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의 겸손함에 대하여 – 소프트뱅크와 손정의
나에게는 서울대 창업동아리 시절에 만나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금융 업계 종사자 선배가 있다. 그 선배는 가끔 나에게 테크 산업 종사자로서 어떤 기술 기업에 대한 의견을 묻곤 하시는데, 2019년 말 우리의 대화 주제는 우버와 위워크 등의 문제로 큰 타격을 입은 소프트뱅크였다.
Q) 선배의 질문 : 소프트뱅크 어떻게 될 것 같니? 투자해야 할까?
A) 나의 대답 : 네 저라면 투자합니다. 선배나 제가 한 10조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칩시다. 평생 써도 다 못 쓸 돈 가지고 있는데 남한테 가서 아쉬운 소리 하고 싶을까요? 그런데 손정의 사장님은 자기 일에 필요하니까, 자기보다 돈 더 많은 사람, 빌 살만 왕세자 찾아가서 투자 요청을 하셨다더라고요. 그 정도 돈 가지고 있어도 여전히 다음 목표가 있고, 그 목표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은 잘 안될 수가 없다고 봐요.
그렇다. 내가 언급한 일화는 비전 펀드 결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사우디의 실세로 꼽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부왕세자를 비롯한 500명의 대표단이 도착하자 소프트뱅크는 재빨리 면담 일정을 잡았다.
손 사장은 사우디 국부펀드(PIF) 수장인 야시르 알루마얀, 칼리드 팔리흐 사우디 석유장관, 마제드 빈 압둘라 알카사비 무역·투자장관을 줄줄이 만났으며 맨 마지막에는 빈 살만 알사우드 부왕세자를 직접 만나는 기회를 얻었다.
손 사장은 소프트뱅크가 사우디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알리바바, 슈퍼셀, 야후 재팬 등 성공적인 투자사례를 열거하며 사우디 마음 사로잡기 나섰다.
투자 유치 과정에서 갑을 관계는 명확하다. 투자를 요청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을’일수 밖에 없다. 가진 재산이 수십조 원 넘는 자산가가 다음 도전을 위해 을의 입장에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장면이 쉽게 상상이 되는가?
손정의 사장님의 겸손함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내가 창업을 하기 전에 일했던 곰앤컴퍼니(곰플레이어, 곰TV 등을 서비스하는 회사)의 임원 중 한분이 소프트뱅크 임원을 만나기 위해 일본 소프트뱅크 본사로 출장을 가셨을 때의 일이다. 예정된 미팅을 끝내고 나오는데, 소프트뱅크 임원 비서들이 일정표를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오늘은 손정의 사장님 다른 미팅이 있으셔서 인사 나누기 어려울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란다. 원래 손정의 사장님을 만날 예정은 전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손정의 사장님은 본사에 방문하는 분들은 예정에 없더라도 시간이 되면 짧게라도 만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으라고 요청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소프트뱅크 본사에 미팅을 올 정도면, 자기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낸 사람일 것이다. 이미 수십조 원을 가졌지만,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서 정보를 얻으려는 그 겸손함이 손정의라는 사람을 지금 그 자리에 있게 한 것이 아닐까?
나와 그 선배가 대화를 나눈 후 약 9개월이 지난 지금,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50% 이상 올랐다. 당시 문제를 일으켰던 투자사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했는데도 말이다. 냉정한 자본 시장에서 소프트뱅크는 왜 이렇게 평가되고 있을까? 위에서 언급된 이야기들에 그 답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읽을거리 : 손정의 회장 소프트뱅크 월드 기조강연 (2019년 7월)
-원문 : 억만장자의 겸손함에 대하여 – 소프트뱅크와 손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