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人사이트] “스타트업은 망해도 팀원은 성공을 경험한다”
실리콘밸리 현황을 한국인의 경험담으로 풀어가는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2020’이 3일 일정으로 22일 개막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2014년 시작되어 올해 7회를 맞이한 이번 행사에는 10명의 한국인 연사가 나서 커리어, 창업, 트렌드, 기업문화 등을 발표하고 토론에 나선다. 올해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은 실시간으로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세미나 형태인 웨비나로 진행됐다.
첫 날 커리어 세션 첫 연사는 김병학 알파헬스 AI 테크니컬 리드(이하 김병학 박사)가 나서 ‘Moving Forward with Machine Learning Startups’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김병학 박사는 고려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학-석사를 하고, A&M 대학교 박사, 반도체 회사인 ‘마벨’, 음성인식 인공지능 스타트업 ‘카피오’, 온라인 강의 플랫폼 ‘유다시티’를 거쳐 현재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파헬스’에서 머신러닝 기술 연구 개발을 이끌고 있다.
김병학 박사는 실리콘밸리 테크기업과 스타트업에서의 경험과 도전기, 그리고 미국의 의료시스템 현황과 트랜드 등을 전했다. 아울러 스타트업에서의 워라밸과 이직에 대한 조언도 했다.
그는 “스타트업 90% 이상은 망한다. 초기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구분하는 것도 어렵다.금전적 보상도 옆으로 밀어둬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망한다는 건 비지니스가 실패하는 것이지 몸 담았던 개인은 두가지 면에서 성공을 경험할 수 있다. 우선 스타트업에선 좋은 동료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크고, 중요한 기회는 좋은 사람을 통해서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통해 계속해서 다음기회가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스타트업에선 개인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스타트업은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압축시킨다. 어떤 문제를 새로운 도전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A급 플레이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얼리 스테이지’ 스타트업에서는 멋진 통나무집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회사가 ‘그로스 스테이’지 되게 되면 통나무집을 만들던 것을 언러닝하고 팀과 함께 빌딩을 잘 만드는 컴퓨터 역할을 학습하게 된다. 회사가 더 자라서 ‘스케일 스테이지’가 되면 이전의 상태를 또 언러닝하고 ‘팀 오브 팀’과 함께 도시 한 구역 전체를 디자인하는 법을 리러닝한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압축적 성장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단계와 과정을 거쳐서 연속적으로 혁신을 계속 경험한 사람은 스타트업을 떠난 뒤에도 대우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하 김병학 박사 발표 내용 전문 정리)
내가 실리콘벨리로 오게 된 과정…그리고 실리콘밸리에서의 첫 회사 ‘마벨’
대학교를 졸업한 후 스리랑카와 캄보디아 등 개발 도상국에서 코이카 해외 봉사단 활동을 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수도와 지방 기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지방으로 갈 수록 학생들이 좋은 선생님과 좋은 학교 프로그램을 접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학교의 재정이 안 좋아서 교육 프로그램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취직할 회사가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런 환경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기가 참 어려웠고 답답했다. 그걸 목도하며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던 고민을 풀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라는 꿈을 가지고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박사과정 마지막 해 한 반도체 회사 ‘마벨’의 오퍼를 받고 2011년 크리스마스에 실리콘밸리로 오게 된다. 마벨은 인도네시아 화교 유학생 형제가 창업한 기업으로, 반도체 분야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나스닥에 상장(2001년)한 회사이다. 내가 합류한 팀은 초창기때부터 회사 성장을 주도했던 초기 멤버들을 포함해 10년이 넘도록 반도체 분야 혁신을 선도했던 핵심 R&D 팀이었다. 그 팀의 특성은 권한과 자율성이 많이 주어지지만, 회사 제품과 시스템의 성능 향상을 위한 새로운 알고리즘 아이디어를 매주 열리는 회의에서 제안해야 한다는 책임도 함께 있었다. 초보 엔지니어였던 나는 매번 미팅에서 쏟아지는 날카로운 피드백, 그리고 수많은 토론과 대화를 통해 한결 성숙한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스타트업으로 옮기다…드라마같은 상황이 생기다, 그리고 ‘커리어 브레이크’
마벨에서 4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새로운 일자리를 옮기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원 지도교수는 머신러닝 분야로, 실리콘밸리에서 오래 있었던 선배는 스타트업으로 옮기는 것을 권해줬다. 그 조언을 듣고 프리 시리즈A 단계였던 음성인식 AI스타트업 ‘카피오’에 조인하게 된다.
2016년 당시는 딥러닝을 통한 음성인식 분야가 빠르게 혁신 중이었다. 카피오에서 기술을 따라잡고,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초기 스타트업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쁨도 있었다.
당시 카피오와 같은 10명 이하의 작은 스타트업은 바쁜 일이 지나가면 또 다시 바쁜일이 몰려오는 과정이 일상이었다. 그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재미있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좋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회사의 투자자이자 이전 CEO가 지금까지의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겠다고 통보를 해온 것이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나왔던 것 같은 상황이 일어났고, 생각보다 일찍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삶이 통째로 빨려나가는 듯한 느낌의 사건을 겪으며 자신을 냉정하게 돌이켜보는 ‘커리어 브레이크’ 시간을 가졌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에 내가 가진 커리어에 대한 생각은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의 지배를 받고있었다. 그리고 포지티브 임팩트에만 기여했지 한 번도 이웃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땀 흘리면서 일한 적이 없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혁신에 대핸 생각도 재정립했다. 실리콘밸리에는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강력하고 낙관적인 메시지가 있는데, 나는 회사 내에서 주어진 문제만을 해결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다가오는 AI시대에 이웃들도 함께하고, 그들을 직접적으로 돕는 의미있는 일을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에듀테크 기업 ‘유다시티’를 선택한 이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선택한 회사가 에듀테크 기업 ‘유다시티(Udacity)”이다. 유다시티는 유니콘 스타트업이자 실리콘밸리의 대학으로 불리우는 회사이다.
5년 10년 후에 없어질 직업들이 회자되고 있다. 대학교 교육만으로 평생 살기 어려운 시대인 것이다. 유다시티는 플랫폼을 통해 선진국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울러 20대 때 스리랑카에서 학생들을 보며 느꼈던 답답함, 그 고민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다시티의 대표 브랜드는 메이저, 마이너 대학 학위가 아니라 ‘나노디그리(유디시티가 기업의 요구에 맞춰 제공하는 학습 과정)’ 프로그램이다. 당시 팀의 연구 프로젝트 중에 하나가 이 과정의 각 학생들이 더 잘 학습할 수 있도록 AI를 통해 돕는 것이었다.
‘유다시티’에서의 마지막 프로젝트
유다시티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던 것은 재직시절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뤼미에르넷(LumiereNet)’ 개발이었다.
유다시티와 같은 온라인 교육 기업은 강의 비디오 제작을 할 때 녹음, 편집, 수정 등에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이 들어간다. 품질 높은 비디오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는 강사를 인하우스에 초대하거나 카메라 또는 녹화 장비를 강사에게 보내기도 했다. 비디오 제작만으로 끝이 아니다. 이후 콘텐츠 수정, 내재화까지 고려하면 많은 수고가 들어간다.
그런 이유로 유다시티는 머신러닝 시스템으로 비싼 비디오 생산 파이프라인을 자동화하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그래서 강사의 목소리를 녹음한 음성 나레이션만으로 강의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뤼미에르 형제에게 영감을 얻어 내부적으로 정해진 프로젝트명은 ‘뤼미에르넷 프로젝트’였다.
6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 프로젝트 결과를 정리해서 아카이브(arXiv, 코넬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무료 논문 배포사이트)에 출판전(preprint) 논문으로 올렸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미디어에서 크게 다뤄줬다. 미국 스타트업 미디어 벤처비트를 시작으로, 나이지리아, 중국, 독일, 스페인,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여러 미디어에서 주목을 받았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파헬스’에 합류하고 1년
알파헬스에는 작년(2019년) 5월 말에 합류했다. 다시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극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건 고민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6월 출산을 앞둔 아내의 동의를 얻는 데 시간이 걸렸다. 미국의 헬스케어 시스템은 안 좋은 것이 많은데, 그중에 몇 가지 문제점을 AI로 해결하는 알파헬스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태어날 아이가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을 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알파헬스에 합류하고 1년이 흘렀다. 처음에 내가 합류했을 때만 해도 4명의 파운더 포함 5명 밖에 없던 회사가 현재는 40명 규모로 성장했다. 특히 실리콘밸리 정상급 VC인 안드레센 호로위츠가 참여한 시리즈A 투자 유치를 했다. 올해 5월에는 스텔스 모드를 벗고 정식으로 서비스를 론칭했고, 월스트리트 저널에 회사가 소개되기도 했다.
미국 개인 재정파탄 원인 1위는 ‘병원비’…이를 ‘머신러닝’으로 해결하는 방법 찾기
미국에서 개인 재정파탄 원인 1위(65%)는 병원비 때문에 발생한다. 병원비를 갚지 못 하는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의료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다. 지난 20년 동안 모든 진료비에 보험 청구작업을 사람이 해왔고, 비싼 병원비, 그리고 보험 시스템도 상품과 조건이 한국과 달리 매우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알파헬스 팀에 합류하자마자 병원의 청구시스템을 머신러닝으로 자동화하는 것에 돌입했다. 병원의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병원재정 흐름에 도움을 줌으로써 환자의 진료비를 낮추려는 프로젝트였다. 그 첫 결과를 ‘딥클레임(Deep Claims)’이라는 이름의 논문으로 얼마 전에 발표했다.
디지털 헬스의 네 가지 트랜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이전부터 2020년은 머신러닝과 헬스케어의 ‘스탭펑션 이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해 왔다. CB인사이트가 작년부터 발표 중인 ‘디지털 헬스 기업 150’의 올해 8월 리스트를 보면 눈에 띄는 네 가지 트랜드가 있다.
첫 번째는 ‘Telehealth’로 150개 회사 중 41%가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두 번째는 ‘Drug R&D’로 신약 개발 등을 다루는 회사이다. 세 번째는 알파헬스가 포함된 ‘Healthcare Costs Optimization’ 분야이다. 환자와 병원, 보험사 등 의료시스템 이해관계자들을 우선순위로 두고 성장하고 있는 회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트랜드는 ‘Mental & Women’s Health’를 도와주는 회사이다. 코로나19 상황임에도 테라피나 여성의 불임 진단 및 치료를 도와주는 회사이다.
세 번째 카테고리에서 가장 작은 기업인 알파헬스는 병원에 집중하기 시작한지 1년여 만에 가장 빠르게 이 리스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타트업은 망하지만, 구성원은 성공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스타트업에 일하는 것, 스타트업에서의 ‘워크 앤 라이프’에 대해 궁금해한다. 사실 스타트업은 힘들다. 90% 이상의 스타트업은 망한다고 보는게 맞다. 또 스타트업에서 초기 일과 삶의 균형은 정말 어렵다 뿐만 아니라 금전적 보상도 옆으로 밀어둬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망한다는 건 비지니스가 실패하는 것이지 몸 담았던 개인은 두가지 면에서 성공을 경험할 수 있다.
우선 스타트업에선 좋은 동료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크고, 중요한 기회는 사람을 통해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통해 계속해서 다음기회가 연결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를 들어, 나와 유다시티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유다시티헤븐’이라고 부르는 슬랙 채널에 모여 서로에게 문제가 생길 때 발 벗고 돕는다.
그리고 개인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스타트업은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압축시킨다. 어떤 문제를 새로운 도전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A급 플레이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얼리 스테이지’ 스타트업에서는 멋진 통나무집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회사가 ‘그로스 스테이’지 되게 되면 통나무집을 만들던 것을 언러닝하고 팀과 함께 빌딩을 잘 만드는 컴퓨터 역할을 학습하게 된다. 회사가 더 자라서 ‘스케일 스테이지’가 되면 이전의 상태를 또 언러닝하고 ‘팀 오브 팀’과 함께 도시 한 구역 전체를 디자인하는 법을 리러닝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압축적 성장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여러단계와 과정을 거쳐서 연속적으로 혁신을 계속 경험한 사람은 스타트업을 떠난 뒤에도 대우를 받는다.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에 대한 조언
산업군, 레벨, 직급, 스타트업 스테이지 각 단계를 변수라고 한다면, 이직할 때는 한 번에 하나의 변수만 바꾸는 등 변화의 숫자를 최소화 하는게 좋다.
그리고 닷컴버블과 위기를 거쳐 성장한 스타트업 선배 CEO가 해준 이야기인데, “머리를 숙이고 캐쉬 번 레이스 계속 낮게 유지하고 성공적인 제품과 고객에게 계속 집중하라. 나중에 시장이 좋아졌을 때 지나온 경기 침체 기간에 감사할 수 있는 딱 한 가지는 경쟁회사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말해 주더라.
한 장으로 설명하는 실리콘밸리에서의 9년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이 한 장의 슬라이드가 나의 실리콘밸리 9년을 보여준다. ‘X축’이 실리콘밸리에서의 9년을 나타낸다면, ‘y축’은 연봉이나 성장이 아니라 ‘내 삶의 만족도’ 또는 ‘행복도’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지금 직장과 커리어 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온라인 교육회사 코세라 창업자이자 스탠포드 교수인 앤드루 응의 카홋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현재 여러분이 하는 일이 정말 성공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돕게 될까요? 그렇지 않다면 다른일을 계속 찾아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 한 삶을 살게 될겁니다.”
한편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은 24일까지 이어진다. 23, 24일 양일간 진행되는 ‘창업가 세션’에는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 이근우 진에딧 대표, 곽성복 플릿업 대표, 이승준 어메이즈VR 대표, 이주환 스윗 대표, 김봉수 링크다인 로보틱스 대표, 허인영 밀리뱃 대표 등 미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 대표들이 자신의 창업기를 들려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