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인사이트’ 있는 마케터인가.
당신은 ‘인사이트’ 있는 마케터인가
[인간의 비합리성을 꿰뚫는 ‘인사이트’의 힘]
#프롤로그 : ‘감자대왕’의 인사이트
‘감자대왕’을 아는가? 18세기 프로이센(지금의 독일)의 프리디리히 대왕은 지금도 ‘감자대왕’이라 불리며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데, 그가 감자와 관련된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대왕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당시 프로이센은 식량을 밀에 의존했는데, 대흉작이 발생하여 식량 사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그러자 대왕은 좋지 않은 기후에도 상당한 양의 수확이 가능한 감자로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문제는 백성들이 아무리 굶주려도 감자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당시 사람들에게 감자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못생긴 외형 때문인지 ‘마녀식물’이라 불리었고 동물이나 먹는 불결한 것이었다. 마녀사냥을 집단으로 실행했던 것처럼, 당시에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믿는 것이라면 거의 불문율로 여겨졌다.
대왕은 백성들이 감자를 먹게 만들 방법을 고민했고, 꾀를 내어 “감자는 귀족음식이므로 아무나 함부로 먹지 말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는 매일 본인의 식탁에 감자를 올리게 했고, 자신의 직할지에 대규모로 감자를 기르고 근위대에게 감자밭을 지키게 했다. 하지만 지키는 척만 했고 밤에는 일부러 감시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감자를 먹기 시작했고 훔쳐서라도 감자를 구하려 했다. 심지어 감자를 유통하는 거대 지하경제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무엇에 움직인 것일까? 사실, 감자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더 맛있어진 것도 더 저렴해진 것도 더 예뻐진 것도 아니다. 다만, 대왕이 사람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읽었을 뿐이다. 당시 백성들은 왕실이나 귀족을 동경하는 심리가 있었다. 그래서 왕실, 귀족을 무조건적으로 따라 하는 문화가 있을 정도였다. 대왕은 백성들에게 이러한 심리가 있음을 간파했고, 이를 이용해 왕실, 귀족의 이미지를 제품(감자)의 이미지로 치환시킨 것이다. 마녀식물이라 낙인찍혔던 하급 브랜드 감자를 럭셔리 브랜드로 리브랜딩해서 사람들의 수요를 만든 것이다.
#사람의 비합리성 그리고 인사이트
감자대왕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고민해볼 만한 화두는 두 가지다. 첫째는 사람의 비합리성이다. 사람은 참 설명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만약 사람이 합리적이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감자를 귀족만 먹으라는 선포 때문에 구매자가 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프리디리히 대왕의 백성들은 구매자가 되고 말았다. 둘째는 인사이트다. 대왕은 사람들이 왕실이나 귀족을 닮고 싶어 했던 심리를 간파했고 그 심리를 자신의 목적에 잘 활용했다. 이처럼 사람의 비합리성을 꿰뚫는 통찰을 ‘인사이트’라고 한다.
마케터라면 인사이트가 중요하다는 말을 너무나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회의 시간에 입방아처럼 오르는 단어가 인사이트일 것이며 아이디어가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도 인사이트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다. 특히 대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브랜드 마케터나 광고기획자, 카피라이터, 콘텐츠 마케터라면 밤늦게까지 이 인사이트라는 것을 찾기 위해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인사이트가 정확히 무엇이고 왜 인사이트로 소비자를 설득해야 하는지 등을 깊이 있게 고민해본 적은 드물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가깝고도 먼 인사이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은 ‘누가 소비자와 더 가깝게 가느냐’의 싸움이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광고가 어떻게 달라지든 마케팅에서 소비자는 가장 중요하다. 마케팅은 물건을 팔기 위한 행위이고 물건을 팔기 위해 물건을 살 소비자를 고려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디지털 시대에는 더욱더 소비자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정보 권력은 기업에서 소비자로 이동했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 장소, 공간에서 정보를 소비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또한 정보 소비의 패러다임이 ‘구매’에서 ‘구독’으로 넘어가면서 브랜드는 자신들의 제품을 알릴 창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옛날에는 마케팅이 참 쉬웠다. TV광고 하나만 잘 만들어도 소비자가 알아서 구매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는 소비자의 정보 선택 권리가 강화됐고 소비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스킵 당하고 만다. 더군다나 정보를 손에 쥔 소비자가 스마트해졌기 때문에 마케팅의 영향력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의 판단 준거는 광고가 아닌, 주변 타인의 댓글이나 나의 실제 경험이다. 안전하고 평범한 제품을 만들고 이를 위대한 마케팅과 결합했던 과거의 성공 법칙은 끝났다.
더 이상 소비자를 움직이는 차별화된 제품이나 이미지 또는 시장을 움직일 만한 뉴스는 없다.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은 누가 소비자의 마음에 가깝게 가느냐의 싸움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케팅에 소비자는 중요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더욱더 소비자다.
#인간의 예측 불가능함 그리고 비합리성
소비자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소비자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성공 공식 따위는 없다. 수천 권의 마케팅 서적에서 소개하는 성공 비법은 결국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마케팅에 정답이 있다면, 모든 마케팅은 성공적이어야 한다. 실제로 같은 브랜드가 같은 초식으로 광고를 했는데 결과는 상이하다. 천호식품은 “남자한테 참 좋은데…”라며 김영식 회장을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산수유 광고가 대박이 나자, 몇 개월 후 같은 초식으로 광고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한다. 마케팅에는 정답이 없다. 인간은 오늘과 내일이 다른, ‘예측 불가능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매일매일, 매시, 심지어 매분 기분이 바뀐다. 어제와 오늘의 가치 기준도 다르다. 어제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소비자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구매하고 싶을지, 아니면 브랜딩이 잘 된 제품을 구매하고 싶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비자 본인도 모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 같다.
그런데 마케터를 더 어렵게 하는 건, 예측 불가능함을 넘어 인간이 ‘비합리성’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조금 더 비싸더라도 신뢰감이 있는 제품을 구매하고, 스펙은 좀 떨어져도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구매한다. 한 달 월급 다 쓰더라도 사고 싶은 제품을 구매하고야 만다. 앞서 소개한 프리디리히 대왕의 백성들도 합리적이라면, 감자를 먹지 않다가 먹게 되는 ‘행동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감자를 먹었고 자신들의 비합리성을 보여줬다.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인간을 파악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며, 인간의 숨은 심리를 간파하지 못하면 소비자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 없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는 소비자 힘이 더욱 세 졌기 때문에 이러한 비합리성을 이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단, 인간이 비합리적이라는 말을 인간이 비상식적이거나 우둔하다는 말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남이 보기에는 비합리적이지만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가치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정리해보면,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동물이며 언제 어디서 비합리성이 표출될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의 내면 속 숨은 심리를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 생각이 바로 ‘인사이트’다.
#’인사이트’란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
‘인사이트(Insight)’는 In + Sight로 풀어서 해석하면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은 제품부터 사람, 사건, 현상 등을 포함하며 이면이란 내면일 수도, 진실일 수도, 구조일 수도 있다. 심리학 용어로 찾아보면, 생물체가 자기를 둘러싼 내적, 외적 전체 구조를 새로운 시점에서 파악하는 일이라고 한다. 즉, 인사이트란 사물이나 사람, 사건, 현상 등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더 쉽게, 동일한 현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그래서 지식이 아닌 관점이고, 현상이 아닌 해석이자, 발명이 아닌 발견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사이트의 적용이다. 인사이트를 발굴하여 우리 브랜드와 연결해야 한다. 인사이트를 마케팅 전략이나 기획, 콘텐트 등에 적용하여 마케팅 목표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마치 프리디리히 대왕이 백성들의 내면 속 심리를 발견해 자신의 마케팅 목표(감자 구매 활성화)를 이룬 것처럼 말이다.
#인사이트로 소비자를 움직인 마케팅 사례들
프리디리히 대왕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내면 속 심리를 잘 발견한 사례가 있다.
- –‘이니스프리’의 ‘혼자볼게요 바구니’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친절 문화, 대우받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매장을 찾는 소비자에게 점원이 적극적으로 다가가 제품을 소개하고 추천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매장의 응대 방식이었다. 그러나 점원의 접근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도 있다. SNS 등으로 인간관계의 과잉 연결에 지쳐버린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친절이 오히려 부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간파한 ‘이니스프리’는 매장에 두 가지의 바구니를 갖다 놓았다. 매장을 찾은 소비자는 ‘혼자볼게요 바구니’와 ‘도움이 필요해요 바구니’ 중 하나를 선택하여 매장에 들어가면, 점원이 소비자가 선택한 바구니를 보고 응대 방식을 결정한다. 매장을 찾은 소비자라면, 배려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친절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님을 잘 간파했던 사례다.
- –‘구글’의 ‘구글 플루 트렌드’
‘구글’은 2009년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보다 2주나 빨리 독감을 예측하는 ‘구글 플루 트렌드’ 서비스를 제공했다. 어떻게 독감을 더 빨리 예측할 수 있는지, 그 논리를 듣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면 약을 구매하러 가거나 병원을 찾기보다는 인터넷으로 간단히 증상 정도만을 확인하고 우선 참아보려는(자연치유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면(증상이 심화되기 전) 감기 관련 검색어(감기증상, 기침, 발열 등)의 검색 빈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구글’은 본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검색어 수치 데이터만으로도 독감에 걸린 사람이 병원에 찾아와야 독감을 확인할 수 있는 ‘질병통제예방센터’보다 2주나 앞서서 독감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사이트가 있다면 같은 검색어 데이터를 가지고도 ‘독감 예측 서비스’ 같은 매력적인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 –‘GS칼텍스’의 ‘마음이음 연결음’
작년, 국내 광고계를 뒤흔들었던 ‘GS칼텍스’의 ‘마음이음 연결음’ 캠페인도 좋은 인사이트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케이스다. 대표적인 감정노동직군인 전화상담원은 하루에도 수십 번 언어폭력과 갑질 등에 시달리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캠페인은 전화상담 업무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마음이음 연결음’ 캠페인은 사람들이 어떠한 심리에 움직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전화상담원도 집에 가면 무척이나 귀한 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화할 때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린 채 무시하고 갑질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전화상담원과의 통화를 기다릴 때 나오는 통화 연결음에 상담원의 아버지, 남편, 자녀들이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멘트가 흘러나오도록 했다. 말 한마디의 효과는 대단했는데 프로젝트가 시행된 후 상담원들의 스트레스는 70%에서 25%로 감소했으며 고객들로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고 답한 상담원은 0%에서 25%로 크게 늘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 함함하다’는 말처럼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누구나 각자의 집에서는 귀한 딸, 아들임에는 공감할 것이다. 캠페인은 연결음을 통해 그것을 일깨워준 것이다.
세 가지 사례 모두 사람의 심리를 꿰뚫고 그것을 마케팅으로 실현하여 공감하게 했다. 사람들을 움직인 마케팅에는 반드시 인사이트가 존재한다.
#소비자의 마음에 가까이 가기 위해 필요한 ‘인사이트’
좋은 마케팅이란 쉽게 보지 못했지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공감을 유도하여,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 인사이트는 그동안 커뮤니케이션상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던 소비자의 심리이기 때문에 그것을 접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그래서 누군가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서 인사이트 있는 마케팅을 보면 우리는 ‘전율’과 ‘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유통화폐라 일컬어지며 우리가 그렇게 소비자에게 얻고 싶어 하는 ‘공감’은 인사이트를 통해 얻을 수 있다.
마케팅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마케터에게 필요한 게 인사이트다. 정확히는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능력이다. 내 브랜드, 브랜드가 속한 시장, 타겟에게서 마케팅에 적용 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발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법칙이나 공식이 없는 마케팅 속에서 우리 브랜드를 위한 ‘솔루션’을 도출 할 수 있다. 소비자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공감을 얻는 ‘솔루션’ 말이다.
#관심과 호기심이 인사이트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
인사이트는 지식이 아닌 관점이고, 현상이 아닌 해석이며, 발명이 아닌 발견이다. 그래서 어떠한 창의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관심과 호기심이 필요하다. 어떠한 현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해보는 호기심, 일상 속의 이면을 꾸준히 탐닉하는 관심이 인사이트를 만든다. 항상 인사이트를 내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평소에 현상을 호기심 있게 탐구해왔던 사람일 것이다.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더라도 360도로 치열하게 소비자와 시장을 연구해서 현상들을 입체적으로 연결해보면 어느 순간 숨어있는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 요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인사이트를 얻는 방법을 정리하기가 무척 모호하다. 관심과 호기심이라는 두리뭉실한 어찌 보면 답답한 방법을 추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사이트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호기심, 모든 것에 대해서 ‘왜’라고 물어보는 자세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은 ‘인사이트’있는 마케터인가?
이성길 / 현재 광고회사 Group IDD에 재직 중인 광고기획자이며, 광고마케팅 관련 강사 및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플리토, 토니버거, 트리아뷰티 등 스타트업이나 신규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담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