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人사이트] 세계 시장 넘보는 ‘깡’있는 스타트업을 찾는다.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의 데모데이는 크고 풍성하기로 유명하다. 지난 5년 간 스파크랩이 연출한 무대를 통해 많은 초기 기업이 대중과 업계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단순히 행사 규모만 큰 것이 아니다. 스파크랩 액셀러레이팅을 수료한 기업 중 70%이상이 후속 투자를 유치하며 해외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간 미미박스, 원티드랩, 블로코, 제노플랜 등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는 다양한 스타트업이 스파크랩의 프로그램을 거친 바 있다.
화려한 데모데이에 가려져 있지만 스파크랩의 장점은 13주에 걸쳐 진행되는 액셀러레이션 과정에 있다. 특히 세계서 성과를 낸 123명의 멘토진이 성장을 견인하는 한편 해외진출을 꿈꾸는 스타트업을 지름길로 인도한다.
이희윤 스파크랩 심사역을 만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가 선호하는 팀 유형과 특징 등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희윤 스파크랩 심사역. 이 심사역은 스파크랩 이전 5년간 아산나눔재단, 마루180에서 경력을 쌓았다. 사진=플래텀 DB
개인사부터 이야기해보자. 지난해 5월 스파크랩에 합류했다. 그전까지 어떤 일을 했나.
스파크랩 합류 이전 5년 간 아산나눔재단, 마루180에서 여러 스타트업의 초창기를 공간 지원자이자 간접투자자 입장에서 바라보며 이 생태계에서 꾸준히 일해보고 싶단 열망을 키웠다.
투자사에서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다. 왜 스파크랩을 선택했나.
나와 회사가 합이 맞는지, 이전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지를 중요하게 봤다. 스파크랩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마루 180에서 출자사업을 하며 김호민, 이한주, 김유진(스파크랩 공동대표) 세 대표와 일을 한 적이 있다. 투자자 이전에 창업가로 포트폴리오 기업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곳이라면 중요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근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닌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하루하루가 즐겁다.
입사 후 투자 업무는 물론이고 커뮤니티, 브랜딩 등 여러 직무를 맡아왔다.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일을 했다. 스파크플러스가 한창 성장을 해야 하는 순간엔 커뮤니티와 브랜딩을 담당했다. 초반엔 성장을 위한 업무 구조화 및 팀 편성, 채용을 하면서 성장중인 기업에 대해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면, 요즘은 펀드 모금 및 제안서를 쓰고 팀 발굴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심사역은 금융권 출신 혹은 창업경험자가 많다. 이 심사역은 둘 다 아니다.
창업 경험은 없지만 스타트업 지원기관에 오래 있었기에 이를 바탕으로 업무를 보고있다. 근본적으로 심사역에게 필요한 역량은 좋은 팀을 발굴하는 것이다. 마루180에서 좋은 기업을 입주시키기 위해 매년 수백 건의 서류 심사를 했고, 그때 인연을 맺은 기업이 유망한 팀을 많이 소개해준다. 동시에 아산나눔재단 엔젤투자기금의 출자 사업을 담당하며 쌓은 VC 네트워크가 우리 포트폴리오 기업 후속투자 유치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간 본인이 투자를 결정한 곳 중 기억에 남는 회사가 있다면.
퍼핏(Perfitt)과 벨루가(Veluga)다. 두 곳 모두 우연한 기회에 알고 난 뒤 꾸준히 지켜봤었다. 시장에 끝없이 파고드는 모습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
스파크랩하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것이 데모데이다. 규모도 크고 화려하다.
스타트업에게 가장 빛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축제처럼 잘 기획해 선보이면 투자자를 비롯한 청중에게 스타트업 생태계의 긍정적 이미지도 전달된다. 아울러 예비 창업가에게 창업을 꿈꾸게 하는 장치라고도 본다.
스타트업 팀에겐 데모데이 후 효과적인 홍보영상이 남는다. 잘 만들어진 영상 하나가 사업계획서보다도 더 스타트업의 현재를 잘 보여줄 수 있다. 앞으로도 스파크랩 데모데이는 화려하고 성대하게 진행할 거다.
데모데이 시 기업 IR의 심도가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수준으로 발표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나 스타트업 관계자가 보기엔 불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작년부터 데모데이 다음날 ‘인베스터 데이’를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VC만 초대해 관심 있는 기업과 1:1로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보통 5,60개 기업이 참여한다.
스파크랩의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나.
대표 파트너 외 데이비드 송(David Song)나이키 코리아 대표, 인터미디아의 조나단 리바인(Jonathan Levine) CTO, 프로듀서 테디 지(Tedy Zee) 등 전세계 123명의 전문가가 멘토링을 한다. 세계시장에서 한국을 주목하게 만든 전략과 브랜딩을 세웠고, 테크 조직을 이끌었으며, 대작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다.
13주 간의 배치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우선 선발된 기업과 3~5인의 멘토가 매칭된다. 동시에 2~3주 간격으로 파트너와 오피스아워를 통해 초기에 세운 KPI를 확인하며 성장 단계와 발전상을 체크한다. 나는 관련 미팅 및 오피스아워에 동행해 팀과 소통한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성을 찾아내는 것이 내 일이다.
다른 액셀러레이터와 스파크랩의 차이점은 뭔가.
글로벌 네트워크와 플랫폼이 된 데모데이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본다. 특히 우리 네트워크는 국내서 유일하다 말할 정도로 넓고 깊다.
우리 멘토는 모두 세계 무대에서 사업을 경험한 사람들이기에 팀에게 끊임 없이 큰 시장과 비전을 가질 것을 독려한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전략을 큰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본다. 계속 과제를 주는 동시에 배치 기업에 도움이 되는 네트워크를 연결해준다.
팀을 선별할 때 스파크랩이 중요하게 보는 가치는 무엇인가. 향후 어떤 팀을 더 집중적으로 발굴하고 투자할 계획인가.
해결하고 싶어하는 문제와 시장에 몰입해 있는 신념있는 팀을 선호한다. 이런 팀은 대부분 시장 조사도 철저히 하고, 역량이 안되면 필요한 기술을 이전받거나 인재를 채용하는 등 사업을 키우는 기반을 마련할 줄 안다. 위기가 와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고객의 목소리를 한 지점으로 모은다. 앞으로도 그런 팀 위주로 발굴할 계획이다.
초기 단계에서 지향하는 글로벌과 스파크랩이 지향하는 글로벌의 시각 차이도 있는 것 같다. 면접에 가서 기가 죽어 왔다는 스타트업도 있더라.
지금껏 대표 파트너의 사업방식은 큰 시장에서 활동하는 것이고, 완성되지 않았어도 부딪혀 보는 ‘깡’을 창업가의 자질 중 하나라고 본다. 이에 만나는 스타트업에게도 글로벌 시장에 더 빨리 진출하라고 조언한다. 몇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기 위해 스파크랩에 왔으니 큰 비전에 가지라고 끊임없이 주문한다.
글로벌 진출에 의지가 크지 않은 팀에겐 선발 기회가 없나.
창업 초기부터 해외로 확장 가능한 모델로 만들자는게 우리 원칙이다보니 아무래도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덜할 순 있을 거다. 맞고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다. 방향 설정 차이다.
배치팀 심사가 오래 걸리고, 탈락한 팀에게 어떤 이유로 선정되지 않았는지 설명을 안 해 아쉽다는 얘기가 있다.
상/하반기 1년에 두 번 진행되는 기간에 많은 기업이 지원한다. 지원팀 모두를 만나본 뒤 일부를 추려 한번 더 만난다. 이후 최종 10여개 팀을 뽑는 게 심사과정이다. 기업 입장에선 1,2차 인터뷰간 기다리는 시간이 발생한다. 수시로 만나는 액셀러레이터, VC가 아니기에 불거지는 이슈라고 본다.
탈락 사유를 알고 싶어하는 팀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정확히 안내할 수 없는 건 탈락 이유가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 상대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모든 팀이 인터뷰 중에 많은 피드백을 받았을 거다. 12기 심사에서는 결과 안내에도 세심하게 신경 쓸 계획이다.
스파크랩의 포트폴리오사로 회자되는 업체가 1기의 미미박스다. 하지만 11기까지 오면서 그와같은 성과를 낸 배치팀이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미미박스는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이커머스 기업이다. B2C 기업이다 보니 다른 업종을 서비스하는 팀보다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익숙하다. 우리 포트폴리오 팀 꾸준히 좋은 퍼포먼스를 내고 있는 기업은 많다. 누적 투자금 약 150억 원에 이르는 블록체인 스타트업 블로코, KSV나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 제노플랜 등 여러 기업이 포진해 있다.
스파크랩의 인지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우선 좋은 스타트업에 스파크랩이 지원하도록 하는 것, 스파크랩 출신 기업이 후속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선배 기업이 레퍼런스가 돼 주는 역할이다. 숨은 고수처럼 잘 하는 팀들이 많고, 선배 기업이 모범 사례가 돼 주고 있기에 우리의 목표는 무리 없이 달성하고 있다고 본다.
스파크랩은 데모데이와 인베스터데이 같은 행사를 통해 후속투자를 위한 브릿지 역할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글로벌 액셀러레이터’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할 거다.
아울러 5년 반 동안 우릴 거쳐간 포트폴리오 기업이 100곳이 됐다. 우리가 먼저 팀 내부를 잘 들여다 봐야겠지만, 한정된 인원으로 두루 살피는 게 어려워 소통이 다소 막힌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올 하반기부턴 분야별로 선후배 기업간 소모임을 마련하려고 한다. 기수 및 분야별로 부담 없이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장을 열려고 한다.
앞으로 문을 두드릴 예비 포트폴리오 기업 및 관계자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액셀러레이터 투자는 금액보다,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있다. 끊임없이 사업의 본질을 고민하고, 집중해야 하는 지표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모멘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린 시장에서 발견한 뚜렷한 문제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팀과 능력,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시장에 대한 신념이 조화롭게 이뤄진 팀을 찾고 있다. 공식적으로 배치팀을 찾는 기간이 아니어도 문은 늘 열려있다. 이를 위한 프로그램도 따로 운영 중이다. 편하게 찾아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