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人사이트] 젊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말하는 한국 투자 생태계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 차는 있겠지만,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의 한 축을 VC(venture capital)를 비롯한 투자 영역이 맡은 것은 분명하다. 스타트업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벤처투자에 입문하려는 이들도 근래 적지 않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감을 잡기 어려운 분야가 벤처캐피털 영역이기도 하다.
경험이 중요한 영역이기에 벤처캐피털리스트의 나이가 많을 수 밖에 없다. 2016년 기준으로 국내 40대 이상 벤처캐피털리스트가 60% 이상이다. 하지만 근래 이 영역에 창업자 또래의 30대 심사역들이 다수 진출했다. 이들은 기술과 창업 경험을 기반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중이다.
20, 21일 양일간 여수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스타트업 생태계컨퍼런스’에서 투자업계서 종사하는 소장파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무대에 올랐다. 패널로는 오지성 뮤렉스파트너스 파트너,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수석 , 정지우 소프트뱅크벤처스 이사가 자리했으며, 조윤민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팀장이 모더레이터를 맡았다. 이하 노변정담 전문 정리.
VC들이 자리했으니 펀딩에 관련해서 얘기를 해보자. 한국 VC 업계에 정부가 지원 자금이 많은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지성 파트너: 정부자금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다만 지금은 VC가 민간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시점이다. 민간자금 부분에서 VC가 노력해야 할 것은 전략적 출자자의 벤처생태계 유입 유도이다. 우리나라 벤처생태계는 M&A 등 회수 측면이 부족하다.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VC가 집중할 부분이다. 대기업이 보수적이거나 스타트업이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중간 역할자인 VC가 올바른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VC는 스타트업이 M&A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고, 대기업과의 연결에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야 선순환 성장이 가능하다.
정지우 이사: 민간자금으로 펀드를 조성한 경험을 돌이켜보면, 기본적으로 그들은 사업개발에 필요한 정보나 파트너를 원하고, 더 나아가 공동투자의 기회나 잠재적인 인수 대상자를 찾았다. 전략적 투자자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면서 실제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전략적 투자자들 다수가 처음에는 작게 투자한다. 성공에 대한 의문부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펀드 운용 기간 내 여러 긍정적 사례가 나오면 추가 출자를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형태의 펀드 조성을 먼저 제안해오기도 한다. VC가 LP 등 전략적 투자자의 니즈에 좀 더 집중한다면 정부자금 외 펀드를 키워나가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민간 기업 중 출자를 열심히 하는 사례가 있다면.
박희은 수석: 대표적으로 GS홈쇼핑이 있다. 좋은 출자자로 스타트업에게 다양한 도움을 주며 선순환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런 사례가 더 나와야 한다. 정부자금은 세금이기에 스타트업이 잘 안 되었을 때 이슈가 생긴다. 정부자금이 지금까지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국내외 민간 LP를 끌어들여 긴 호흡으로 갈 필요가 있다. 현재는 VC에게 출자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민간자금이 실사례를 통해 인지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좋아진 만큼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각각 투자 차별화 전략이 있을텐데
오지성 파트너: 기존 VC들은 특정 스테이지에 집중을 하는데 반해, 뮤렉스파트너스는 펀드별로 주요투자 산업을 상세하게 미리 산정한다. 초기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와 라이프스타일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운영하는데, 각각 테마를 두고 있다. 특정시장에 관심 있는 전략적 투자자가 먼저 우리에게 제안을 하고 LP로 들어와서 시너지가 나는 사례도 있다. 그리고 산업에 전방 투자를 하다 보니 일반 펀드를 운용할 때보다 인바운드로 딜소싱이 되는 양과 질이 매우 좋다. 이로인해 해당 산업에 대한 우리 하우스의 전문성이 높아지고, 다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아울러 컴펜세이션(보상)이 있겠다. 대부분 VC가 딜에 대한 컴펜세이션 구조로 가다보니 회사차원에서는 가끔 비효율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린 회사 차원에서 좋은 컴펜세이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지우 이사: 소프트뱅크벤처스의 투자전략은 언론에 많이 소개되었다.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말하자면, 펀드 비즈니스는 시간과 호흡이 긴 비즈니스라서 전문성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개별 투자자 네트워크일 수도 있고 특정 산업에 대한 이해일 수도 있다. 다양한 것들이 쌓여야 타 하우스보다 반 박자 빠르게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우린 사업화적 관점, 사업 개발 측면에서 더 많이 인발브하려고 노력한다.
미국 VC와 한국 VC의 일하는 방식 차이점은 뭘까.
박희은 수석: 좋다 나쁘다의 관점은 아니고 다른점은 있다. 미국쪽 VC 대표들을 보면 펀드레이징도 하지만 직접 디테일하게 딜소싱을 하고 결정까지 하더라. 그래서 미국 주니어 레벨의 심사역은 결정권이 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반면에 우리나라 VC 대표 대부분은 펀드를 결성하는데 집중하는 것 같다. 딜을 발굴하고 어느정도 투자단계까지 만드는 것은 팀장급 레벨에서 많이 한다. 좋은 점은 젊은 심사역이 여러 회사를 검토하고 판단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투자에 대한 성과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딜에 참여한 만큼 가져가지 못 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다 보니 컴펜세이션을 많이 가져가기 위해서는 투자보다 펀드레이징을 더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젊은 심사역들이 하는듯 싶다.
투자이후 VC가 어느 정도 스타트업에 관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나.
박희은 수석: 우리는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모든 회사에 인발브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을 좋아하는 대표가 있고, A부터 Z까지 다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선호하는 대표가 있다. 우리 방식보다 포트폴리오사 대표의 성향에 맞춰 서포트 정도를 조율한다. 결국 우리 일의 핵심은 창업자를 돕는거다. 창업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회사의 자금이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거나 투자를 퉁해 조달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가 성장하려면 좋은 인력이 많아야 하고 나쁜 인력과는 헤어져야 한다.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서포트하려고 노력한다.
정지우 이사: 피투자사를 위해 우리 회사의 리소스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많이 고민한다. 회사의 시기에 따른 자금, 인력, 사업개발 등 중요도가 다르다. 그것에 맞춰 깊숙하게 가기도 하고 요청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대표 성향에 따라 유동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VC 업무를 하면서 젊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불쾌했던 경우는 없나.
박희은 수석: 창업자였던 10년 전에도 어리다는 얘기를 들었고, 지금도 어리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젊다는 이유로 당했던 불쾌한 경험이 적지는 않다. 나이에 상관없이 책임과 권한을 주는 곳이어서 알토스벤처스를 선택한 측면이 크다. 물론 지금은 업계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다 본다. 나부터 조심하자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한다.
정지우 이사: 투자 경력과 특정 나이대가 투자 성공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표는 딱히 없다. 지금 투자업계에 합류하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이후 세대인 경우가 많다. 산업 변화가 빨라지고 IT 영역에 대한 투자가 많아질 수록 그들이 더 나을 수 있다.
보수적인 시니어를 설득하는데 힘든 적은 없었나. 세대 차이 때문에 투자를 못 했던 사례라던가.
정지우 이사: VC 경력이 1년 6개월도 채 안 됐을 때, 100억 규모의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당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시니어들에게 설명해야 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세대차라기 보다 나는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환경 속에 살았고, 시니어들은 익숙하지 않은 차이였다. 그런 차이를 줄이기 위해 회사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을 경험한 VC가 좋다는 의견이 있다. 그게 투자에 좋은 경험이 될까.
박희은 수석: 창업 경험이 투자를 잘 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 VC업계에 스타트업 경험을 한 사람 비율이 매우 적은건 사실이다. 최근 VC업계에 스타트업 경험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스타트업 경험이 없는 경우 어떻게 창업기업을 접근하는 편인가.
오지성 파트너: 존경심을 바탕으로 판단을 하려고 노력한다. VC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직간접 경험을 만나는 창업가들에게 전하려 노력한다. 특히 투자 뒤 핵심인재 연결, 다음 펀딩 전략을 함께 하는 동시에 창업자의 상담소 역할을 한다.
기존 VC나 시스템이 답답했던 경우는 없었나.
박희은 수석: VC는 다양한 연령층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서로의 경력을 기반으로 논의하면 좋은 방향으로 간다고 본다. 그런데 일부 VC는 투심위가 오피셜하게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곳은 일단 팀장급이 회사들을 혼자 만나서 준비하고 정리해서 투심위에 올린다. 심의위원들은 회의 자리에서 문서로 회사를 처음 보고 판단하는거다. 좋은 판단을 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이런 프로세스가 좋은 시스템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지성 파트너: 개인적으로 답답한 점은 지나친 개인화 시스템, 즉 개인플레이이다. 딜 바이 딜의 보상구조나 투심 구조 등 여러 요인으로 VC는 여타 산업군에 비해 팀십이 약하다. 팀십이 약해지면 집단 지성 역량도 떨어지고 하우스의 역량도 낮아진다. 그게 심화되면 좋은 투자를 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부분이 해소되면 좋겠다.
투자한 회사의 기업가가 구주를 액싯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지우 이사: 오너십을 가진 주주가 자신의 지분을 줄이려고 하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거다. 합리적인 소통과 사전협의만 이루어진다면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다고 본다.
박희은 수석: 대표가 그런 결정을 한다는 건 많은 고민을 통해 내린 것이다.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기업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해당 회사의 성장을 믿고 있다면 낮은 가격에 좋은 주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는 없다.
끝으로, VC업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정지우 이사: 세대와 관계없이 열심히 배우고 협력하면서 일하겠다.
박희은 수석: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서 경쟁이 치열해졌지만, 우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물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거다.
오지성 파트너: 각 VC가 자신만의 색깔로 성장하면 좋겠다. 다채로운 색깔로 VC가 변화한다면 벤처생태계가 더 좋아질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