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 스타트업 리더들이 봉준호 감독에게 배울 점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을 받았다.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이 스토리 속에는 천재성, 디테일, 노력, 신뢰 기반의 장기적 투자 파트너, 꾸준한 해외 시장 도전 등 스타트업이 배울 다양한 시사점으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스타트업 리더들이 꼭 배우고,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디테일’이 아닐까.
#세줄요약
–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 본인의 부족한 준비성과 즉흥적 독단을, 린스타트업이나 애자일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 마이크로 매니징을, 디테일로 착각하지 말자. 진짜 디테일은 지시받은 사람이 미리 명확하게 알 수 있게 설명해주는 것을 말한다. 작은 꼬투리를 잡는 것이 아니다.
#봉테일 : 봉준호 감독의 상징, 디테일
– 필자는 현재 창업자 및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원래 영화인이 꿈이어서 대학을 휴학 후 상업 장편영화 2편에 제작부 스태프로 일을 하였다.
– 그 후 단편영화 여러 편 참여했는데, 당시 봉준호 감독은 이미 엄청난 디테일로 유명해서 영화계에서는 ‘봉테일’로 불리던 때였다. (‘살인의 추억’ 개봉 직후)
– 나를 포함해 영화계 인맥 있는 영화지망생들이 어렵게 수소문해서,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초판 콘티북을 구해 제본하여 <수학의 정석> 보듯이 정독하며 공부하곤 했다.
– 콘티란, 연출자가 구상하는 영화의 주요 장면들을 마치 4컷 만화처럼 손으로 그리는 것인데, 이 속에는 인물 위치, 미장센, 카메라 앵글, 카메라 이동 방식 등을 가급적 상세히 담아내는 것이다. (‘스토리보드’라고도 부른다)
– 콘티북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이 콘티북을 중심으로 모든 스태프가 영화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소품, 카메라 렌즈, 지미집, 바디캠 등 장비 등)
– 즉, 예산 범위도 감독이 그려내는 콘티 그림에서부터 시작되어 산정되고 그에 맞추어 제작비도 마련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스타트업의 사업계획과 비슷하다. 물론 머릿속에서 상상한 그림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긴 쉽지 않기에, 촬영 일정 중에 새로운 콘티가 추가되거나 대체되기도 한다.
– 그런데 봉준호 감독의 콘티북은 유난히 소름 끼칠 정도로 디테일한 동시에 친절했는데, 실제 개봉된 영화랑 비교하면 싱크로율이 진짜 놀라운 수준이었다. (모든 장면이 그렇진 않았으나 카메라 렌즈 mm, 카메라 동선, 조명 방향, 그 소품이 있어야 하는 이유 등이 나와 있는 콘티에서는 육성으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 이게 뭐 그리 대단하고 중요한가 싶을 수도 있지만, 필자는 촬영 현장 스탭을 그 콘티북을 보기 전에 먼저 경험했던지라 10년도 넘은 지금도 가끔 생각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 왜냐하면, 현장에서 감독으로부터 콘티와 다른 지시가 즉흥적으로 생길 때마다 모든 스탭이 힘들어지고 제작비용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 예를 들어, 콘티에 없던 카메라 방향을 감독이 촬영하자고 하면 100명 넘는 모든 스태프들은 난리가 난다. 조명, 카메라, 발전차 등 대형 촬영 장비들을 다 이동해야 하고, 새로운 카메라 앵글에 보이지 않게 스태프 포함 모든 인원-장비-물품을 다 이동해야 하며, 심지어 야외 촬영이라면 다 전화해서 앵글에 걸리는 주차된 차들을 다 이동시켜야 하는데, 이 모든 일들은 태양의 방향이 많이 바뀌어 색감이 달라지기 전에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 첫 장편 데뷔 감독의 자신감 및 준비 부족으로 인해 즉흥적인 촬영이 많았던 필자로서는, 이 콘티북이 얼마나 대단하고 가치가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고심하고 상상하여, 디테일하게 준비하고, 그걸 남들이 한 번에 알아보기 좋게 표현해낸 봉준호 감독의 콘티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 의외로 영화 현장에서는 콘티 안 그리는 감독도 있고, 개발새발 그려서 스탭이 서로 다르게 알아보고 합이 안 맞는 경우도 있다. 주로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고, 5분짜리 단편영화를 처음 만드는 감독들도 본인이 현장에 나가면 기가 막힌 감각으로 즉흥적으로 좋은 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대개 착각한다.
– 혹은 콘티는 존재하지만 몇 회 차 촬영해보고 나면 스태프들이 알아서 ‘아, 이 감독은 어차피 콘티(계획)대로 안 찍는구나. 우리도 내일 준비 미리 하지 말고, 숙소가서 술이나 마시고 쉬자’하고 생각하게 된다.
– 그러니 필자는 운 좋게도, 창업과 투자를 직접 해보기도 전에 ‘리더의 디테일 없는 계획과 즉흥적 의사결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비용 소모를 가져오는지’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던 셈이다.
– 봉준호 감독과 정반대 연출 스타일은 홍상수 감독인데, 디테일한 것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촬영을 시작한다.
– 배우들과 촬영 전날 밤 소주 먹으며 교감하거나 현장 분위기를 반영하여 즉흥적인 느낌을 많이 넣어서 촬영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홍상수 감독 역시 접근 방식이 다를 뿐 ‘현장의 분위기, 날씨, 배우들과 본인의 기분’ 등의 디테일’을 중시한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연출 방식으로는 100억 이상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 따라서 봉준호의 반의어는 홍상수가 아니고, 디테일은 커녕 일정에 쫓겨 급히 갈겨쓴 일일드라마 쪽대본이다.
#디테일 : 스타트업 리더들이 배워야 할 점
– 리더가 디테일하고 명확한 계획이 있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그림을 상상하며 일을 하고, 훨씬 집중할 수 있고 완벽한 대비를 할 수 있다.
– 디테일한 계획이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팀원들이 능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 또한 디테일은 본인의 직관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치밀한 준비와 고심을 통해 자신이 있을 때 모두에게 표현할 수 있다.
– 거꾸로 말하면, 천재적이고 즉흥적인 리더가 엄청난 성과를 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디테일한 계획이 없으면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 콘티는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서와 비슷한 면이 많다. 나중에 변경되더라도, 계획과 의도는 최대한 치밀하게 고민하고 표현은 디테일한 것이 좋다.
– 리더들이 사업계획서를 통해 그려낸 그림이 매우 디테일하다면, 최소한 모두의 머릿속에 비슷한 그림을 가지고 사업에 임할 수 있고, 다음에 있을 일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
– 또한 사업 계획이 다소 변경되더라도, 디테일한 리더를 따르는 팀원들은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치밀하게 생각했겠지’ 하고 신뢰를 가지고 불안감을 덜어낸 상태에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다시_세줄요약
– 디테일, 디테일, 디테일
– 본인의 부족한 준비성과 독단을 린스타트업-애자일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 마이크로 매니징을 디테일로 착각하지 말자. 진짜 디테일은 지시받은 사람이 미리 명확하게 알 수 있게 설명해주는 것을 말한다. 작은 꼬투리를 잡는 것이 아니다.
자, 당신의 팀원들은 어떨까?
– 당신이 사업 계획을 수립하거나, 그 계획을 수정할 때
–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하고 신뢰하는 눈빛을 보이는가?
– 혹은 “우리 회사 계획이라는 게 그렇지 뭐”하고 한숨을 내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