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eets Startup] 30대 후반 엔지니어들이 의료기기 사업가가 되기까지
“기술로 의료를 혁신하겠다고 하니 모두 비웃더라. 창업 후 4년 간 크고 작은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혁신’이라는 명목 하의 새로운 시장 창출은 쉽지 않음을 체감한다.”
국내 테크 스타트업이 국내 최초의 AI 기반 진단 소프트웨어를 식약처로부터 인허가를 받았다. 이 한 문장을 완료형으로 만드는 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뷰노 이야기다. 뷰노는 4년 전 30대 후반 엔지니어들이 모여 설립한 기술 스타트업이다. 뷰노의 공동창업자들은 어떻게 회사를 차렸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어떻게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어 올 수 있었을까.
2일 네이버 D2스타트업 팩토리(D2SF) 주최로 열린 ‘Tech Meets Startup’ 컨퍼런스에서 뷰노 김현준 전략이사(CSO)는 기술 스타트업 창업 이후의 과정을 공유했다.
의료산업을 모르던 엔지니어들이 의료산업을 선택한 이유
공대출신이다. 학교에 있을 당시 대기업에 가는 것, 입사 후 경력을 쌓아 더 좋은 조건의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좋은 선택지라 여겼다. 창업을 한다고 결심했을 때 직장이 재미없다거나 돈을 더 벌고 싶다는 것이 있을거다. 개인적으론 직장에서 연봉을 많이 줘도 체감효과는 1년이 가지 않았다.
창업은 기술과 경험이 쌓일 때 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기술은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나 연구소에서나 늘 하던거였다. 운 좋게 연구소에서 2012년부터 딥러닝을 시작했다. 남들보다 먼저 한거다. 아울러 그걸가지고 하는 사업화 경험도 있었다. 3년 동안 딥러닝이 제품에까지 연결되는 것을 봤다. 상도 받고 인정도 받았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보니 자신감이 쌓여 창업으로 이어졌다.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온실안 화초였다. 좋은 회사에서 삼시세끼 밥 다주고 여행까지 보내주던 회사를 나오니 망망대해에 있는 일엽편주였다. 망망대해라도 네비게이션만 있으면 잘 갈 수는 있겠지만 경험이 없었다. 누구한테 손을 벌려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우리가 하는 게 맞는건지를 판단할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우선 초기 투자자, 액셀러레이터 등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퓨처플레이, 본엔젤스 등과 인연이 된다. 그 다음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딥러닝 기술로 뭘 선택해야할지 몰랐다. 사실 너무 아이템이 많은게 문제였다. 그래서 전 산업을 들여다봤다. 정말 많은 산업분야를 검토했다. 액셀러레이터와 투자사가 매주 미팅을 하며 조언, 도움을 줬다.
우리가 어느 산업에 속하고 어디에서 기회를 찾을지 몰랐다. 좋은 토픽이라고 선택해서 하려고 했지만 못 한 것도 많다. 몇 퍼센트 생산성을 올리는 것 정도로는 유지도 혁신도 어려웠다. 기술 개선시 보상이 적은 것, 대체장치가 많은 것은 뺐다. 남 좋은 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 기업과 단기 협업을 했지만 얻은거 없이 그들 공부만 시켜줬다. 어느정도 성과를 내면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아웃되었다. 또 남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 따라오기 쉬운 것은 얻는 과실이 적었다. 아울러 우리는 잘 할 수 있고 경쟁자도 없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잡은게 의료였다. 진입하기는 정말 어려운데, 어느정도 수준에 오르면 괜찮아 보였다.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에 의한다. 병원에 있던 지인의 지인이 의료쪽에 있는 문제를 풀 수 있냐는 문의를 했다. 폐질환 진단과 연구, 정량화 숙제였다. 그간 기술적으로 잘 풀리지 않았던 문제였다. 우리에게 한 번 해보라고 과제를 주더라. 아마 그쪽에서도 큰 기대는 없었을거다. 그걸 한 달 간 했다. 알렉스넷을 활용해 정량화, 분류화에서 이전대비 압도적으로 성능을 높였다. 딥러닝을 도입해 다채로운 결과를 보여줬다. 우리도 잘 모르고 시작했는데 인정받는 결과물을 냈다. 무명의 스타트업이 갑자기 나타나서 한 달만에 의미있는 결과를 가져가니 업계에서 임펙트가 있었나보다. 다른 곳에서도 우리를 찾는 등 붐업이 되었다. 의료를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살펴보니, 의료 사업은 우리가 보유한 원천기술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의료는 기술로 얻은 성과에 대한 관심이나 기대가 여타 산업보다 컸다. 그리고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경쟁자가 없거나 적었다. 우리가 초기그룹이었고 선두권에 설 수 있다는 의미였다. 문제도 아무나 풀기 어려웠다. 그리고 아직 시장이 없었다. 독점 등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이 분야는 규제산업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안전성, 유해성을 검증해야 한다. 바로 상용화도 어렵다. 임상연구를 끊임없이 해야하는 피곤한 산업인 셈이다.
여려움이 보였지만 의료 사업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창업을 하며 새로운 분야를 찾아갔다. 이전까지 우리가 잘 알고, 해왔던 분야에서 혁신을 찾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업화의 가능성도 높다고 보지 않았다. 의료 산업의 전망을 믿었다기 보다는 우리가 모르는 문제를 찾다보니 여기에서 빛을 봤다.
뭘 만들어 내놓아야 할까. 제품 선정하기.
폐질환 진단과 골연령 진단 두 가지를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뭘 먼저 내놓을지 고민이 많았다. 임팩트있는 폐질환 진단 제품을 내놓으라는 주변의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첫 제품은 골연령 진단 제품(뷰노메드 본에이지)이었다. 이 제품이 올해 5월 식약청 허가를 받았다. 현재 20개 기관이 우리 제품을 쓴다. 답이나 공식이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전략에 따라 순서와 대상을 선정했다.
먼저 내놓은 것은 골연령 진단이었다. 우선 규제의 부담이 없었다. 인허가 규제가 없었다. 문제가 가벼워야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고 봤다. 공격당할 위험이 없었기에 덜 위험했다. 그리고 이미 시장이 존재했고 고가 검사이기에 작지 않았다.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의 강도 그리고 사회적 저항이 적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와 거리가 있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신속한 상품화가 가능해 보였다.
데이터가 주어진다는 전제로 실현가능성을 판단하는데 1개월, 초기 모델 완성은 2~3개월 내 완료할 수 있다. 이것보다 10배 오래 걸리는 것은 IRB 등 계약관계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 이 제품을 쓰는 의사들이 어떤 UI를 원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AI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불편하면 안 쓴다. 그리고 각각의 병원 시스템과 어떻게 연계시켜야 하는지도 고려해야 했다. 골치아프고 비용이 많이 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건 일도 아니다. 출시까지 제일 어려운 것은 인허가 과정이다. 인허가 과정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
우리는 제품과 시장 상황에 따른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시장의 평가를 받다보면 그것이 최선에 가까워진다고 본다. 결국 정답은 과정에 있지 선택과 결과에 있지 않다고 본다. 스타트업은 보통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시간을 많이 쓴다. 당연히 필요하다. 때로는 먼저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선의 선택은 틀릴 확률은 더 높다. 먼저 실행하면 틀린결과를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을 덜게된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때문에 우린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품을 만드는게 ’20’의 과정이라면 인허가과정은 ’80’. 험난한 출시과정.
출시까지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우린 의료에 진단기술을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었고 시장도 만들어야 했다. 우린 의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를 혁신하겠다고 나섰다. 개인정보 데이터도 없었고 도메인 지식도 부족했다.
각각의 절차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고, 많은 간섭과 통제를 받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데이터 접근이 너무 어려웠다. IRB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데이터가 반출되는 것은 범죄라는 분위기였다. 공식적인 절차로 확보되지 않은 데이터는 활용할 수도 없다. 물론 일반 기업도 이보다 쉽지는 않을거다.
정확한 고객 니즈 파악도 어렵다. 많은 고객(의사)들로부터 사용성/시장성에 대한 조사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주도적인 연구자와 관련 인력들의 도움으로 어느정도 해결은 할 수 있지만 시행착오는 불가결하게 온다. 유저가 많으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지만, 고객층이 얇고 개개인의 취향이 다른 분야다 보니 니즈에 맞게 커스터마이징을 해야한다. 의료환경 특성을 이해하고 UI개선을 해야했다.
앞서 말했듯이 인허가가 가장 큰 일이다. 뷰노메드 본에이지는 2년전에 만든걸 올해 5월에 허가를 받고 출시했다. 2년 간은 인허가 과정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한 시간이었지만 제품의 퀄리티와 안정성이 보장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식약청 허가를 받으려면 자료를 많이 내야한다. 관련 안내나 자료들이 많기는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된다. 인허가 업체의 도움을 받으면 좋지만 비싸다. 인허가 과정은 산이 많다. 우선 GMP, ISO13485 등 품질 시스템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의료기기 제조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우리 제품은 국내 최초다. AI기기에 대한 인허가 등급, 가이드라인도 없었다. 그동안 아무도 안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봉착하는 문제 중 하나일 거다. 여기저기 찾아니며 죽는 소리를 했다. 규제산업에 맞물려있으면 할 수 밖에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온갖 기관에 연락하다보니 움직여 주더라. 두 편의 AI가이드라인도 나왔다. 우리가 참여해서 만든거다. 가이드라인은 법은 아니지만, 의료법상 커버하지 못 하는 것을 알려주는 지침서다. 혹여 참여하려는 산업이 있다면 관련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시장에 출시한 것으로 끝이 아니다. 인허가는 최소조건일 뿐이다. 성능에 대한 지속적인 리포트를 해야한다. 지난 2년 간 뷰노메드 본에이지 인허가 과정을 진행하는 동시에 5개 이상의 제품을 상용화 단계까지 만들었다. 이 제품군도 인허가를 진행중이다. 아울러 해외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기술창업의 단상. 엔지니어로서의 소회.
의료분야 사업을 하는 엔지니어로서 늘 갑갑함이 있다. 더빨리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규제 등 여건이 그 속도를 늦춘다는 아쉬움이다. 광고 하나 낼 때도 허가를 맡아야 한다. 그리고 늘 공부해야 한다. 알아야 할 게 많다. 제품 하나가 회사 하나 만드는 과정같다. 하지만 풀어야 할 문제가 많기에 기회도 많다.
창업을 생각할 때 본인의 기술 등 능력을 발판으로 엄청난 투자를 받고 매출을 많이 발생시킨다는 로드맵을 그릴거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나만의 기술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미 시장에 존재하고 특별한 게 아닐 확률이 높다. 제품을 만들고, 좌절하고 다시 시작하는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조금 더 나은, 진일보한 제품이 나온다고 본다.
능력있는 엔지니어가 사업에 성공하지 않는다. 엔지니어의 자질은 제품을 만들고 설명하는 것 까지다. 엔지니어가 창업을 한다는 것은 어른이 다시 유치원에 가는 것과 같다. 기술은 알지만 비즈니스는 초보인 것이다. 유치원에 들어가더라도 빠르게 월반을 하는게 사업가의 역량일거다. 기술기업을 평가할 때 “그 회사 대표는 엔지니어 마인드야”라는 말을 많이한다. 그 말을 안 들을 때 비로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거다.
뷰노는 2014년말 설립된 국내 최초의 의료인공지능 스타트업으로, 자체 개발한 딥러닝 엔진인 뷰노넷(VunoNet)을 기반으로 다수의 국내 대형병원 및 제약사 등과 다양한 질환에 대한 진단보조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2018년 상반기 중 흉부 X-ray 및 CT 기반의 폐암 진단, 안저질환 진단 등의 영상 기반 인공지능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 뿐 아니라, 생체신호를 기반으로 한 심정지 조기 예측 소프트웨어도 인허가를 착수했다. 최근에느 AI기반의 응급환자 자동분류 기술도 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