄 파트너를 찾는 편이 현명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마케팅크루 박혜원 대표)
스타트업스러운 ‘위기 관리 매뉴얼’ 이라는 것
위기 관리의 중요성을 모르는 창업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생존을 위해 급한 업무부터 처리해내는 매일을 보내다보면, 미래에 발생할 문제까지 대비할 여력이 없다. 당장 내일의 급여 지급이 가장 큰 위기 상황인 기업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성장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스타트업의 경우에도, 마케팅 담당자가 홍보 업무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위기 대응에 취약하다.
그러나 홍보전문회사 케첨 코리아의 문지영 이사는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위기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평소 대비책을 세워두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타트업 운영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위기 관리에 대해서도 대표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체계를 갖춰놓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대규모 조직이 활용하고 있는 매뉴얼의 경우 자금과 시간, 인력적 여유가 모두 부족한 스타트업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문지영 이사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경우 다음 목록을 간략히 정리해놓고 수시로 정보를 갱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1. 자사 비즈니스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 목록 작성 (기업 재정, 임직원 윤리, 고객 관리 상의 문제, 제품·서비스 관련 리스크 등)
2. 위기 발생 시 비상 연락망 및 리포팅 체계 구축
3.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채널 목록 작성
4.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콘텐츠 의사 결정권자 목록 작성 (대표 및 주요 임직원, 홍보 담당자 등. 스타트업의 특수한 상황 상 주요 멘토, 투자자, 엑셀러레이터 등도 자문 위원으로 포함 가능)
위기 상황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6가지 행동
‘해야하는 일’만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업계에 터진 일부 대형 사건들에서는, 부적합한 사후 대처가 논란에 부채질을 한 격이 됐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호소, 대표의 직접 개입, 논란의 핵심을 빗겨간 사과문 등이 대표적인 예다. 글로벌 PR 회사 에델만의 고영삼 차장이 위기 상황에서 스타트업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여섯 가지를 꼽았다.
1. 거짓말하지 마라.
정보화 시대에 거짓은 드러나게 되어있고, 그것이 밝혀질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신속히 밝혀야 한다.
2. 핑계와 입장 해명은 다르다.
미디어 응대 시에는 항상 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이야기 해야 한다. 또한 기업 입장만을 강조하거나 타기업, 타인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멘트도 적절치 않다.
3. 전문·기술 용어 사용을 자제하라.
미디어는 고객과의 소통 창구다. 문제 발생 시 미디어를 통해 고객에게 기업의 이야기를 전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언제나 고객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4. 노코멘트 대응은 금물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밝힐 수 없는 부분이라면, 그 이유를 미디어에 설명하라. 노코멘트는 오히려 책임감 없는 기업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다.
5. 미디어의 연락을 피하지 마라.
무책임한 대응은 새로운 기삿거리를 만들 수 있다. 물리적인 한계로 모든 미디어의 연락을 응대할 순 없지만, 최선을 다해 소통하라. 기업의 입장을 빠르게 정리하여 입장자료를 배포하는 것도 방법이다.
6. 개인적인 의견은 노출하지 마라.
미디어와의 통화, 인터뷰는 개인이 아닌 기업의 공식 입장임을 명심하라. 특히나 기업의 입장과 대치될 수 있는 개인 의견은 위기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