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328] “와비파커같은 구두 테크 기업이 되겠다”, 트라이문 김사랑 대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는 ‘구두 상궁(foot woman)’이 있다. 그녀의 역할은 궁전 카펫 위를 걸어 다니며 새 구두의 길을 들이는 것. 여왕이 신는 순간 바로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왕실이 정식으로 사람을 고용할 정도로, 구두는 우리가 몸에 두르는 의복 중 착용감에 가장 민감한 아이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두는 신어보고 사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인데, 기존의 온라인 쇼핑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치수가 맞지 않거나, 착화감이 불편할 경우 반품과 교환 배송료는 온전히 구매자가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사랑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어보고 살 수 있는 온라인 구두 쇼핑몰’을 만들었다. 구매, 반품, 교환에 따른 배송료가 모두 무료다. 향후 ‘와비파커(Warby Parker)’와 같은 패션 테크 기업으로 성장해나가고 싶다는 트라이문(Try Moon)의 김사랑 대표를 만나봤다.
트라이문 김사랑 대표
두 번째 창업이라고 들었다.
원래 대학 때부터 창업에 관심이 있었다. 대학 졸업 시즌에 공간 예약 플랫폼 서비스를 잠시 운영했었다. 후에 대기업 신사업 개발팀에 재직했는데, 당시 우리 팀 아이템이 사내 경진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실리콘밸리 견학을 하게 됐었다. 그때 현지에서 창업가들을 만나며 다시 한번 창업 의지를 불태우게 됐다.
트라이문 사명의 뜻은 무엇인가.
애플처럼 별 뜻이 없다. 그냥 달을 좋아한다. 처음에 구두 네 켤레를 직접 신어보고 선택하게 하자고 해서 트라이(Try)라는 단어를 넣었다. 실제 그렇게 운영을 하다가 효율성 문제로 지금 모델로 피벗을 했다.
패션 분야, 그것도 구두라는 아이템으로 창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재학 시절 서울패션위크에서 연출 기획팀을 맡으면서 패션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구두 자체를 특별히 좋아했던 건 아니다. 2015년 정도에 안경 기업 와비파커의 홈 트라이온(Home Try-On) 전략이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5일 동안 5개의 안경을 100% 무료 배송비로 착용해본 후 물건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어떤 아이템에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해봤다. 그렇게 선택하게 된 것이 구두다. 구두는 디자인에 따라 착용 치수, 착화감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온라인 구매가 쉽지 않은 품목이다. 이런 이유로 착용 후 무료 교환 시스템이 꼭 맞는 카테고리이기도 했고, 경쟁보다는 시장 파이를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거라 봤다.
5개의 시험 착용 샘플을 집으로 배송하는 와비 파커
트라이문이 일반 구두 쇼핑몰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트라이문을 스타트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우리는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분명하다. 앞서 말했듯 구두는 치수와 착용감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구매가 더 일반적이다. 이 사이즈 교환 문제를 온라인상에서 풀기 위해 트라이문을 시작했다. 우리는 회원가입 시 애용하는 구두 브랜드, 자주 착용하는 치수, 구두 착용 시 불편한 점(뒤꿈치가 까짐, 발 볼이 꽉 낌) 등의 정보를 고객에게 꼼꼼히 수집한다. 그래서 선택한 제품이 해당 고객에게 잘 맞지 않으리라 판단할 시에는, 직접 전화로 치수 변경 권유를 하고 있다.
또 고객이 신어본 뒤, 마음에 들지 않을 시에는 무료 교환, 반품을 받을 수 있다. 무료 배송의 경우 많은 쇼핑몰이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환이나 반품을 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배송료를 지불해야 한다. 온라인 구매이기 때문에 바로 신어볼 수는 없지만, 최종 결정은 신어본 후에 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구매 장벽을 없애는 거다.
타 쇼핑몰들도 무료 교환, 반품 시스템이 좋은 호응을 얻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거다. 하지만 수익 문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초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때 미국의 자포스를 많이 참고했다. 신발 무료 교환, 반품 서비스로 유명해진 기업인데, 이들의 평균 반품률이 30%다. 하지만 자포스 고객의 재구매율은 75%에 달한다. 무료 반품 서비스가 이들에게 있어서 손해가 아닌, 리텐션(retention) 요소가 되었던 거다. 자포스를 벤치마킹했지만, 우리는 사전 정보 수집을 통해 평균 교환율을 6%까지 낮췄다. 고객의 데이터를 정리해서 구두 디자인이 조금 특이하다고 하면 무조건 전화를 걸어 구매자와 상담을 한다.
현재 손익분기점은 넘긴 상태인가.
1년 정도 됐는데, 론칭 10개월 만에 월 매출 1억 원을 넘겼다. 타 플랫폼 커머스는 마진율이 15% 정도인 것에 반해 우리는 마진율이 50%에 육박한다. 향후에는 자체 제작 상품을 늘려 60~70%까지 마진율을 늘릴 계획이다.
고객 상담이 서비스의 핵심 부분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자포스의 경우 메인 역량이 CS팀에 있었다. 일례로, 근처 피자집이 어디냐고 묻는 고객에게 친절이 응대함으로써 신뢰를 얻었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10년 전의 일이고, 우리는 자포스를 벤치마킹하지만 그보다 더 앞서 나가야 하는 세대가 아닌가. 트라이문은 CS 부문을 점차 자동화해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했던 교환, 반품, 오배송 관련 상담을 현재 100% 챗봇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챗봇 설계 방식에는 미리 결괏값을 결정해주는 룰베이스(Rule-based)와 컴퓨터가 스스로 질문에 대한 최적의 답을 찾아내는 딥러닝(Deep-learning)이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딥러닝 방식으로 개발했지만, 교환·반품 문의 응대에는 룰베이스 방식이 정확도가 높았다. 현재 정확도는 98% 정도 된다. 이를 통해 초기엔 세 명으로도 감당하기 힘들던 고객 상담을 현재 한 명이 여유롭게 하고 있다. 물론 하나뿐인 개발자는 거주지를 아예 회사 근처로 옮겼다.
자포스의 서비스 전략을 벤치마킹하면서도, 기술력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점이 인상적이다.
원래 성격이 귀찮은 것을 못 참아 한다. 대학생 때도 고액 과외가 여러 개 들어와 한 달에 300~400만 원 정도 벌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과외 선생을 할 것도 아닌데, 그걸 다 하고 있기가 너무 귀찮은 거다. 결국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중간에서 중개 수수료를 100만 원씩 받았다. 트라이문을 하면서도, 똑같은 내용의 상담 전화를 몇백 통 받다 보니, 이 비효율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트렌디한 디자인의 구두를 빠르게 생산하고,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향후 추가로 서비스에 접목하고자 하는 기술이 있다면.
사이즈 상담 문제는 사이즈 알고리즘을 통한 최적화된 사이즈 추천 시스템이 4월 중 도입될 예정이다. 또한, 증강현실(AR) 앱을 이용한 가상착용 시뮬레이션으로 오프라인에서 시착해보는 형태의 사용자 경험을 줄 예정이다. 최근에 유행하는 스노우나 여타 메이크업 앱처럼, 자신의 발을 카메라로 비추면 그 위에 해당 구두가 겹쳐져 보이는 형태다. 와비파커 역시 홈페이지상에서 웹캠을 통해 가상으로 안경을 착용해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앱이 출시되면,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구두를 매치해볼 수도 있다. 일종의 오락적 요소도 가미되는 거다. 앞으로도 성장 단계에 따라 적절하게 IT 기술을 접목해서 사용자 편의와 효율성을 높이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기성화와 자체 브랜드 제품의 비율은 어떻게 나뉘나.
재고보관단위(SKU) 비중으로는 수제화가 15%, 기성화가 85% 정도 된다. 매출 비중으로는 수제화가 30%, 기성화가 70% 정도다. 기성화 중에서도 사입 제품과 자체 제작 제품이 있는데, 계속해서 자체 제작 제품 수를 늘려나가고 있다. 단순 유통 플랫폼이 아닌, 하나의 통일된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목표다. PB 제품이 많은 것이, 사이즈 검수가 중요한 우리 비즈니스 모델에도 맞다.
신발 디자이너는 내부에 있나.
내가 디자이너다.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향후 회사 규모가 커지면 자체 디자이너를 고용할 의향이 있다. 특이한 디자인의 신발보다는, 자라와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와 같이 해당 시즌에 수요가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 판매하는 게 목표다.
자동화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나면, 치수와 착용감이 중요한 다른 패션 아이템에도 서비스를 접목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는 구두라는 아이템 하나로만 깊게 파고들고 싶다. 다만 활동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동남아, 특히 인도네시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특별히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나의 가족이 살고 있다. 또 넥스트 차이나로 불리고 있는 큰 시장이기도 하다.
창업한 지 일 년 정도가 됐는데, 가장 많이 배운 점은 무엇인가.
거창한 걸 느끼진 않았다. 다만 투자금 없이도 지속 가능한 경영이 될 수 있도록 수익 구조를 만들어놓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현재는 이에 집중하고 있다.
채용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iOS 앱 개발자를 찾고 있다. 앞서 말했던 증강 현실 앱을 설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조직은 성과주의다. 쓸데없는 회의 없이 자유롭게 일하면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은 그냥 잘하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향후 단기, 중장기 계획을 말해달라.
현재 월 매출액이 1~2억을 오가고 있다. 올해 안에는 월 매출 5억으로 끌어올리고 싶다. 중장기적으로는 앞서 말했듯, 증강현실 기능이 포함된 앱을 출시하는 것이다. 앞으로 1년 반 정도를 내다보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 진출도 성공적으로 이끌고 싶다. 열심히 하겠다.
좌측부터 박여진 오퍼레이션 매니저, 김사랑 대표, 문성수 C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