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고등래퍼 PD가 밝히는 성공한 콘텐츠의 비결
“경연 형식이긴 하지만, 랩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10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엠넷의 <고등래퍼2>는 2.5%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난 4월 막을 내렸다. 전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 역시 10대는 물론 20대, 30대 층으로부터 대중적인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지난 30일, 고등래퍼1,2의 메인 연출을 맡은 전지현 PD가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컨퍼런스 <2018: 스페이스 오디티>에서 그 성공 비결을 공유했다.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고민’ 들려주자는 것이 핵심 전략
이병재, 김하온 등 프로그램 주제를 잘 드러내 준 참가자들의 활약이 성공 포인트
전지현 PD가 처음 고등학생 랩 경연 프로그램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쇼미더머니 고등학생 버전이야?’였다. 이미 랩 경연 프로의 원조 격인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랩스타가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고등래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했다. 전지현 PD는 ’10대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제가 10대 때까지만 해도 10대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많았거든요. 고등학교를 찾아가서 일반인 학생들을 조명하기도 하고, 드라마 <학교> 시리즈도 많은 인기를 얻었고요. 하지만 최근에는 10대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요.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만 할 뿐이지, 정작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없었어요. 랩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래퍼가 직접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가사를 쓴다는 것이죠. 랩이라는 도구를 통해, 진짜 학생들이 들려주는 10대의 생각과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싶었어요.”
타 랩 경연 프로가 ‘경연’이라는 형식에 좀 더 집중해 참가자 간의 갈등을 부각시켰다면, <고등래퍼2>는 조금 다른 노선을 탔다. 무대 위의 참가자를 비추기 이전에, 그들의 삶의 배경과 생각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실제로 참가자들이 멘토와 함께 고민을 나누는 과정, 최면 치료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들이 프로그램 내내 자주 비춰졌다.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따라온 시청자들이 자연스레 그들의 랩에 공감할 수 있게 사전 작업을 한 것이다. 서로의 랩을 평가하는 시간에도, ‘잘했다’, ‘못했다’ 보다는 ‘공감할 수 있었다’는 코멘트가 더 자주 나왔다.
참가자 선발에도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최종 2인 안에 든 이병재 참가자의 경우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라는 자전적인 랩으로 10대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켰다. 서울대에 다니는 누나와 래퍼를 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한 자신을 비교하며 겪는 열등감, 또 이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으로 인한 우울감 등을 그대로 랩에 녹여낸 것이다. 랩 자체만 들으면 철없는 자퇴생의 투정처럼 들렸을 수 있지만, 무대에 앞서 이병재 군의 배경 이야기를 깊게 다뤘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전 PD의 설명이다.
또 시즌 2의 우승자인 ‘비트 위의 철학가’ 김하온 참가자는 첫 회부터 고등래퍼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을 잘 보여줬다. 그는 래퍼들이 흔히 사용하는 영어 욕, 비난의 어조 등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를 흉내낸 것일 뿐이지, 진짜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신조 때문이다. 김하온 군은 삶의 방향성에 대한 평화롭고 철학적인 고민을 풀어내, 기성 래퍼들보다 훨씬 창의적인 랩을 보여줬고 결국 시즌 2의 우승을 차지했다.
“고등래퍼가 랩 경연 프로이긴 하지만 경연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가장 중요한 건 이 친구들이 랩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를 시청자에게 공감시키는 것이었죠. 그래서 각 개인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깊이 있게 보여주려고 신경을 썼습니다. 미션 주제 면에서도, 고등학생에게 익숙한 교과서 내 문학 작품을 인용한 랩 창작을 주문하는 등의 장치를 두었어요.”
이러한 전략을 통해 <고등래퍼2>는 10대뿐 아니라 2030세대, 더 나아가 40대 이상의 시청자들에게도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이미 30대를 넘긴 저라고 해서, 10대 때의 고민을 완벽히 극복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건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도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삶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하지만, 성인의 경우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조금 뒤로 밀어둘 뿐인거 죠.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가 다양한 연령층의 시청자로부터 공감을 얻고,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전지현 PD는 “만드는 입장에서도 <고등래퍼2>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던 프로그램이었다”면서, “삶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보여주고자 했던 목표 덕분에,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