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384] ‘공대 형’ 같은 엑셀러레이터 되겠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이용관 대표
이용관 대표는 2000년, 반도체 장비의 핵심 기술인 플라즈마 전문 기업 ‘플라즈마트’를 창업해 2012년 미국 나스닥 상장기업에 매각했다.
연구실에서 출발한 창업가로서, 스스로 겪었던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이에 후배 창업가들을 돕고자 설립한 딥테크 엑셀러레이터가 바로 ‘블루포인트파트너스(Blue Point Partners, 이하 BPP)’다.
BPP는 다른 테크 엑셀러레이터들과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을까? 테크 업계의 ‘공대 형’같은 엑셀러레이터가 되고 싶다는 BPP의 이용관 대표를 만나봤다.
창업과 엑싯의 경험이 있는 투자자다.
첫 창업은 대학원 2학년 때 했다. 2년 정도 하다 빨리 접었다. 대학원생이 교수님 다섯 분과 사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 그 후 대학원 4학년 때 만든 것이 플라즈마트다. 약 12년 정도 사업을 했는데, 앞의 6년이 뭘 해도 안 풀렸던 시기였다.
잘 안되는 회사가 초반 6년을 버틴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그땐 학생이었고, 원래 창업 초반 3년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재미가 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6년간 비즈니스적인 성과는 거의 없었다.
그저 ‘창업을 했다’는 것에만 의의를 뒀던 건가.
그렇다. 고객 발굴도 꽤 했지만, 결정적인 사업 모델을 못 찾았다. 개발에 성공하고, 일을 열심히 하고, 여러 개의 특허를 따내는 것과 그 기술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매출이 있긴 했지만 투입 대비 성과가 적었다.
무엇이 초반 6년을 힘들게 만든 원인이었다고 생각하나.
기술에만 빠져 있었다. 반도체 장비를 만들 때, 플라즈마 소스는 그 장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자동차로 치면 엔진과 같다. 나는 당시 한 번 그 장비를 잘 만들어내면, 여러 회사에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장비는 그 제품의 정체성이 된다. A 업체가 우리 장비를 사면, B 업체에서는 안 산다. 독점적 권리를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대량 판매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장비를 사 간 기업은 돈을 많이 벌었는데, 우리에겐 수익이 별로 없었다. 6년을 그렇게 지냈고, 그 뒤로 해외 기업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아 매각까지 한 것이 그 뒤의 6년이다.
테크 스타트업은 너무 핵심적인 기술을 다뤄서도 안 되는 건가.
내가 다시 12년 전으로 돌아가면, 플라즈마 소스가 아닌 반도체 자체를 만들었을 것이다. 자동차로 말하면 엔진이 아니라 그 엔진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완제품, 즉 ‘자동차’를 만들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스타트업이 하기에 자본, 기술적으로 어려운 종목이 아닌가.
어려워도 투자를 받고, 관련 전문가를 뽑아서 어떻게든 밀고 나갔어야 한다. 그 경험을 통해 기술을 시장에 팔 때는, 그마다의 적합한 형식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의 엔지니어들은 시장 경험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공은 엄청 들이지만 경쟁자들에게 영감만 주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테크 기업 창업자로서 느꼈던 어려움을 돕고자 BPP를 설립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BPP는 ‘딥테크’ 기업에 투자한다고 알려져 있다. 딥테크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우리가 말하는 딥테크는 기반 기술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핸드폰 한 대에도 여러 기술이 들어있다. 일단 사용자 접점, 즉 표면에 해당하는 UI, UX 기술이 있다. 우리는 이를 스킨테크(Skin Tech)라고 부른다. 반면 그 아래쪽에는 핸드폰에 쓰이는 소재와 부품 등의 컴포넌트(component) 기술이 필요하다. 이 밑바닥에 있는 기술을 딥테크라고 나름의 정의를 했다.
딥테크와 스킨테크를 자로 잰 듯 나누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율의 문제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 100% 딥테크, 100 스킨테크 기업은 없다. 다만 화장품 기업을 구분해본다면, 화장품 추천앱을 서비스하는 기업보다는 화장품에 쓰이는 새로운 원료를 발굴해낸 스타트업을 BPP는 선호하는 뜻이다.
딥테크는 스킨테크에 비해 아무래도 대중과 거리감이 있다.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란 어떤 것인가.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다. 돈을 벌 수 없고, 벌 수 있는 기술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 기술을 시장에 어떻게 맞춰가는가가 중요하다. 로켓 기술만 봐도, 정부 주도의 과학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고, 스페이스X와 같은 대형 수익 사업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문제다. 우리는 그 과정을 프로덕트 마켓 피팅(Product Market Fitting)이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그게 제일 중요한 기술이겠다.
테크 기업의 성공이 어려운 이유가 있다. 딥테크를 다루는 창업자들은 주로 대학원에서 훈련받은 경우가 많다. 이들이 쓰는 논문은 항상 ‘새로운 발견’을 학계에 보고해야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가치 자체가 새로움에만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 들어와 보면 새로운 것보다는 시장에 맞는 기술이 더 큰 가치를 인정받는다. 아이폰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서 각광받은 것이 아니지 않나. 하지만 시장에 들어온 엔지니어 출신 창업가들은 갈피를 못잡고 계속 새로운 것만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괴리가 생긴다. 오히려 상경 계열 출신의 서비스 분야 창업가들은 비교적 더 시장 지향적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유리하다.
딥테크 기업이 시장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이 필요한가.
엔지니어들이 시장을 배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주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문가를 영입해 팀을 보강하는 거다. 보통 엔지니어들을 솔루션 엑스퍼트(Solution Expert)라고 한다. 이들은 사양에 맞춰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 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해당 산업의 전문가들이다. 도메인 엑스퍼트(Domain Expert)라고 부른다. 처음 우리에게 오는 팀들은 거진 솔루션 엑스퍼트들로만 구성이 돼 있다. 이 팀에 빠르게 도메인 전문가가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아무리 해당 도메인의 유능한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이미 꾸려진 팀과 융합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굉장히 어렵다. 중요한 지점이다. 사실 ‘시장을 아는 전문가가 우리 팀에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테크 기업에겐 어렵다. 하지만 중요도로 보면 전체 상품에서 원천 기술은 20~30%이고, 결국 이를 상용화 시키기 위한 전략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시장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엔지니어가 많다. 하지만 진짜 잘하는 팀은 본인들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보완하려고 한다. 이런 경우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기술이 없는 개인도 BPP를 통해 팀을 찾을 수 있나.
그렇다. 우리가 딥테크 엑셀러레이터로 포지션하고 있기 때문에 예비 창업자들이 다가오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꼭 기술이 있어야만 테크 비즈니스를 하는 건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와 해당 산업에 대한 전문성만 있다면 기술을 가진 사람과 같이 창업하면 된다.
실제 BPP를 통해 팀을 재정비한 곳 중 잘된 사례가 있나.
토모큐브라는 팀이다. 처음 카이스트 물리과 교수님이 찾아와 우리와 함께 1년 정도 사업 모델을 찾았다. 들고 오신 게 광학 필터였다. 이 필터를 현미경에 대고 보면 세포의 겉모습뿐 아니라 내부 구조까지 다 보인다. 동시에 질량, 부피, 표면적을 다 계산해서 알려준다. 세계 최초의 혁신적인 기술이다. 그런데 사업 모델이 ‘필터’였다. 모든 현미경에 다 붙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우리는 현미경 전체를 다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는데, 결국 이를 수용해 광학 상용화 성공 경험을 가진 CEO를 영입했다. 현재 바이오, 메디컬 스타트업 중 주목받는 회사로 커나가고 있다.
국내 컴퍼니빌더형 엑셀러레이터가 몇 곳 있다. BPP만의 강점이 있다면?
기술 기업을 찾아 성장을 돕는다는 점에서는 취지가 같다. 아무래도 가장 큰 차별점은 인력 구성이다. 현재 전체 22명 중, 심사역이 16명이다. 화공, 소재, 메디컬을 전공했던 인력들이 많다. 창업투자팀은 총 4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종족 이름으로 별명을 붙였다. 로봇, 드론, 항공, 반도체, 디스플레이, 센서 전문 심사팀은 테란팀이다. 바이오, 헬스케어는 저그팀, AR, VR, AI 등을 다루는 팀은 프로토스팀이다. 여기에 서비스와 글로벌 진출을 맡는 팀을 하나 더 추가했다.
딥테크 안에서도 팀이 세분화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다.
심사역 중에 국내에서 최초로 드론 기술을 다뤄 한화에 매각하고 들어온 분도 계시고, 의사였던 분도 계시다. 분야별 전문가가 모여있다는 것이 우리 강점이다.
테크기업을 만나보면 국내 VC 업계의 기술 이해도가 낮아, 투자처를 찾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VC 업계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상경계열 출신의 젊은 심사역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공대 계열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딥테크가 신흥 시장(Emerging market)에서 어떤 가치를 지닐 것인지 알아볼 수 있는 훈련을 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또 VC는 특성상 핵심성과지표(KPI), 즉 어느 정도의 숫자가 나와야 항후 그 기업의 가치를 추산해볼 수 있다. 하지만 딥테크 기업은 잠복기가 길다. KPI를 빨리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VC의 기술 이해도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창업자가 이 기술이 시장에 어떻게 적용되고, 그 가치는 무엇인지를 투자자들에게 잘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포트폴리오 사들에게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고 있다.
본인들이 아무리 그 기술의 장점을 알고 있어도, 실제 시장이 가진 문제와 기술의 가치를 엮어낼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단 엮을 수만 있다면, 거기서 강한 스토리가 생겨난다.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테크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주로 국책 연구 과제 발주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 있었다.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연간 20조 정도가 정부 과제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 ‘왜 이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가?’에 대한 첫 기획 단계에 대한 투자가 아직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정부 과제를 거치고 상용화되는 기술이 적은 것이다. 개발에 대한 지원 전에 기획 단계서부터 시간과 예산을 더 투자해야 한다.
정부 과제의 실제 상용화율은 얼마나 되나.
한 과제에 정부 예산이 100억 원 정도 투입됐다고 하면, 이 결과물을 통해 얻는 수익은 평균 1% 정도다. 100억을 투자해 1억에 파는 것이다. 효율이 안 좋은 구조다. 미국의 MIT, 스탠포드 같은 곳은 10% 정도 된다.
또 스타트업이 과제를 통해 기술을 개발하면 기업과 연결을 시켜준다. 그런데 막상 대기업, 중견 기업이 기술을 가져가려고 보면 본인들과 정확히 맞지 않기 때문에 재개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 단계는 물론, 마지막 기술 적용 단계에서도 우리와 같은 엑셀러레이터나 업계 전문가가 옆에 붙어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10월 중소벤처기업부를 통해 마이크로VC 펀드 운용사로 선정됐다.
우리는 본래 컴퍼니빌더 성격을 가지고 있고, 본 계정으로는 초기 단계 딥테크 기업에 실험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마이크로VC 펀드의 경우 정부의 모태펀드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공성이 있고, 안정적인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마이크로 VC란 초기 창업자에게 건당 3~5억 원 규모로 투자하는 펀드로 정부가 벤처캐피탈 투자(건당 10억 원)와 엔젤투자(건당 1억 원)의 중간규모(3~5억 원)로 투자가 필요하다는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2015년 도입했다. 총 4개 조합, 167억 원 규모의 모태펀드가 각 펀드별로 56%까지 출자할 계획이다.
투자자로서 어떤 팀에 마음이 끌리나.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극도의 불안감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기본적인 정신력과 의지를 가진 팀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적인 태도를 갖춘다면 더 좋다. 수용적인 자세라는 게 현실로 끌어오면 상당히 실현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좋아하는 한 팀은, 평생을 대학원 과정을 통해 연구해온 기술을 결국 마지막에는 안 썼다. 시장에서 더 필요로 하는 기술이 따로 있음을 인정했기에 깔끔히 포기한 것이다. 다들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시장 문제를 끌어다 맞추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실패한다. 자신들에게 아주 중요한 기술이라도 포기할 정도의 용기와 의지가 있는 팀이 좋은 팀이라고 생각한다.
채용 계획은 없나.
있다. 현재 인원이 23명인데, 내년에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기 때문에 30명 규모로 팀을 늘리려고 한다. 분야별 기술 전문가들과, 스타트업 생태계에 애정과 관심이 있는 분들을 모시고 싶다.
2018년 BPP의 투자 계획을 말해달라.
우리의 1차 목표는 연간 50개 회사에 투자하고 창업을 돕는 것이다. 2014년에 3개 기업, 2015년에 7개 기업, 2016년에 23개, 올해는 25개 기업에 투자했다. 내년 목표는 50개사다. 숫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에 가졌던 철학과 성과의 질을 유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시장을 알고 있는 각 분야의 파트너사, 전문가들과의 협업도 이어갈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BPP는 어떤 엑셀러레이터로 업계에 자리를 잡고 싶은지에 대해 말해달라.
플라즈마트를 운영할 때, 계속 ‘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갔던 형에게 조언을 듣고 싶었던 거다. 그때를 기억하며, 현재 포트폴리오 사들과도 최대한 많이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카이스트 시절, 조교 생활을 오래 하며 학생들과의 스킨쉽이 많았다. 그 때 만났던 학생들이 현재 창업도 하고 심사역이 되어 있기도 하다. 창업자는 투자자에게 흠 보이면 안 된다는 이유로, 어렵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대 형’ 같은 엑셀러레이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의 행보를 잘 지켜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