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난 그 사람, 진짜 사람일까? ‘디지털 휴먼’일까?
인공지능과 인간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her>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 <her>의 여주인공 ‘사만다’는 인공지능 운영체제(OS)이다. 사만다의 목소리 연기는 스칼렛 요한슨이 했다. 남주인공 테오도르는 인공지능인 사만다와 대화하고, 감정을 나누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 섬세하면서도 허스키한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를 듣다보면(물론 그녀는 인공지능이지만)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테오도르가 볼 수 있는 사만다의 모습은 이랬다.
그렇다. 사만다는 사실 ‘모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테오도르가 대면한 사만다는 ‘보이스봇(voicebot)’에 가까웠다.
사만다가 보이스봇이 아닌 ‘디지털 휴먼’이라면, 사만다는 이런 모습일 수 있다. 안타깝지만, 그녀를 만질 수는 없다. 그녀의 모습은 디지털 세계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녀와 마주보고, 그녀의 표정, 눈빛, 시선, 몸짓을 느끼며 더욱 가깝게 소통할 수 있다. 이러한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깊은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디지털 휴먼은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간이다. 90년대에 우리에게 친숙한 사이버 가수 아담이 있었지만, 현재의 디지털 휴먼은 아담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현재의 CG(computer graphics) 기술은 거의 완벽하게 인간을 묘사해낼 수 있다. 인간의 표정, 목소리 톤, 입모양까지 어색하지 않게 흉내낼 수 있다. 기술이 더욱 고도화될 미래에는 실제 인간과 디지털 휴먼을 구분해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미 유명한 디지털 휴먼으로 아이피 소프트(IP Soft)가 개발한 ‘아멜리아(AMELIA)’가 있다. 앞서 보이스봇을 얘기했는데, 아멜리아는 엔터프라이즈용으로, 아이피 소프트는 챗봇(chatbot)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아멜리아를 ‘Conversational AI’로 소개하고 있다. 아멜리아를 활용하면, 깊은 상호작용으로 최선의 사용자 경험과 깊은 관계(connections) 및 관여(engagement)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멜리아의 뇌는 일화 기억(episodic memory), 의미 기억(semantic memory), 감정 기억(affective memory), 절차 기억(process memory)을 보유하고 있어서, ‘가장 인간적인 인공지능(Most Human AI)’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삼성에서도 CES 2020에서 디지털 휴먼 ‘네온(NEON)’을 선보인바 있다. Samsung Research America 산하의 스타 랩(STAR Lab)이 진행 중인 AI 프로젝트이다. 삼성에서는 ‘인공 인간(Artificial Human)’이라고 네온을 소개했다. 네온은 Amelia와 달리 다양한 개성을 갖춘 여러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아바타를 꾸미는 것처럼 키, 몸무게, 피부색, 나이, 목소리 등을 다양하게 갖출 수 있다. 네온은 코어 R3 기술과 스펙트라(Spectra) 기술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코어 R3는 현실(reality), 실시간(real time), 즉답(responsive)으로 외형적인 인간다움을 위한 기술을 의미한다. 그만큼 인간과 흡사하게 신속하고 생동감있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펙트라는 지능, 학습, 감정, 기억과 같은 뇌 기능을 담당한다.
소울 머신즈(Soul Machines)는 영화 아바타와 반지의 제왕 등의 특수 효과를 연출한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작년에 이미 50M 달러가 넘는 시리즈 B 투자를 받았다. 그들은 특허받은 디지털 뇌(Digital Brain) 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 인간(Digital People)’을 만든다. 소울 머신즈는 헬스케어, 리테일, 금융, 공공, 교육, 소비재, 테크,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부동산, 콜센터 등 다양한 인더스트리를 디지털 인간의 타겟으로 하고 있다. 디지털 인간은 디지털 디엔에이 스튜디오(Digital DNA Studio)를 통해서 기업이 원하는 고객 경험과 브랜드 경험에 따라 디자인된 CGI(computer-generated imagery)를 갖춘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SK-II에서 스킨 케어 어드바이저로 활약한 ‘Yumi’가 있다. Yumi는 12가지의 언어로 소통 가능하고, 고객이 원할 때 언제든지(24/7) 대화할 수 있다.
UNEEQ는 9명이나 되는 디지털 휴먼을 보유하고 있다. 9명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커스텀 디지털 휴먼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미 IBM, 보다폰, BMW, 아마존 웹 서비스(AWS), 딜로이트 등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그들은 디지털 버전의 아인슈타인을 만들기도 했다. UNEEQ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디지털 아인슈타인과 무료로 대화할 수 있다. 디지털 아인슈타인에게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생전의 아인슈타인의 얼굴과 목소리로 친절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휴먼을 만드는 국내 중소기업으로는 마인즈랩이 있다.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에서 AA 등급과 A 등급을 획득하고, IPO를 앞두고 있을만큼 기술력이 강한 기업이다. 마인즈랩은 인공지능 인간(AI Human) M1을 만드는데, 이를 사고 팔 수 있는 온라인 스토어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M1은 아바타로 복제된 인간의 이미지, 목소리 톤과 속도, 발음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립싱크 아바타(Lip Sync Avatar)와 얼굴 교체(Face-to-Face Translation) 기술이 중심이다. 마인즈랩의 온라인 스토어를 이용하면, 원하는 아바타 모델을 선택하고, 뉴스, 강의, 발표 등에 필요한 스크립트를 입력하여, 짧은 시간에 손쉽게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을 복제한 인공지능 인간을 만들어서 온라인 스토어에 올릴 수 있다.
디지털 휴먼은 ‘휴머노이드(humanoid)’와도 다르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형태를 모방한 로봇을 의미한다. 휴머노이드는 실체를 갖추고 있어 비디지털 세계에서도 존재할 수 있지만, 디지털 휴먼은 디지털 세계에서만 존재한다. 파쿠르를 뽐내는 보스톤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아틀라스(Atlas), 매장 접객 도우미로 활약하고 있는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의 페퍼(Pepper) 등의 훌륭한 휴머노이드가 있지만, 우리가 만족할 수준의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의 개발은 아직 멀기만 하다.
그에 반해, 디지털 휴먼은 이미 우리의 삶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비대면 접촉이 확산되고 언택트 사회가 일반화되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디지털 세계에서 원격으로 접촉하고 상호작용하는데 익숙해졌다.
가까운 미래에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실시간으로 내 질문에 답해준 그 사람, 줌을 이용한 원격 회의에서 나와 함께 회의했던 그 사람, 홈트레이닝 플랫폼에서 정확한 운동 자세를 잡아주고 교정해준 그 사람, 오늘의 날씨를 미소와 함께 예보해준 기상 캐스터 그 사람 등 이제 디지털을 통해서 만나는 그 사람이 진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메타버스의 시대가 오면, 메타버스 안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사람은 현실 세계의 누군가를 대신하는 아바타일 수도 있지만, 가상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디지털 휴먼일 수도 있다. 로블록스(Roblox)의 레고처럼 생긴 아바타가 아니라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이나 오라클처럼 인간의 모습으로 말이다. 누가 알까? 메타버스에서 당근 거래를 한 상대방이 실제 사람인지 아니면 디지털 휴먼인지.
새로운 인류, 디지털 휴먼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원문 : 당신이 만난 그 사람, 진짜 사람일까? ‘디지털 휴먼’일까?
저자소개 : 김성현 BLT 파트너 변리사는 NIPA, IITP, KISA, KOCCA, 창업진흥원,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전문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공지능, IoT, 클라우드 컴퓨팅, 차세대 보안, 블록체인, 스마트 디바이스 등의 디지털 기술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