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4차혁명] 기술을 등에 업고 일상에 파고드는 무인화 바람
분명 10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 인터넷 기업의 수준은 높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 IT기업을 배우려 중국 기업 관계자의 방한도 빈번했다. 텐센트 마화텅 회장도 그중 하나였다. 방문 후 우리 기업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한 산자이(山寨, 모방) 회사도 많아 기피하는 국내 기업도 많았다.
10년이 지난 현재 상황이 역전되었다. 우리 기업 관계자의 중국 기업 방문이 급증했고, 중국에서 성공한 서비스를 국내에서 현지화해 출시하는 시도가 활발하다. 실리콘밸리 기업 또한 중국으로 가는 추세다. 중국에서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블록체인 영역을 제외하고 중국 인터넷 기업은 한국에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전벽해다.
과거의 기준으로 오늘의 중국을 판단하는 것은 편견이다. 중국에 직접 가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중국의 발전은 비약적이다. 인해전술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모바일 결제의 패러다임을 바꿨고 징동은 물류창고와 배송의 자동화를 이루고 있다.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대기업이 대외적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분야를 선도하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수도 미국와 양분하고 있다. 기업가치 총합으로만 계산하면 중국이 최대다.
굳이 기업 동향을 살피지 않아도 중국은 우리가 추구하는 ‘4차산업혁명’의 과정을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나라다. 대륙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사례를 통해 우리가 경험할 일상을 미리 살펴보자.
중국에서는 발달된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람의 도움 없이 구매 행위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 형태가 무인 점포는 장소나 규모, 인적자원의 제약 없이 설치가 가능하게 설계되어 자판기보다 더 정교하게 제품을 판매하도록 운영되고 있다.
터치주문 간편 모바일 결제…자동으로 청소까지 ‘F5미래상점’
근래 중국 무인상점 상당수가 ‘미래(未來)’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 중이다. ‘F5미래상점(F5未來商店, 이하 F5)도 그중 하나다.
F5는 주요 무인편의점 중 가장 많은 상품 수(1000여 개)와 24시간 AI로 관리되는 자동화된 운영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평균 30~60제곱미터인 F5매장은 간단한 스낵을 비롯해 음료, 생활용품, 신선제품을 판매한다.
매장 특징은 실제 상품이 진열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벽면에 붙은 터치스크린을 통해 상품을 선택하고 QR코드를 통해 모바일 결제를 하면 된다. 배달앱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주문이 들어가면 매장 뒷편에 위치한 창고에서 기계가 선택한 상품을 픽업 창구로 운송한다. 이는 자판기의 구조와 같다.
F5에서의 주문 전과정은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24시간 운영되며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설 필요가 없다. 아울러 매장 가운데 좌석에서 스낵 등을 먹은 뒤 청소버튼을 누르면 간단한 물청소와 쓰레기를 수거하는자동 테이블 청소 시스템 등이 갖추어져 있다.
F5는 신유통 흐름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14년부터 베타테스트를 진행해 2016년말에 정식 매장을 오픈했다. 그 과정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아 중국 가전기업 TCL를 비롯한 벤처캐피털에게 약 3000만위안(약 51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해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단기 마일스톤은 100개 매장을 오픈하는 것.
F5는 쉬하이청(徐海成) 대표를 비롯해 주축멤버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 분야 전문가이지만 자체기술이 부족하면 외부기술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매장 관리는 안면인식 결제 서비스 ‘스마일 투 페이(Smile to Pay)’ 개발사인 ‘쾅스커지(旷视科技, face++)지‘의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쾅스커지는 알리페이를 비롯해 알리바바 신유통 매장 등 기술을 제공 중인 기업이다. 특히 지난해 무인편의점 팝업스토어 ‘타오커피(淘咖啡)’, 그리고 올해 윈치대회(云栖大会, 알리바바 클라우드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1.5버전이 공개된 ‘티몰 미래상점(天猫未来店+)’이 대표적이다. 광스커지와의 협업은 근일 F5에 안면인식 결제가 적용된다는 예고편이나 마찬가지다.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주는 매장 ‘허마셴셩’
상하이에서 태동해 알리바바그룹으로부터 대규모 전략적 투자를 유치한 이후 성장가도를 달리는 신선식품 전문매장 허마셴셩(盒马鲜生)은 신유통을 대표하는 모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허마셴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트 천장에 쉼없이 돌아가는 장바구니 행렬이다. 직원들은 주문이 완료된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아 레일에 싣는다. 제품은 3km 내 지역에 30분 내 배달된다. 서비스 초기에는 1시간이었다. 소비자는 따로 물건을 담을 필요가 없다. QR코드로 모바일 장바구니에 담아 주문하면 된다.
허마셴셩의 설립된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스타트업이다. 전자상거래 기업 징동의 물류 총괄 출신 호우이(侯毅)가 2015년 설립해 이듬해 1월 상하이에 첫 번째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한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각광받는 분야에 자본이 몰리는 중국답게 2016년 3월 알리바바그룹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시장에 등장한다. 이후 허마셴셩은 마윈이 주창한 신유통의 대표 모델로 평가받게 된다.
허마셴셩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온오프라인 고객의 주문이 접수되면, 매장 내 직원들은 빠르게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고, 이를 물류 센터로 보낸다. 매장은 제품을 전시하는 곳이며 창고인 동시에 배달 센터가 된다. 실제로 고객만큼 많은 직원들이 주문을 처리하고 장바구니를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올린다. 새로운 시도에 인적자원이 결합한 물류 배달 시스템을 통해 신속한 배송 처리를 가능케 했다.
매장에서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 지불은 무조건 알리페이로만 이루어져야 하며, 현장에서는 허마셴셩앱을 활용하여 알리페이 결제를 유도하고 있었다. 결제 후에는 허마셴셩 앱에서 내가 어떤 제품을 구매했는지, 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한지를 바로 체크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것은 회사가 온·오프라인에서 소비자 데이터를 수집하여, 고객의 소비 패턴을 추적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중국 부동산 시장에 ‘허세권(허취팡:盒区房)’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며 부동산 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허세권은 알리바바의 신선식품 전문매장 허마셴셩(盒马鲜生)의 배달 가능한 권역(매장 반경 3㎞이내)을 의미한다.
허마셴셩은 단순히 물건만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니다. 기술을 동반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여 대중의 여가공간으로 변모를 시도 중이다. 대표적으로 올해 2월 허마셴셩 상해 난샹(南翔)점에 문을 연 중국의 첫 로봇 식당이 있겠다. 매장은 반자동 형식이다. 식당 입구에서 QR코드로 인원을 선택하면 스크린에 좌석의 대기 인원이 나오고 차례가 되면 앉을 자리가 표시된다.
주문은 QR코드를 스캔해 주문할 수 있다. 동행자 모두 각자의 폰으로 동시에 주문을 진행할 수 있다. 음식 주문 후, 요리 과정과 서빙 과정은 테이블에 있는 모니터로 실시간 볼 수 있다.
해산물 코너와 식당 사이에는 로봇 팔이 분주히 움직이는 유리방이 있는데 이곳은 식재료를 임시 보관하는 냉동창고로 사람 키만한 로봇팔이 손질을 기다리는 식재료들을 자동으로 분류해서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식당은 복합 오븐 등 자동화 설비를 갖추어 기존 주방 설비에 비해 조리 시간이 50% 이상 단축한다는 것이 자랑이다. 일례로 갓 잡은 생선을 11분만에 조리할 수 있다.
요리가 완성되면 서빙 로봇을 통해 고객들의 테이블로 배달이 된다. 허마셴셩이 자체 개발한 무인 운반차 시스템은 멀티 혼합 센서 기술로 장애물을 식별, 회피할 수 있으며 음식 검사까지 한다. 음식이 완성되고 서빙되는데까지는 평균 40초가 소요된다. 알리바바는 이 시스템을 고도화해 호텔 주방에서 객실까지 음식주문을 시도할 예정이다.
주문받는 직원이 없는 커피전문점 ‘루이싱’
중국서 천하의 스타벅스를 배달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되는 ‘루이싱(瑞幸咖啡) 커피’는 대부분의 매장에 주문받는 직원이 없다. 앱으로만 커피를 주문하는 시스템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루이싱은 스타벅스를 연상시키는 제품군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스마트폰 앱 주문을 통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해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왔다. 특히 젊은층에 인기가 높다 이용자 70%가 30대 미만이다.
수억 달러 규모의 VC투자유치를 발판으로 스타벅스에 이어 중국 내 점포수 2위(7월 현재 660여 개)에 오른 상황이다. 올해 1월 베이징과 상하이서 첫 매장을 연 루이싱은 현재 한 달 평균 100여 개의 매장을 오픈하고 있다. 루이싱 매장 엔 계산대 자체가 없다. 앱을 통해 주문한 뒤 배달을 받거나 매장에 들러 QR코드 인증을 통해 받아 가거나 매장에 자리를 잡고 마시면 된다. 줄을 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35위안(한화 5700 원) 이상 주문이면 배송료도 없다.
단순히 스타벅스 벤치마킹과 배달로만 어필했다면 현재와 같은 성장은 없었다는 평가다. 루이싱은 스타벅스 바리스타를 대거 스카웃하는 한편 최고급 커피머신을 도입해 제품군을 가다듬었다. 가격은 스타벅스보다 30% 저렴하게 책정했고, 양은 늘렸다.
여전히 스타벅스는 중국 커피 체인의 최강자다. 중국내 매장만 3300여개에 이르며 브랜드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루이싱에 2위 자리를 내줬지만 영국 코스타 커피 역시 460여 매장을 열었으며 2022년까지 12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루이싱 커피의 단기간 성장은 중국 음료 시장을 구도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루이싱을 비롯해 ‘시차(희차 喜茶 )’ 역시 스타벅스의 강력한 경쟁자로 중국서 대약진 중이다. 시차는 2016년 1억 위안(한화 166억 원) 규모 투자유치를 한데 이어 올해 5월 4억위안(한화 677억 원)규모 B라운 투자유치를 했다. 투자사 면면도 화려하다 IDG캐피털을 비롯해 메이투안 디엔핑(美团点评)의 자회사인 룽주자본(龙珠资本)이 참여했다.
제국 스타벅스는 중국서 기로에 선 형세다. 상다오커피(上岛咖啡, UBC Coffee), 코스타커피(咖世家, COSTA Coffee), 맥카페(麦咖啡, McCafe) 등 오프라인 영역의 경쟁자를 비롯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루이싱과 와 리엔커피(连咖啡, Coffee Box)가 급속히 성장해 근간을 조금씩, 하지만 빠르게 흔들고 있다. 스타벅스는 알리바바와 손을 잡고 이에 대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