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준범의 주분경분] #2. 대주주, 돈 들이지 않고 경영권 지키는 방법
안녕하세요. 천준범 변호사입니다.
창업 이후, 사업 아이템(BM)의 성공 가능성이 확인되고,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회사의 대표님은 고민이 없습니다. 직원들도 신나서 일하고, 여기 저기 투자를 해 주겠다는 제안이 물 밀듯 쏟아집니다. 트래픽이 폭주해서 서버가 다운되고 공장이 없어 물건을 못 만드는 날이 계속됩니다. 하루하루 꿈처럼 행복한 꽃길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조금씩 다가오는 불청객이 있으니, 바로 ‘동상이몽’입니다.
어려운 시기에는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어 미래를 향해 나아갔지만, 사실 공동 창업자들, 동업자들 사이의 머리 속은 원래부터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어떤 사업을 해야 더 돈을 많이 벌 지, 아니면 사업의 성공에 나의 기여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릅니다. 단지 사업의 성공을 위해 잠시 이야기하지 않고 참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업이 잘 되기 시작하면 서로 다른 의견을 조금씩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 때, 잘 해결하지 않으면 분쟁의 씨앗이 생겨납니다.
제 경험을 돌아보면,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주주들 사이의 분쟁은 대부분 참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회사를 함께 열심히 키운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의 동업자들 사이의 다툼은 물론, 수십조의 매출을 내는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중소기업 창업자와 PEF 사이의 분쟁도 결국 대주주 마음 속의 한 마디가 가장 큰 분쟁의 씨앗이자 불쏘시개가 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내 회사인데”
최근 재판을 받고 있는 롯데그룹의 창업자 신격호 회장도 법정에서 “내 회사인데 무엇이 잘못”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창업자나 대주주는 누구나 자신의 회사에 대한 애정이 굉장하기 때문에 아무리 다른 주주가 많이 들어오고 지분이 희석되더라도 ‘내 회사’라는 애착을 갖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대주주로서 ‘내 회사’의 경영권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돈을 들여 계속 대주주 스스로 회사에 자본금을 넣어서 지분율을 유지한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업은 내 돈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갖추지 못한 다른 장점을 가진 동업자가 있는 것이 성공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가 커지면서 다양한 주주들과 함께 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주주들이 많이 생기는 상황에서 대주주가 ‘돈 들이지 않고’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론적으로는 이 경우 ‘M&A 방어수단’이라는 멋있는 제목으로 초다수결의제, 황금 낙하산, 포이즌필, 황금주 등 여러가지 기법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의 사례를 소개한 것이거나, 현실적으로 이용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주식회사의 대주주라면, 아래와 같은 기초를 알고 있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첫째, 정관을 꼼꼼하게 검토하는 것입니다.
대주주가 돈을 들이지 않고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주식회사들은 시중에 돌아다니는 출처 불명의 정관 샘플을 이용하여 설립되고 있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정관에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정관에는 상법 개정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 대주주에게 치명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법은 ‘집중투표제’를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내용이 없는 정관들이 있습니다. 이 정관을 그대로 방치한 후에 투자를 받아 대주주의 지분이 66.7%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대주주는 이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언제든지 회사의 이사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집중투표제’란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들에게 선임 예정 이사의 수를 곱한 만큼의 의결권을 인정한 후 한꺼번에 행사하도록 하는 제도여서, 이에 따라 의결권이 행사되면 50% 미만의 소수주주들이 지지하는 사람도 이사로 선임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정관의 수권주식 수, 신주발행 관련 사항, 공고방법, 주주명부 폐쇄기간, 이사와 감사의 수, 임기, 보수와 퇴직금 조항과 같이 형식적이고 절차적으로만 보이는 규정들도 상황에 따라 아주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분쟁 상황이 되면 하나하나가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회사의 정관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설립자의 의도에 맞게 작성해 두면 나중에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둘째, 주주간계약을 미리 잘 체결해 두는 것입니다.
처음 창업할 때나 투자를 받을 때 주주들 사이에는 회사의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주주들은 자주 만나기 어렵고, 회사가 커지면서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서 다른 생각이 생기게 됩니다.
그 전에, 주주간 계약으로 여러가지 사항을 정해 놓으면 분쟁을 미리 막을 수 있습니다.
이사를 선임하거나 정관을 변경하는 것과 같이 주주총회에서 결정해야 할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미리 대주주의 뜻에 따라, 아니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약속하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계약이 과연 회사에도 효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미리 어떤 주주간계약을 체결할 지 꼼꼼하게 정리해서 법적 검토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주간계약에서 주식을 양도하지 못하도록 약속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반매도권, 우선매수권 등 주주의 변동에 관한 예측가능성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조항들이 이용되기도 합니다. 원래 사이가 좋던 주주더라도 제3자에게 주식을 양도하는 경우 제3자와의 관계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긴장이 흐르고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법상 주식회사의 주식은 정관에 이사회 승인이 필요하다는 규정이 없는 한 자유롭게 양도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식회사를 운영하는 이상 막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밖에도 주주간계약에는 회사의 경영에 관한 다양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주주들이 있다면, 대주주의 관점에서는 최대한 사이가 좋을 때 이러한 주주간계약을 미리 체결해서 안정적인 경영 가능성을 확보해 두는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 많은 친구를 잘 두면 좋습니다.
경영권이 위험할 때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방법이 ‘백기사(white knight)’라고 불리는 우호주주에게 S.O.S를 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3자에게 주식을 발행하고 돈을 구하되, 대주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가장 흔한 경영권 방어 방법입니다. 회사는 언제나 돈이 부족하고, 사업이 아닌 방법으로 그 돈을 빠르게 만드는 방법은, 은행 등에서 빌리거나, 주식이나 사채를 발행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제3자에게 주식을 발행하려면 정관에 제3자 배정의 근거조항이 있어야 합니다. 일부 정관에는 대부분의 정관에 명시되어 있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근거 규정이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정관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3자 배정의 근거 조항이 정관에 없다면 무조건 기존 주주들에게 지분율에 따라 먼저 증자에 참여할 권리를 주어야 하는 것이 상법상 원칙입니다. 어떤 주주가 지분을 포기해야만 제3자에게 순서가 돌아갑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이 있는 상황에서 반대편의 주주가 필사적으로 지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해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을 대신 취득해 준 대가는 주어야 할 것입니다. 법적으로는 그 대가를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고, 방법마다 적법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복잡한 파생금융계약이 이용되기도 하고, 거래관계나 출자관계가 이용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방어 방법도 ‘미리’ 설계하여 두지 않으면 실제 경영권 다툼이 일어났을 때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실제 주주들 사이에 경영권을 두고 분쟁이 발생하면 위와 같은 세 가지 방법만으로 전부 대응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실무적으로 이용되는 방법은 훨씬 다양하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소송과 가처분, 민사와 형사를 넘나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이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회사의 정관과 주주간계약만 잘 검토하고 내용을 작성하여도, 민감한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크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의 대주주라면 조금 귀찮더라도, 유비무환의 자세로 미리 법적인 부분에 조금 신경을 쓰는 것이 ‘내 회사’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사업의 성공을 지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글: 천준범 변호사 (법무법인 세움 파트너 변호사)
원문: [천준범 변호사의 주주간/경영권 분쟁 이야기] #2. 대주주, 돈 들이지 않고 경영권 지키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