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91] “2014년은 세계 속의 플리토가 되어 있을 것!” 새우잡이 이정수 대표
먼저 대표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플리토 이정수입니다. 저는 82년생이고 외국에서 태어났는데요. 쿠웨이트 4년, 미국 2년, 영국 3년, 사우디아라비아 7년, 중학교 2학년 까지 마친 후 한국으로 왔습니다. 중학교 졸업 뒤 대원외고로 진학했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쳤습니다.
2007년에 집단지성 번역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 2009년에 SK 텔레콤의 한 임원분의 제안이 있었어요.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이런 걸 하게 해주겠다’ 하신 거지요. 지금이야 투자가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SK로 입사했고,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했습니다. 퇴근하면 사내벤처로 기존 프로젝트를 진행 했고요. 그런데 회사 내부사정으로 프로젝트를 지속하기 어려워졌어요. 공중분해될 상황에 직면한 거지요. 그래서 퇴사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하던 세 명이 나와 플리토를 만들게 됐습니다.
창업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집단지성 번역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나요?
SK에서 투자자로 있을 때도 느꼈지만, 스토리가 있는 사업이 참 재밌는 것 같아요. 제 경우 외국에서 오래 살면서 아랍어, 프랑스어, 영어 등 여러 언어에 많이 노출돼 있었습니다. 언어를 오래 배우기도 했고, 관심도 있었어요. 대학 때는 친구들이 영어 관련 과제나 프로젝트가 있으면 다 저에게 맡기더라고요. 해주면 점심을 사주거나 저녁을 사주곤 했죠.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건 비싸지만 저한테 의뢰하면 저녁 한 끼면 되는 거잖아요(웃음). 그런데 곰곰히 살펴보니 언어를 잘하는 사람이 참 많은 거예요.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에 대한 리워드는 못 만들고 있는 상태라고 봤어요.
그러다 번역의뢰하는 친구들을 일일이 만나서 일을 받기가 힘들어서 서버를 하나 만들었어요. 번역의뢰 과정을 간소화 시킨건데요. 어느 언어에서 어느 언어로 해달라고 요구 하면 제 주변에 할 줄 아는 친구들을 강사처럼 리스트로 넣어두고 연결시키는 방식이었죠. 고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진행도 했고요. 당시 제가 학생회 소속이었는데, 학생회 게시판을 타고 서비스가 많이 퍼졌었어요. 그때 보니 번역을 하는 사람에 비해 요청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무료로 번역을 잘 해줄 컨텐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여행정보 제공도 동기부여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어요. 한국 사람이 외국인에게 한국 정보를 알려줄 때 보상이 크지 않아도 지역에 대한 애착 때문에 많이 해주더라고요. 그렇게 여행 컨텐츠 중심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했죠.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아니시군요? 페이스북 프로필을 봐도 플리토 대표가 아니라 ‘새우잡이’로 되어 있더군요.
저는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고, 지금도 없어요(웃음). SK 다닐 때 작성했던 제 기획서는 지금 찾아봐도 네이버 카페부터 해서 다 올라와 있어요. 플리토에 대한 정확한 기획서가 2009년도에 나왔는데 지금까지 변한 게 없어요. 유일하게 변한 것은 매개체가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진 것 뿐이에요. 이 사업은 굳이 제가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해서 활성화 시켜주면 행복할 것 같았어요. 내가 생각했던 게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는 만족을 느끼고 싶었어요. 그게 누구 이름으로 나가든 상관없었어요. 그런데 다들 관심이 없더라고요(웃음). 온라인에 그렇게 뿌려도 반응이 없었어요. 이게 정말 안 되는 건지, 사람들이 모르는 건지… 그래서 ‘늦기 전에 내가 해보자’가 된 거죠.
사실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이 노정석 대표(현 파이브락스 CSO)에요. 노대표와는 2010년부터 계속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노대표도 SK텔레콤 출신이고 지인이 노대표와 친해 상담을 많이 하게 됐어요. 노대표가 저에게 이런말을 했어요. ‘이대표는 비겁한 사람이다. 이대표 같은 사람 잘 안다. 겉으로는 이것 만들고 싶다 하면서 남들한테 위로받을 줄만 알지 행동으론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는 비겁한 사람이다. 1년 뒤에도 이대표가 여기서 일하고 있으면 이대표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겠다.’ 라고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굉장히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던 기억이 나요. ‘임원께서 저를 되게 좋아하시고… 떠나기엔 SK분들이 잘해주시고… 내부에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고…’ 뭐 이런 거였어요(웃음). 그랬더니 노대표가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건데 마음이 없으니까 안하는 거다. 내 앞에 와서 창업 하겠다는 말 하지마라’ 하길래 바로 퇴사했죠(웃음). 겸사겸사 테크스타스와 타이밍도 잘 맞았고요.
노정석 CSO가 등을 떠민거군요(웃음)? 그럼 함께 플리토를 만든 분들끼리는 처음부터 의기투합했나요? 여러 현실적 상황들로 고민했을 법 한데요.
당시 팀이 해체 됐을 때 한 분이 바로 퇴사 했고, 저희 셋도 바로 그만 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퇴사한다고 일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1년을 기다렸어요. 그동안 제가 세팅을 어느 정도 해놓고요. 1년 뒤에 이제 어느정도 세팅이 되서 타이밍이 되었는데 그 사이에 두 분이 결혼을 하신 거예요(웃음). 퇴사를 종용할 상황이 아니어서 저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책임 져야 할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좋은 개발자만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이분들이 큰 결심을 해주셨어요. ‘우리가 개발 했는데 왜 다른 개발자를 쓰려고 하느냐, 우리가 나오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두 분 모두 장인을 찾아가 허락을 구했다고 하더라고요. 둘 다 부모보다 장인이 중요한 시점이어서요(웃음).
팀의 첫 활동이 스프링보드였나요?
맞아요. 스프링보드가 테크스타스의 자회사인데요. 저희 경우는 스프링보드에 선정이 됐고 가서는 테크스타스로 변경됐습니다. 아시아 회사 중 인큐베이팅 받은 곳이 우리가 처음인 걸로 알고 있어요. 당시 인터뷰를 하려면 전부 영국으로 가야 했어요. 하지만 저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고, 체제비용이 한두 푼 드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화상으로 대신 하겠다고 제안 했지요. 그쪽에서는 절대로 안 된다 했고요. 다른 팀들은 다 와서 경합을 하는데, 너희 팀만 화상으로 한다는 건 안 된다는 거였지요. 참석하지 않으면 떨어지는 거여서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면접보기 이틀 전에 화상으로 참여 하라고 연락이 왔고 실제로 참가팀들 중 유일하게 저희만 화상으로 인터뷰가 진행됐어요.
주최측이 결정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시아권 참가팀을 하나 넣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지금은 친해진 당시 담당자인 존의 말로는 아시아에서 지원한 회사도 많이 없는 상황이었고, 저희팀이 하고 싶다는 열정이 강하게 느껴져 그걸 믿어보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한 마디로 운 좋게 걸린 거죠(웃음).
스프링보드 당시의 포스팅이 무척 재미 있던데요. 소개해주실만한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어우. 많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영국이 물가가 정말 비싸잖아요? 그래서 당시 저희가 거주한 곳이 변두리 외곽지역이었어요. 집주인도 외국 이민자였는데요. 보일러비가 너무 나온다고 보일러를 안 틀어주는 거예요. 11월, 12월이면 영국이 되게 춥거든요. 새벽 5시 정도 되면 체온이 떨어져서 기침하면서 깨곤 했어요. 왜 영화 보면 영국의 가난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두꺼운 이불 덮고 병 걸려 가지고 있는 그 분위기요(웃음).
거기다 밥값이 너무 비싼 거예요. 서브웨이 샌드위치가 있는데 매일 점심을 거기서 먹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먹었죠. 하지만 일반 식당에서 밥값이 2만원씩 나오다보니 서브웨이로 고정했어요. 서브웨이 샌드위치가 5,500원인데, 그게 제일 싼 거였거든요. 나중에는 시간도 아끼려고 가서 먹는 게 아니라 한 명이 샌드위치 사오면 일하면서 먹고 그랬어요. 맛보다는 살기 위해 먹은 거였죠.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어요(웃음). 여기는 한국 분들이 많아서 서브웨이는 질려 하시더라고요. 그 옆에 한솥도시락 있거든요(웃음). 한 명이 배달해오고 나머진 일하면서 도시락을 매일 먹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점심때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사실 직원들의 가장 큰 행복이 점심시간이라고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낭비되는 시간 같아서 10-15분 정도로 줄이고 있어요.
직원 분들은 잘 따라오시나요? 즐거운 시간이 줄어드는 건데?
대신에 퇴근을 일찍 합니다. 5시 이후는 마음대로 가게 해요. 퇴근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원하는 데 가서 해도 되고요. 10시부터 5시까지만 같이 일하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다들 책임감이 강해서 퇴근할 때 노트북을 가지고 가더라고요. ‘오늘 약속 있어서 일찍 가겠습니다’가 아니라 ‘컴퓨터 오래 보다 보니까 눈이 침침해서 퇴근하고 다른 곳에 가서 하겠습니다’ 이러고 가세요.
현재 팀원이 12명, 스타트업 중에서는 꽤 많은 숫자인데요. 구성원의 역할은 어떻게 분배되어 있나요?
개발자가 일곱 분, 기획 및 마케팅이 세 분, 디자이너가 두 분. 이렇게 구성돼있습니다.
플리토만의 경영 철학이나 기업문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입사 할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해요. ‘당신이 여기서 평생 일할 거라 생각하지 않고 우리 회사는 당장 내일도 망할 수 있는 회사다. 하지만 당신이 여기 들어오기 전과 들어오고 나서는 분명 다를 거다. 여기 오기 전에 100만큼의 보상이 주어졌다면 이후에는 1,000 이상의 보상이 주어지도록 해주겠다’ 라고요. 또한 대부분 IT회사가 그렇듯 자유분방하고, 호칭도 따로 없고, 출퇴근 시간도 자유스럽습니다. 팀원 모두 하고 싶은 꿈이 있는 친구들이에요. 개인적으로 그 부분을 굉장히 높이 삽니다. 저희 팀원은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어디에서나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직원들의 불만이나 의견 등을 조율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저도 화를 낼 때가 있어요(웃음). 그럴때 팀원들이 앞에서는 들어주는데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이메일이나 라인 메세지를 보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말한 것 중에 이 부분은 잘못 됐다’ 라든가, ‘다음에는 그런 이야기 하시려면 아침보다 점심을 활용해주면 좋겠다’ 라든가요(웃음). 평소 분위기가 그래요. 사무실을 보면 아시겠지만 제 자리가 제일 작고 모니터도 저만 없어요. 외부손님이 오셔서 저한테 사장님 어디 있느냐고 묻기도 하고요(웃음).
대신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조금은 독재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전체적 분위기나 생활에서는 평등하게 하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다르게 해요. 스타트업에서 기획이 많아지게 되면 배가 산으로 가게 되거든요. 대기업과는 다르게 우리는 빨리 진행해야 하는 생태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한 명이 100% 책임지고 추진하는게 맞다고 봐요. 대신 그렇게 하려면 제가 그 분들 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공부해왔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야 하지요.
플리토에게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결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웃음).
처음에 사업 관련 피드백을 받았던 게 ‘집단지성 좋은데 가장 큰 포인트는 처음에 유저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당신은 글로벌 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데 그 부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였어요.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돈도 없었고요(웃음). 유일하게 했던 건, 트위터에 들어가서 싸이의 글을 다른 언어로 번역을 했어요. 그리고 다시 싸이에게 태깅해서 멘션을 보냈고요. 당연히 반응이 없죠. 저 같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어요. 그렇게 싸이한테 보내고 빅뱅한테 보내고 슈퍼주니어한테 보내고, 기획하는 시간 외엔 그것만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리트윗을 해주더라고요. 리트윗을 해주면 글 뒤에 저희 링크가 붙어서 나오잖아요. 번역이 70% 정도만 돼있고 나머진 링크로 들어 와서 봐야 하거든요. 이후로 유저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그러다 연예기획사에서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고, 연예인을 통해 노출되는 횟수가 많아졌어요. 연예인의 글을 번역해주고 번역에 대한 리워드를 기획사에서 받고요. JYP와는 메인으로 일하고 있고 SM, YG와도 함께 일 하고 있습니다.
항간에 오해가 생긴 건 저희가 ‘한류 트위터 번역 사이트’라고 소문이 난 적 있어요. 저흰 외국에 있어서 인터뷰를 한 적도 없는데 기사에는 그렇게 나갔더라고요. 그래서 플리토가 이후에 수상을 하게되면 종종 ‘한류 트위터 번역 업체’가 수상을 했다고 미디어에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게 뭐가 대단해서 수상을 하느냐’고 의아하게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플리토는 ‘한류 트위터 번역’이 절대 아니에요. 그건 너무 작잖아요(웃음). 저흰 번역 플랫폼을 하고 있고, 처음에 그렇게 인식이 됐던 것은 SNS에서 한류 트위터 번역을 스스로 시작해서 그런 거에요. 지금은 한류의 비중 무척 낮아요. 하지만 여러 한류 가수들이 저희 서비스를 쓰고 있지요.
플리토는 국내에서 홍보나 마케팅을 거의 안하시는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 확보가 꾸준히 되고 있는데요?
자체적으로 마케팅이나 홍보는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IT 쪽은 서비스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를 확인해 보려면 트위터만 검색해보면 되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지, 실제 하고 있는지 보면 되니까요. 이음이나 비트윈을 쳐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멘션을 하고 있죠. 플리토도 쳐보면 상당히 많습니다. 유저 자체가 마케터가 되어 주고 있어요.
이런 거예요. 슈퍼주니어 최시원이 글을 쓰면 자기 트위터에 공유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그런데 인도네시아 사람이 한국어로 공유를 하면 볼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때 저희 서비스를 통하면 인도네시아어로 공유할 수 있고, 그 뒤에 저희 링크가 달리잖아요? 그것 자체가 저희에겐 마케팅이 되고 있어요.
얼마 전 종영한 ‘황금의 펜타곤’에서 우승하셨는데요. 공중파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노출되는게 쉬운일은 아니잖아요? 참가 소감이라면요?
황금의 펜타곤이 ‘응답하라 1994’와 같은 시간에 했어요. ‘왕가네 식구들’도 동일 타임이었고요. 실제로 저희를 본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웃음).
처음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는, 투자자 쪽에서도 반대했고 저도 안 나간다고 했어요. 일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나가게 된 이유는 B2C 마켓에 대한 마케팅을 한 번도 안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에요. 방송에 나가면 무료로 몇 억짜리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고요. 처음에 전파를 탔을 때 서버가 40분간 다운이 됐어요. 실시간 검색 1위에 올랐고, 일일 가입자 수가 한국에서만 2만 명이 넘더군요. 아무리 시청률이 낮아도 효과가 있더라고요.
플리토의 수익 모델은 무엇인가요?
번역 요청할 때 번역 포인트를 사야 되는데요. 그때 수수료를 받고 있습니다. 2014년 1월 기준 일일 거래량이 300만 원 정도 되요. 사업하는 분들도 많이 사용하시고 이메일 번역 요청도 많이 와요. 취업용 토익점수가 높은 거랑 이메일 쓰는 거랑 상관없잖아요(웃음)?
지금까지 플리토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을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첫째로 팀원들의 힘이 가장 컸죠. 정말 고맙게 여기고 있어요. 그리고 초기 투자자였던 DSC 인베스트먼트의 힘이 엄청 났어요. DSC에서 IR하고 2분 만에 투자가 결정됐어요. IR하는 와중에 대표님이 중간에 발표 끊고 얼마 필요 하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책에만 나오는 에피소드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는군요(웃음). DSC대표님이 플리토에 대해 잘 알고 계셨던 건가요?
아니요, 전혀 모르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해주셨죠. 또한 IR 한 뒤 그 다음 주가 영국 가는 일정이었는데, 일주일 만에 투자가 진행이 됐어요. 저희는 영국갈 준비로 눈코뜰새가 없었기 때문에 DSC 담당자 분이 투자관련 준비를 다 준비해주시고요. 조율이라고 할 것도 없이 저희 쪽에 유리하게 진행해 주셨죠. 당시 인터뷰 할 때는 자신감에 넘쳐서 ‘저흰 걱정 없었어요’라고 했는데요. 사실은 두려웠어요. 시쳇말로 ‘쫀다’고 하죠(웃음). 잠도 안 왔고요. 어떤 기분이냐면, 알래스카에 아무것도 안입은채 던져진 기분이었죠. 그것도 그냥 던져 놓은 게 아니라 사람들 시선이 많은 곳에 물까지 끼얹어져진 느낌이었죠. 그때 DSC가 따뜻한 패딩 점퍼를 입혀준 거죠. 그걸 입혀줬기 때문에 저희가 조금 더 편하게 길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알래스카에서 따뜻한 땅까지 방향을 찾아 가는 건 저희가 하는 거지만요.
현 플리토의 고민이나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사무실이에요(웃음). 인원이 꽉 차서 과밀화되고 있어요. 전세 사무실을 좀 구하고 싶은데, 강남 쪽에 사무실이 7개 밖에 안 나와 있더라고요(웃음).
서비스 측면에서는, 유저들이 늘어나면서 내부 퀄리티를 구축하는 게 가장 큰 숙제에요. 플리토는 유저가 3개 그룹으로 나뉘어져요. 번역 하려는 사람, 번역을 요청하는 사람, 이도저도 아니고 번역된 걸 보고 싶은 사람, 물론 교집합도 있고요. 번역을 요청하는 사람과 보고 싶은 사람도 잠재적으로 번역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맞는 컨텐츠를 제공해 번역을 하고 싶게끔 만드는 게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습니다. 번역률은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정확한’ 번역률인 거잖아요? 유저확보 보다는 ‘정확도가 높은 번역가 확보’가 더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어요.
해결할 방향은 잡았나요?
게임을 넣어 봤어요. 게임을 통해 포인트를 얻고 번역을 요청할 수 있어요. 게임도 단어 뜻을 맞추는 식으로 학습 효과를 가미했습니다. 번역에 대한 리워드 범위도 넓혔어요. 한 문장을 정확도에 따라 오십 원에 할 수도 만 원에 할 수도 있어요. 그 시스템을 구축했죠.
교육시장에서도 러브콜이 있을 법한데요?
실제로 쓰고 있는 학교도 여럿 있어요.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 학교의 일본어 수업에서 플리토를 활용하고 있는데요. 저희 쪽에서 번역을 요청하면 그 학교 학생들에게만 뿌려지고, 학생들에게는 그게 숙제가 되는 거에요. 학생들은 댓글로 숙제를 제출하는거죠. 학생이 50명 있으면 한 문장 당 50개의 번역이 생기는 거예요. 또 다른 친구가 한 번역을 보고 수정해 줄 수가 있기에 번역이 미숙한 학생들이 번역했다고 해도 끝에는 정확한 번역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뿌듯한 경험을 하셨을듯 싶은데요?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큰 꿈을 가지고 시작하잖아요. 자려고 누워서 혼자 상상하면서 웃고요. 잘 되서 대통령도 만나고 그런 상상 말이에요(웃음). 처음 플리토는 오피스텔에서 시작했는데, 오피스텔 뒤에다가 유성펜으로 ‘플리토’라 적고 멤버들이랑 찍은 사진이 있어요. 그때 소주 한 잔 하면서 말했던 게, ‘나중에는 사무실도 생기고, 투자도 받고, 테크 크런치 대회도 나가고, 외국 사람들이 우리 서비스를 쓰고, 페이스북도 우리랑 하고 싶어 하고, 대통령도 초대해 줄거고…’ 뭐 이런 이야기를 떠들었는데요. 그게 지금 전부 현실이 됐어요. 나중에는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이 현실화 될까를 생각할때마다 설렘이 있어요. 물론 내일 당장 망할 수 있다는 긴장감도 있고요(웃음).
마지막으로 예비 스타트업이나 초기 스타트업에게 하고 싶은 말씀, 조언이 있다면요?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창업 자체가 목적이 되지 말라는 것이요. IT는 창업이 쉽다고 생각해서 막 시작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너무 안타까워요. 꿈이 사장인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나중에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스토리라인이 나오는 거죠. 친구들이 요즘 뭐하냐고 물으면 ‘응, 나 사업할거야’. 이렇게 말 하고 페이스북에 지위나 직책을 무슨무슨 대표로 바꿔요. 다음에 만날 때 친구가 또 물어보겠죠? ‘너 사업한다더니 잘 돼?’ 없어도 안 된다고 말 못하잖아요? 사업하고 싶은 사람 특징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아, 우리 곧 투자 받을 거야.’ 뭐 이런 식으로 말을 하게 되고. 또 한 달 뒤에 ‘투자 받는다며? 어떻게 됐어?’ 하면 ‘투자는 받았는데 대외비라서 말 못하고 있는 거야.’ 뭐 이런 식이요.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점점 커지다 보면 결국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꾼이 돼요.
절대 창업이 목적이 되면 안돼요. 자신의 꿈에 맞는 적합한 곳을 찾아 가야해요. 저는 처음에는 그곳이 대기업이라 생각했고, 거기서 너무나 많은 걸 배워 나왔어요. 대기업에 다녔기 때문에 창업이 훨씬 수월한 것도 있었고요. 사소한 것으로는, ‘직원에게 인센티브는 어떻게 줄 것인가’ ‘휴가는 어떻게 줄 것인가’ 이런 것에서 부터 ‘근무한지 한 달 지나면 연차가 1일씩 늘어나는 것’ 까지요. 일반 학생 창업자들은 이런 개념이 없이 느낌으로 줘요. ‘너 잘했으니까 한 달 휴가’ 이러면 형평성이 떨어지기에 다른 직원도 다 한 달씩 줘야 돼요. 그럼 망하는 거지요
두 번째는 아무리 사소한 것도 거짓말 안 했으면 좋겠어요. 업계가 참 좁아서 한 명한테 잘못 찍히면 투자 못 받고 계약도 못 받아요. 정말 기본적인 겁니다. 사업은 아들 둔 엄마 마음 같은 거에요. 엄마들 대부분이 아들에 대해 은근히 과대포장하잖아요? 요만큼 한 걸 이만큼 했다고요. 사업가에겐 자기 사업이 자식 같으니까 그럴 수 있는데요.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건 너무 쉽다는 거에요. 속일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 했다가 다시는 사업 못하게 될 수 있어요.
오랜 시간 정말 솔직한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플리토의 건승을 빕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