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축 기자 두 명이 동시에 퇴사한다. 2015년 11월에 입사한 정새롬 기자는 회사를 거쳐간 팀원 중 가장 오랜기간 근무한 팀원이고, 2016년 4월에 정식 입사한 서혜인 기자는 2015년 플래텀에서의 인턴 경험이 계기가 되어 기자 일을 업으로 선택한 인재다.
두 사람은 길지않은 회사 역사에 큰 기여를 했다. 기존 전통을 이어줬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당연히 이들의 퇴사는 조직의 큰 손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이 회사의 가치보다 우선일 순 없다. 제때에 만났고, 제때에 헤어지게 된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창간이후 두 번째와 세 번째 기자의 공식적인 퇴사의 변을 들어봤다.
Q : 이달까지 근무하고 떠난다. 첫 질문이다. “이 나쁜 놈들아. 왜 나가냐.” 이유가 뭔가. 어디로 갈건가.
정새롬 기자(이하 ‘정’) : 아직 명확한 계획도 행선지도 없어요. 지금이 아니면 못 할 일을 찾으려고 해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합니다. 제가 올해로 기자 생활을 한 지 5년이 되었는데요. 일이 익숙해지며 생활이 편안해졌어요. 스스로에게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제 삶의 작은 진보들은 모두 크고 작은 돌발 변수로부터 비롯되었어요. 이번 퇴사 역시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될 거라는 기대와 두려움이 있어요. 용기를 내보려고 해요.
서혜인 기자(이하 ‘서’) : 몇년 간 해외에 가 있을 예정이에요. 정해진 건 없고,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며 보낼 듯 싶어요.
Q : 플래텀의 기자이자 팀원으로 3년여간 함께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다. 그 과정을 되돌아본다면?
정 : 쓰고 싶었던 것들을 다 써봤어요.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창업가와 실무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이 재미있었어요. 저는 플래텀이 일종의 지역 신문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버티컬 미디어죠. 기존에 다뤄진 적이 없는 스타트업 소식, 사람, 수치를 더 깊숙이 파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 제 적성에 잘 맞았어요. 덕질을 좋아해서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팀원들과도 죽이 잘 맞았습니다. 제 칠순 잔치에도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이 여럿 생겼어요. 가장 큰 수확이에요.
서 : 내외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일이 즐거울 수 있었어요. 비슷한 취미, 성격, 관심사를 가진 팀원들과 정말 친하게 지냈어요. 외부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취재에 도움을 준 분들이 생각납니다. 우리 매체 기사를 의미있다 여겨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에요.
Q : 사회생활 대부분을 미디어에서 보냈다. 어떤 의미였다고 보나? 그리고 이후 경력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보나?
정 : ‘정보를 정리해서 제공하는 것이 좋다’는 막연한 취향에서 시작했어요. 직업보다는 콘텐츠에 방점이 있었죠. 의미를 찾자면 그냥 ‘지금 내가 여기에 서 있다’는 것이 가장 크지 않나 싶어요. 의도했든 안 했든 간에 일하며 쌓은 경험이 있으니까요. 스타트업 전문 매체에서 기자 생활을 한 것이 이후 경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자리에서건 저답게 일했으면 싶어요. 그런 덕담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습니다.
서 : 이 일을 하며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려 노력했어요. 성장 중인 스타트업들을 보며 저도 한 뼘 커졌단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기업에는 어떤 요소가 있는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에 진지하게 고민한 기간이기도 했어요. 이후 커리어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거라 봅니다.
Q : 그간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와 관계자를 만났다. 그들을 총평해준다면.
서 : 창업자들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극도로 몰입하는 사람들이에요. 아울러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만족스런 삶인지를 끊임없이 자문하며 치열하게 살죠. 근간에는 비전과 소명의식이 있다고 봅니다.
정 : 창업자를 평가할 군번이 못됩니다. 그들은 전장에서 직접 총칼을 들고 싸우는 전사들이고, 저는 옆에서 그 과정을 기록하는 사람이었을 뿐이에요. 존경할 뿐입니다.
Q :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이는 누구였나.
정 : 아주 많아요. 특별히 한 분을 꼽기는 어렵고, 실무자들을 만나면 늘 자극이 됐습니다. 사실 실무자 인터뷰에는 사심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왜냐면 제가 일하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러 간 자리이기도 했거든요. ‘저 사람은 어떻게 일하길래 저렇게 잘하지?’, ‘저 상품은 어떻게 만든 거지?’ 등 비결을 꼬치꼬치 캐묻곤 했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 업에 대해, 세상과는 다른 자기만의 정의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노하우보다는 태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어요. 기자가 아닌 인생 후배, 동료로서요.
서 : 저도 많아요. 특히 진심으로 비전을 말하는 인터뷰이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당장,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더라고요. 그런 창업자가 이끄는 기업은 대부분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이었어요.
Q : 재직기간 중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했다. 스스로에게 가장 의미있었던, 혹은 쓰면서 재미있었던 시리즈는 무엇이었나.
정 : 올 하반기에 기획한 ‘워크인사이트’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이, 코너는 기획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미 플래텀에서 몇 년 전부터 실무자 인터뷰를 많이 해놨더라고요. 과거 자료들만 정리해도 콘텐츠가 넉넉히 쌓여서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었어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잘 파악하고 활용하는 것이 좋은 기획의 기본이라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입사하자마자 썼던 ‘2015 핵심기억’ 시리즈도 재밌었어요. 당시에 영화 ‘인사이드아웃’이 흥행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패러디해서 24명의 스타트업 관계자들에게 당해 주요 이슈를 물었습니다. 열심히 해서인지 기억에 남네요.
서 : 기업 설립 1년차 여성 대표들만 만나 취재해 본 ‘허스토리’, 성수동에 얼마나 많은 소셜벤처가 있을까 싶어 찾아서 묶어본 ‘가디언스오브갤럭시’ 등이 있습니다. 투자유치 등 인터뷰한 기업들의 상장 과정을 소식을 들을 때마다 뿌듯했어요.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건 ‘익명토크’ 시리즈에요. 익명이 보장된 만큼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유익했던 건 ‘창업가 뒤의 창업가’라 할 수 있는 VC와 액셀러레티어 심사역들을 만나 인터뷰 했을 때에요. 스타트업의 목소리를 VC와 액셀러레이터에게, 액셀러레이터와 VC의 목소리를 스타트업에게 전하는 과정이기도 했죠. ‘투자人사이트‘ 카테고리에서 보실 수 있어요.
Q : 스타트업을 만나며 창업을 생각해 본적은 없나.
정 : 전혀요. 절대 안 할거에요. 창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창업자를 만날 때마다 알게 되거든요.
서 : 생각을 해보긴 했어요. 하지만 당장은 어렵다고 봐요. 나중에라도 정말 가능성 높은 아이템을 찾는다면 할지도 모르겠어요.
Q : 우리 조직 특성상 간섭은 적지만 일은 알아서 해야했다. 자율성이 높지만 부담도 컸을거다.
정 : 저는 좋았습니다. 초년생 때부터 자유도가 높은 조직에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잘 맞았어요. 다만 스스로 세운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서 : 후회 없이 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시받은 일만 했다면, 일 자체에서 오는 재미가 반감했을거에요. 스스로 설계하고, 목표만큼 도달하는 건 좋은 경험이었어요.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가책을 느껴야 하는 일은 힘들지만요.
Q : 스타트업과 일반기업은 아무래도 조직이나 기업문화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일장일단이 있을텐데, 스타트업 유경험자로서 차이점을 이야기해준다면?
정 : 스타트업에서는 회사의 방향성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목표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덜 지치기도 하고요. 남이 해주는 동기부여는 오래 가지를 못하더라고요. 건강하게 야망을 추구할 줄 아는 인재라면 스타트업에서 날개를 달 수 있으리라 봅니다.
서 : 스타트업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해요. 업무 자체를 대표하는 경우가 많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하죠. 도제식으로 배우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체계가 있는 경우도 많지 않아요. 대신 일의 업무권한 및 재미를 상대적으로 더 가져갈 수 있어요.
Q : 두 사람 다 갓 30대에 접어들었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클 때이기도 하다. 본인 인생의 장기적인 계획은 뭔가. 그리고 가장 하고싶은 것은 무엇인가.
정 : 기자, 스타트업, 콘텐츠라는 저의 DNA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일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최대한 개방적인 자세로 경험치를 늘려가고 싶어요. 노년에는 여러 나라의 원서를 읽을 줄 아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서 : 콘텐츠가 됐든 책이 됐든 살아온 과정을 기록하고 싶어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평생의 목표는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Q : 스타트업 생태계를 떠날 수도, 계속 인연을 이어갈 수도 있다. 지난 3년여간 플래텀 기자로 만났던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정 : 늘 도움받은 일뿐이었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특히 각 스타트업 홍보 담당자께 고맙다는 말 하고 싶어요. 끊임없는 요청에도 늘 열심히 머리 맞대고 함께 고민해주셨어요.
서 : 주니어가 조금 더 성장한 주니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협력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여러 스타트업을 만나며 열정과 몰입을 배웠고, 또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전문성은 어떻게 키우는지 생각할 수 있었어요. 핀테크, 블록체인, AI 등 분야에 무지할 때 아낌없이 시간 내서 가르쳐주신 여러 스타트업 관계자분들께도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 : 끝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정 : 플래텀 식구들, 3년간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저의 뿌리는 이곳에 있다는 마음으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서혜인 기자는 2년 반 동안 저와 우애좋게 잘 지내주어서 고마워요. 성실한 모습 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제 칠순 잔치에도 와주세요.
서 :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회사와 동료애 넘치는 팀원 모두에게 감사해요. 특히 옆자리에서 친구이자 동료로 동고동락하다 퇴사도 함께하는 정새롬 기자,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덕분에 팀워크를 배웠어요. 새롬님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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