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모바일 플랫폼 ‘그랩’, 그리고 한국 택시파업
기자는 지난 10월 태국 방콕으로 지인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방콕은 저렴한 물가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관광국가로 알려져 있다. 밥값은 편차가 있지만 대개 현지식은 3천원 이내면 구매가 가능하고, 택시만 타고 돌아다녀도 될만큼 교통비가 부담스럽지 않다. 한가지 복병은 있다. 방콕은 오토바이, 삼륜차, 자동차가 뒤섞여 다니는 통에 교통체증이 굉장히 심한 지역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저렴하다고는 해도 러시아워 시간대 택시 미터기는 신경이 쓰인다.
2년 전 방콕을 여행할 땐 일찌감치 BTS(방콕 지하철)을 애용했다. 숙소가 지하철역 근처였고, 굳이 택시를 탈 정도로 먼 거리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이번에 묵은 숙소는 휴양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 곳이어서 일반 지하철 역과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올해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랩(Grab)’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랩은 인도네시아발 차량 공유 서비스이자 모바일 결제 플랫폼 기업이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 8개국, 235개 도시에서 개인 차량, 오토바이, 택시 및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랩 승객 3명 중 1명이 2개 이상의 서비스를 사용했다고 하니 이미 생활형 서비스로 자리잡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의 비약적인 성장세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다퉈 투자를 단행했다.
떠나오기 전부터 먼저 동남아 여행을 한 지인들이 그랩을 쓰면 편하다는 말을 했다. 아니, 그랩만 쓰게 될 거라고 했다. 이 말을 공항에서부터 실감했다.
새벽 1시쯤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해 유심칩을 바꾼 뒤 그랩을 설치했다. 현재 주소와 목적지를 핀으로 조정해 올려두면, 근처에 있는 그랩 운전기사가 사용자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버나 카카오 택시 등에서 경험한 익숙한 인터페이스다.
가격은 이동거리로 측정돼 미리 계산 되는데, 공항을 오갈 경우 고속도로 사용여부에서 추가 요금 70바트 정도가 더 발생한다. 드라이버도 네비게이션을 켜두고 운전하기에 목적지까지 우회한다는 의심을 할 필요가 없었다.
현지에서 그랩택시와 저스트그랩(일반 카풀과 같은 형태)을 이용했다. 저스트그랩은 택시보단 저렴하지만 태국에서는 합법이 아니다. 저스트그랩 기사에 따르면, 단속이 무서워 관광지 운행은 꺼린다고 한다. 경찰에 걸리면 벌금으로 우리돈 7만원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 평균 월급이 30만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큰 금액이다. 다만 관광지 등을 제외하면 단속은 느슨하단다. 그래서 저스트그랩이 공공연히 활용되고 있었다.
물론 그랩만 이용한 건 아니다. 아무리 콜을 요청해도 오지 않는 경우엔 일반 택시와 ‘툭툭'(삼륜차를 개조해 만든 택시)을 잡아 탔다.
이런 차를 탈 땐 ‘흥정’, ‘바가지’ 등 옛 동남아시아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가 바로 연상됐다. 기사들은 미터기를 켜달란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터무니 없는 금액을 불렀다. 어처구니 없이 비싼 금액임을 아는 건 그랩을 이용해 사전에 거리당 금액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랩택시가 일반 택시보다 가격이 20% 정도 비싸다고 하지만 그랩택시의 선호도가 높은건 관광객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예측이 된다는 것이다. 미터기에 요금이 명시되기에 터무니없는 바가지 요금을 쓸 일도 없고 요금 흥정을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여행 중 그랩을 이용하며 언어 소통 부재로 인한 불편함도 없었고 정보의 불균형이 없어서 의심 없이 탔다. 이용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다 했단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라면 응당 같은 값을 주고 쾌적한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것 같다. 이는 어쩌면 자본시장에서의 당연한 논리다.
지난주 국내 주요 이슈 중 하나는 택시업계의 파업이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차량 승차공유(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는 입장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택시업계는 생존권을 외치고 있고 카카오는 법적 문제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까진 양측이 접점을 찾는 일이 요원하다. 중재자인 정부의 절충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파업을 두고 한국을 갈라파고스로 만드는 행위라 비판하는 시선도 있지만, 택시단체는 업계의 근간이 무너진다고 보기에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어느쪽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갈등의 주체는 다시 상정해야 한다. 택시단체와 카카오는 이 갈등의 주체라기보단 중간자적 입장이다. 주체는 소비자와 직업인으로서의 택시기사다. 소비자는 본인이 원하는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고 택시기사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아야 한다다. 해결방안은 매우 단순하고 명확하다. 택시업계는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고, 이로인해 발생하는 수익은 플랫폼 기업이 아닌 택시기사에게 보다 많이 돌아가는 구조면 된다.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거기에 방점이 있다.
근래 업계 소셜네트워크 피드는 VCNC의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인 ‘타다’의 자발적 이용기가 홍수를 이룬다. 웰컴키트에 들어있는 사탕의 소비량까지 늘렸다. 이 서비스는 기존 택시에서 느꼈던 소비자의 불편항목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깨끗한 차량에 멀건 가깝건 간에 탑승자를 차별하지 않고, 드라이버는 친절하고, 우회하지 않는다. 때문에 택시보다 비싼 가격임에도 이 서비스의 리텐션 비율은 매우 높다. 실제 택시 파업이 있었던 지난주 이 서비스의 이용률은 전주 일평균 대비 8배나 늘었다. 이 서비스가 성업을 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다 론칭 기자간담회서 박재욱 VCNC대표는 기존업계에 드라이버의 수익창출을 가장 중요한 가치라 말했다. 그는 “기사에게 돌아가는 파이의 크기가 가장 중요하다. (여러 카쉐어링 기업이 이를 강조했지만) 그것을 미리 예측을 못해서 제대로 못 했다. 고객은 오래 기다렸고, 기사는 태울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수요와 매출의 극대화가 맞물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의가 조성될 때 정.반을 거치듯, 국내에서도 이해 관계자간 합의에 이르러 모두가 쾌적하게 이용 가능한 모빌리티 생태계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