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Startup’s Story #511] “교실에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 어느 창업자의 DAY1

아이들에게 돈은 화면 속 숫자일 뿐이다.

이효림이 10년간 유아교육 현장에서 1200여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본 현실이다. 핀테크가 발달하면서 돈의 형체는 사라졌고, 아이들에게 돈은 ‘노동의 가치’가 아닌 터치 한 번으로 줄어드는 숫자가 됐다.

초등학생의 70%는 금융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 사이 아이들은 이미 소비하고 있다. 방과후에 문구점과 편의점을 들르고, 포켓몬 레어카드 한 장에 8만원을 쓴다.

이효림은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석사 과정에서 이론도 배웠다. 가르쳐야 한다는 건 알지만, 효과적인 도구는 없었다. 대부분 일회성이고, 주입식이었다.

교실에서 시도한 것들

그는 직접 해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섭외해서 도전골든벨 형식의 금융 퀴즈 대회를 열었다. 금융 책을 함께 읽고, 돈의 개념을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경제의 순환을 몸으로 가르치고 싶었다.

“아르바이트 놀이도 해봤어요. 편의점 체험도 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경험도 시켜봤고요.”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일시적으로는 기억해요. ‘오늘 할인받아서 싸게 샀다’ 정도는 남아요. 근데 그걸로 본인이 뭔가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주체적으로 ‘내가 개선해야겠다’는 마음이 안 생겨요.”

선생님이 할 수 있는 건 하루에 한 번 관리해주는 것뿐이었다. 용돈을 주는 건 부모님이고, 배워야 할 커리큘럼은 따로 있었다. 교실 안에서는 단기간에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다. 구조적인 문제였다.

“정답만 가르친 결과, 아이들은 소비 설계를 못 하고, 주도권 없이 카드만 쓰는 어른으로 성장해요. 추석 용돈을 받아도 ‘내 돈’이라는 감각이 없어요. 내가 어떻게 쓰고 싶은지도 안 물어보면서 모으기만 하라고 하니까요.”

“교실 밖에서만 풀 수 있는 문제가 보였습니다”

교육과 핀테크를 접목한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다.

이효림은 올해 6월, 직장을 그만뒀다. 정부청사 직장어린이집에서 일했다. 부모들이 매년 “이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된다”고 요청해서 졸업까지 함께한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어 스승의 날에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인정받는 자리였다. 그런데도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퇴사를 하지 않고 안정된 자리에만 남는 게 더 후회할 것 같았어요.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신호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창업에 대한 생각은 이전부터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전국 논술·문학 공모전에서 서울시장상 등을 받았고, 현장에서 일하면서는 교육 아이디어 공모전에 꾸준히 참여해 수상했다.

“공모전 하면서 특허를 내야겠다 싶어서 혼자 특허를 공부했어요. 특허를 내고 나니까 실제로 구현해보고 싶더라고요.”

하나금융 스타트업 프로그램에서 교육을 받았고, 한경닷컴 ‘스타트업 레볼루션’ 프로그램 내부 데모데이에서 3위를 기록했다. 당시 1, 2위는 이미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팀이었다.

“학부모님들 카톡방에 자랑했더니 ‘나중에 뉴스에서 만나자’고 하시더라고요.”

숫자는 아직 없다

현재 이효림은 1인 창업자다. 정식 회사명도 없고, 팀도 없고, 조직도 없다. 지금은 ‘이효림’이라는 이름 석 자가 전부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찾고 있다. 외주 개발로 MVP까지는 만들었지만, 팀이 없으니 소통에 한계가 있다.

“외주 개발자분은 다른 프로젝트도 맡고 계시니까요. 같이 협의하면서 만들어가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매일 미팅을 잡고 있다. 엊그저께도, 어제도 미팅을 했다. 대부분 사이드잡을 원하는 시니어 개발자들이다. 아직 확정된 팀원은 없다. 바이브 코딩도 배우고 있지만, 단기간에 익히기엔 쉽지 않다.

사전 신청자 500명을 모았다. 대학 창업페스타에서 부스를 열었고, 랜딩페이지 설문조사를 병행했다. 카드사, 변호사와 미팅을 진행하며 금융 규제와 법적 검토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2026년 정식 출시가 목표다.

다마고치의 원리

그가 만들려는 서비스는 아이들의 금융 습관 형성을 돕는 앱이다. 기존 서비스들이 ‘부모의 통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서비스는 ‘아이의 주도성’에 방점을 찍는다.

“사용자는 아이들이고, 돈을 내는 건 부모예요. 둘 다 만족시키기가 어렵죠. 아이들은 처음에 부모가 깔라고 해서 앱을 쓰다가, 재미가 없으면 이탈해요. 성장하면서도 즐거워야 해요.”

구조는 이렇다. 아이가 소비를 하면 앱이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소비 패턴을 분석해 맞춤 미션을 준다. 미션을 완료하면 캐릭터가 성장하고, 친구들과 저축 랭킹을 경쟁할 수 있다. 돈을 못 쓰게 막는 게 아니라, 쓰는 과정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구조다.

“부모님의 형식적인 칭찬이 아니라,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내가 이만큼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 저축을 더 많이 하네’ 이런 걸 보면서요.”

“저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왜 굳이 본인이 해야 하는지 물었다. 문제를 본다고 다 창업하진 않는다.

“저만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자신감의 근거가 있다.

“저는 아이들을 잘 안다고 자부해요. 현장에서 10년 봤고, 부모님들의 만족도나 아이들이 진짜 즐거워하는 포인트를 알아요. 비전공자가 비슷한 걸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 친구들이 실제로 금융 습관을 개선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건 어려울 거예요.”

기록되지 않는 시간

유니콘이 된 창업자들의 인터뷰는 많다. 하지만 그들의 Day 0, 아무것도 없던 시절의 기록은 거의 없다. 대부분 성공 이후 재구성된 서사다.

예비 창업자 이효림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템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창업이란 그런 것이다.

목표를 물었다.

“금융 교육 하면 떠오르는 사람. 그렇게 되고 싶어요. 아직 이 분야에서 뚜렷한 1인자는 없다고 봐요. 제 최고의 장점은 실행력과 추진력이에요. 저는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선택을 했습니다. 성공한 창업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창업자로 기록되고 싶습니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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