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人사이트] “얼추 아는 백 명 아닌, 열광하는 단 한 명 만드는 것이 브랜딩” – 스타일쉐어 전우성 브랜드 디렉터
“미래에는 마음을 가진, 그리고 스토리를 가진 브랜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스토리는 발명한 것이 아닌 발굴한 것이어야 한다.”(롤프 옌센)
지난 9일 스타일쉐어가 유저와 함께 만든 패션 PB ‘어스(us by StyleShare)’를 론칭했다. 옷 잘 입는 일반인들의 커뮤니티로 시작한 이 서비스가, 8주년에 맞춰 유저를 앞세운 브랜드를 내놓았다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행보처럼 느껴진다. 억지스럽게 갖다 붙인 것이 아닌, 적절하게 잘 발굴된 스토리인 셈이다.
어스는 스타일쉐어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첫 브랜딩 프로젝트다. 제품 기획과 양산, 광고에 이르는 전 과정에 유저의 목소리를 반영했다. 기획 초반엔 별다른 색이 없던 PB였으나, 전우성 브랜드 디렉터가 스타일쉐어의 브랜드 정체성을 담아보자는 아이디어를 내 지금의 어스가 탄생했다.
서비스 9년 차, 한참 성장기를 달리고 있는 스타트업은 어떻게 브랜딩 스토리를 발굴해냈을까? 브랜딩을 위한 첫 질문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스타일쉐어 전우성 브랜드 디렉터에게 들었다.
■ 얼추 아는 백 명이 아닌 열광하는 단 한 명을 만들어내는 일
네이버, 29CM, 토스 등을 거치며 브랜딩 업무를 해왔습니다. 처음 브랜딩을 업으로 삼고 싶다고 느꼈던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삼성전자 마케팅 직무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영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요. 그 후에 네이버로 이직해 크리에이티브 마케팅&디자인 조직(CMD)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당시 본부장님이 조수용 현 카카오 공동 대표님이셨어요. 브랜딩 중심적 사고를 하셨던 분이라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표 경력으로는 ‘네이버 한글한글 아름답게 캠페인’ 세 번 째 프로젝트의 PM 역할을 했었어요. ‘나눔글꼴 에코’와 ‘한글 문서 서식’ 을 기획했습니다. 검색 서비스라는 네이버의 본질과, ‘좋은 온라인 한글 폰트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배포한다’는 공익적 가치가 잘 맞닿아 있는 캠페인이었죠.
온라인 편집숍 29CM에서도 재밌는 브랜딩 프로젝트를 많이 하셨었죠.
워낙 브랜딩을 잘하는 조직이에요. 29CM에서는 무조건 다른 곳과 차별화하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서비스뿐 아니라 진행하는 모든 프로모션에 대해 ‘역시 29CM는 다르네.’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게요. 실제로 유사한 사례가 이미 있다고 하면, 그 방식대로는 일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2014년 29CM 앱을 처음 론칭하면서, 앱 홍보 이벤트를 기획하게 됐어요. 미니쿠퍼 한 대를 사서 ‘29CM스럽게’ 커스터마이징을 해 응모 고객에게 선물했습니다. 당시 서비스 인지도가 많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어요. 또 앱 푸쉬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기획했던 루시(LUCY)도 기억에 남네요. 영화 ‘허(Her)’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한 것이었는데, 정보성 푸쉬와 달리 감성을 전달해 호응을 얻었죠. 앱 푸쉬 개선 목적에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좋은 브랜딩 효과가 났던 사례예요.
브랜딩 효과라는 말을 들으니, 브랜딩에 대한 디렉터님의 정의가 궁금해집니다. 브랜딩은 뭘까요?
사람마다 그 정의가 다르겠지만, 제 생각에 브랜딩이란 그 브랜드만의 ‘다움’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브랜드만이 가진 가치를 정의하고, 그것을 소비자의 모든 경험 요소에 적용하고, 외부에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죠. 이것을 꾸준히 했을 때 그 브랜드를 사랑하는 팬들이 생겨요. 얼추 아는 백 명보다 열광하는 한 명이 훨씬 강력하죠. 그 한 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왔던 일들, 우리가 가진 역사, 우리의 본질을 펼쳐놓고 그중 우리만의 고유성을 뽑아내는 것이죠. 거기서 나온 메시지를 뾰족하게 다듬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브랜더의 일입니다.
■ 유저의, 유저에 의한, 유저를 위한 패션 브랜드 ‘어스’ 론칭기
스타일쉐어의 경우, 이미 서비스 9년 차에 들어선 시점에 합류하셨어요. 입사 후 가장 먼저 한 작업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오자마자 새로 론칭하게 될 브랜드가 하나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컨셉이 딱히 정해지지 않은 베이직 라인 패션 브랜드였죠. 이름도 ‘에이비씨(ABC)’로 거의 결정되어 있는 상황이었어요. 뭔가 평이하단 느낌이 들더군요. 스타일쉐어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PB인데, 스타일쉐어스러운 아이덴티티가 반드시 녹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타일쉐어만의 차별점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게 되었죠.
어떤 식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발굴해 나가셨는지 궁금하네요. 첫 질문을 어떻게 던지셨는지도요. 사람들이 우리 서비스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했어요. 우리는 그 키워드를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해나가야 하나. 이런 것들을 단계적으로 고민하면서 만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노하우는 없고요. 브랜드의 과거-현재-미래를 구석구석 살펴요.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을 해볼 수 있겠죠.
– 이 브랜드는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성장기를 거쳤는가?
– 대중의 인식 속에 이 브랜드는 과거에 어떻게 인지됐었고, 현재 어떻게 인지되고 있는가?
– 현재의 서비스 상황과 앞으로의 서비스 지향점은 무엇인가?
– 이 브랜드가 세상에 없었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불편해할까?
스타일쉐어가 가진 브랜드 정체성이란 결론적으로 무엇이었나요.
‘스타일’, ‘다양성’, ‘커뮤니티’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추려졌습니다. 스타일쉐어는 유저들의 자발적인 스타일 공유로 시작한 커뮤니티이자 브랜드예요. 또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체형과 외모, 개성이 응원받고 있다는 것도 스타일쉐어가 가진 하나의 특성이었죠.
발굴한 키워드를 상품에 어떻게 녹여냈나요.
먼저 다양한 길이와 핏의 베이직 아이템을 개발한다는 내용은, 원래 기획하고자 했던 PB가 가진 방향성이었어요. 이 부분을 ‘다양성’, ‘커뮤니티성’과 잘 묶었습니다. 커뮤니티를 상품 기획에 참여시키고자 지난 5월부터 500명 이상의 유저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과 오프라인 품평회를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3가지 기장, 3가지 핏, 6가지 색상이 가미된 총 54종의 라인업을 출시하게 됐어요. 비쥬얼 커뮤니케이션 역시 일곱 명의 다양한 개성과 체형의 스쉐러(스타일쉐어 유저)들을 섭외해 어스의 얼굴로 내세우는 방식으로 풀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고요.
브랜드 정체성을 담은 PB를 론칭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가 있었나요?
저는 계속 온라인 서비스 회사에서만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실제 상품 론칭은 처음 해봤어요. 어렵더군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수천만 원 이상을 투자했던 1차 생산 물량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한 일이었어요. 상품 가치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스타일쉐어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아쉬운 점이 조금씩 보였었던 거죠. 결국 이 부분을 보완해서 재생산하기로 하는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비용적, 시간적 손해가 있었지만 결국 고객 만족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이 과정을 유저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취지로, 어스 구매 고객에게 사전 고지 없이 1차 생산품 한 벌씩을 선물로 얹어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담은 짧은 레터도 동봉하기로 했어요. 나는 분명 티 한 벌을 주문했는데, 두 개가 와서 놀라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스타일쉐어의 진정성 있는 결정들이, 이러한 디테일을 통해 받으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커뮤니티나 유저 중심의 브랜딩 프로젝트가 있나요?
9월 16일부터 <대한민국 스타일 공유 프로젝트 : #너다움을응원해> 라는 이름의 패션 콘텐츠 공모전을 시작했어요. 총 2천만 원의 스타일 지원금을 20명에게 지원하고, 스타일쉐어 화보 촬영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스타일쉐어가 하반기부터 20대로 유저 연령층을 확대하기 위해 기획된 이벤트예요. 동시에 우리의 좋은 브랜딩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하죠. 선정 기준도 스쉐러들의 투표 50%, 팀 내부 심사 50%로 이루어져 있어요. 획일화된 미가 아닌 ‘너다운 스타일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는 앞으로도 스타일쉐어가 계속해서 유저들과 세상에 이야기해나갈 주제입니다.
■ 스타트업 밥 먹여주는 좋은 브랜딩의 힘
사실 스타일쉐어는 전우성 디렉터님을 중심으로 브랜딩 작업을 할 수 있었지만, 규모가 더 작은 스타트업의 경우 브랜딩에 대해 따로 고민할 여력도, 인력도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브랜딩 논의를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 창업자입니다. 맨 처음 어떤 목적으로 창업을 했는가에 대한 창업 멤버들의 합의 도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어떤 가치를 더하고 싶은지에 따라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작은 스타트업일수록 창업자의 브랜딩 의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하루하루 생존이 바쁜 스타트업인데, 브랜딩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29CM가 좋은 예입니다. 29CM가 초반에 차별화 전략 없이 세일즈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의 모습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브랜드력은 커머스 기업의 핵심 역량인 소싱(Sourcing)과 직결되어 있어요. 처음 29CM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팀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모든 브랜드에 입점과 광고 영업을 해야 했어요. 지금은 BMW, 볼보, 프라이탁 등의 멋진 브랜드들이 먼저 29CM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합니다. 그게 브랜딩의 효과입니다. 좋은 브랜딩은 좋은 기회, 좋은 파트너와 만날 수 있게 해주고 그것이 곧 매출 증가로 이어지게 되죠.
브랜딩 키워드를 발굴했더라도 그것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거나, 내부 구성원들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내부 브랜딩을 하시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나 극복 사례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실제로 브랜딩 스토리를 서비스에 녹이는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모든 팀원을 한 명씩 만나서 공감대를 만들기도 현실적으로 어렵고요. 가장 중요한 것이 모든 구성원이 브랜드 키워드를 인지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적용하게 만드는 것인데요. 이를 위해 문서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29CM에서는 수개월에 걸쳐 ‘브랜드 가이드북’을 만들어 배포해보기도 했어요. ‘29CM를 의인화하면 어떤 사람일까?’, ‘29CM다운 모습은 무엇일까?’ 등 총 네 파트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두꺼운 책이에요. 내부 브랜딩을 위해 만든 자료였지만, 밖으로도 공유되고 입소문이 나면서 오히려 더 큰 외부 브랜딩 효과를 가져왔던 사례입니다.
브랜딩을 위해 참고하는 웹사이트나 잡지가 있으신가요?
참고하지 않습니다. 영감을 주는 것과 별개로, 브랜딩만을 목적으로 참고하는 매체는 없어요. 브랜딩은 트렌드를 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어디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것,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다만 그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있어서는 크리에이티브한 결과물들이 참고가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브랜더 전우성이 사랑하는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프라이탁(freitag) 좋아합니다. 대표님을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기도 하고, 직접 베를린에 가서 사오기도 할 만큼 열성 팬이예요. ‘리사이클 프로덕트’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타프 천과 안전벨트로 제품을 만드는데, 2008년 처음 만나자마자 그 브랜드 스토리에 매료됐어요. 프라이탁 제품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의식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나 자신이 멋져 보였죠. 좋은 브랜드가 주는 경험이란 그런 것 같아요. 미래엔 어스도 누군가에게 그런 브랜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