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수출 꺾인 속사정
2년 만에 수출 꺾인 속사정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이 ‘3고(高) 위기’에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던 수출마저 꺾였습니다. 지난달 수출액 규모가 9월보다 감소한 건데요. 이렇게 월간 수출액이 전달 대비 줄어든 건 2년 만에 처음입니다(🔗관련 기사). 반면 수입액은 계속 늘어 무역수지 적자는 7개월 연속 이어졌습니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이후 25년 만입니다.
그런데, ‘달러 환율 1400원’이 새 표준이 됐을 만큼 환율은 엄청 올랐는데, 왜 수출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 하는 걸까요? 환율이 오르면 수입 물가는 올라도 수출품 가격이 낮아져 수출에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왜 수출이 무너지고 있을까요?’
강종구
한국은행 국장
“수출 마이너스? 이유 4가지”
1. 경기 둔화 여파 : 각국 금리 인상에 경기 부진이 이어졌죠. 덩달아 한국 제품 수요도 줄었습니다. 우리의 주요 수출품은 전자 제품 등 제조업 상품인데요. 생필품과 다르게 소득 수준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해외 경기 둔화에 제조업 수출이 크게 감소할 수 있습니다.
2. 원화 약세? 달러 제외하면 글쎄 : 미국 달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화폐가 약세입니다. 즉, 원화만 약세가 아니란 거죠. 그럼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로는 수출이 유리해질 게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수출 라이벌인 일본 엔화는 원화보다 가치가 더 떨어졌죠. 차라리 우리보단 일본의 수출 환경이 더 유리한 겁니다.
3. J커브 효과! : 경제학에는 J커브 효과란 개념이 있습니다. 환율이 오르는 초기엔 오히려 무역수지가 나빠지다, 일정 시간이 지나서야 무역수지가 좋아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걸 그래프로 그리면 영어 알파벳 J 모양과 비슷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어요. 현재 한국도 J커브 효과가 진행 중인 걸 수 있어요. 근거가 없는 게 아닙니다.
만약 원·달러 환율이 1달러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상승하면, 100달러짜리 물건을 팔 때 수출 업자가 받는 돈이 10만원에서 15만원으로 오르죠. 그럼 수출 업자는 달러로 나타내는 물건 가격을 좀 낮출 여력이 생깁니다. 100달러에서 90달러쯤 내린다고 해도 여전히 13만5000원을 버니까 기존 10만원보단 더 많이 벌게 되는 거죠. 헌데 가격은 내렸으니 물건을 사려는 수요는 더 늘겠죠? 그럼 수출 업자가 기대할 수익도 훨씬 커집니다.
문제는 이렇게 가격을 깎아줬는데도 판매량이 즉각 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가격 인하 소식이 알려지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뭐 여러 이유가 있겠죠. 이 기간엔 오히려 총 판매 금액이 감소하겠죠. 가격을 깎았으니까요. 이게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가 줄었어요. 그건 다른 나라 수출 업자들이 달러 표시 가격을 깎아줬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우리나라 업체들도 마찬가지였겠죠.
4. 낮아진 가격 탄력성 : 방금 전 말씀 드린 대로 수출 업자가 가격을 낮췄을 때 총 수출액이 증가하려면 확실한 조건 하나가 붙습니다. 바로 가격 하락으로 수요가 크게 증가해야 한다는 건데요. 이를 경제학 개념으로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라고 합니다.
과거엔 한국 수출품의 가격 탄력성이 높았습니다. 질보단 가격의 경쟁력을 추구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해외 소비자도 한국산 제품에 가격보다 품질을 기대하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즉, 가격 탄력성이 낮아져버린 겁니다. 때문에 가격이 낮아져도 우리 수출품 수요가 크게 안 늘어날 수 있습니다.
“새 성장 모델 필요한 시기”
우리 수출이 부진한 원인은 3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가 <경기 요인>입니다. 이건 앞의 강 국장도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두번째가 <구조적 요인>이에요. 2008년 이후 각국에서 자국우선주의가 나타났습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국제 무역에 개입하기 시작한 건데요. 이때부터 점차 세계 무역량이 감소 추세가 됐습니다. 한국 수출 증가세도 덩달아 확 줄었습니다. 세번째가 <정치적 요인>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한국의 수출 피해가 큽니다. 한국은 주로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데 여기에 타격이 생기는 거죠.
이 3가지 요인 중 <경기 요인>을 제외하면 어느 것도 단기간에 좋아지기 어렵습니다. 아예 새로운 경제 성장 모델을 구축해야 할 시기인 듯합니다. 우호적 국가들과 공조해 새 공급망을 빨리 구축하고, 중국을 떠나는 각국 기업·기관을 지리적으로 인접한 우리나라에 유치하는 게 하나의 대안이지 않을까요?
잘나가던 ‘미니 재건축’, 부동산 빙하기에 직격탄
부동산 호황기에 ‘손쉬운 미니 재건축’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던 가로주택 정비 사업. 그런데 주택 경기가 위축되자 여타 부동산 사업 중 이 사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단 소식입니다(🔗관련 기사). 당장 공사를 진행할 업체 선정부터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데요.
가로주택 정비 사업은 도로와 맞닿은 노후화된 저층 주거지 주택들을 헐고, 그 자리에 소규모 아파트를 짓는 정비 사업을 말합니다. (길가에 있는 주택이 대상이기 때문에 ‘가로’란 말이 붙었습니다.) 분양가 상한제 등 각종 규제가 없는 데다, 보통 10년이 걸리는 일반적 재건축 사업과 달리 3~4년밖에 걸리지 않아 인기가 높았습니다. 부동산 규제를 강화했던 이전 정부에서도 가로주택 정비 사업 규제만큼은 풀어주며 사업 진행에 탄력을 받았었는데요(🔗관련 기사).
요즘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비용은 늘어난 반면, 규모가 작아 수익성이 낮고 임대로 할당되는 단지 비중이 커 시공사들의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더구나 금리 인상으로 이주비를 마련해야할 조합원들의 대출 부담까지 커지고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가 소규모 사업장에 더 큰 피해 줘”
이 사업은 대규모 재개발에 비해 규모적 이점이 없다는 한계가 큽니다. 일반 분양 물량이 적기 때문에 시공사들은 공사비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윤을 더 챙기려 합니다. 가뜩이나 공공 분양 비중이 커 조합원들이 적은데, 그들이 상승한 공사비 부담을 떠맡아야 하죠. 금리 인상으로 조합원들의 이주비 부담마저 늘면 사업 후 수익은 더 줄어들 거고요.
그렇다고 진행되던 사업을 무조건 연기하기도 어렵습니다. 일반 재개발, 재건축이든 가로주택정비사업이든 사업은 일단 시작하면 비용이 생깁니다. 때문에 사업 기간을 단축해야 하는 거죠. 근데 지금은 사업이 지연되고만 있으니 문젭니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부동산 개발 시장의 자금 경색이 소규모이면서 수익성이 높지 않은 사업들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네요.
“용적률을 대폭 완화해주는 건 어떨까요?”
이 사업의 용적률을 완화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노후 주택을 개발하는 사회적인 효과는 생각보다 굉장히 큽니다. 대규모 재개발, 재건축이 아무 데서나 가능한 게 아니죠. 가로주택 정비 사업을 통해 몇몇 구역만 재개발이 돼도 노후 지역 주민들이 새 아파트에 입주할 가능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국가로서도 큰 돈 안 들이고 민간을 통해 낙후지 환경 개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 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기대하는 건 ‘투자 수익을 크게 얻어 보겠다!’보다는 ‘30년 이상 노후 주택을 벗어나 새 주택에서 살 수 있다!’는 것에 가까울 겁니다. 때문에 용적률을 대폭 상향해 조합원을 늘리면, 최근 불어난 비용도 더 분담할 수 있고 사업 진행에도 탄력이 생길 겁니다.
“마땅한 해결책 없어요”
당분간 해결책이 없어 보입니다. 현재로선 이 사업의 이해 관계자 어느 쪽도 득이 되지 않거든요. 그러니 해결책이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부동산 대출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자금 조달은 갈수록 어렵습니다. 공사비 상승은 무슨 수로 막을까요? 만약 사업장 규모가 크면 대형 건설사들이 높은 금리를 감당해서라도 자금 조달에 나설 텐데, 소규모 사업장이 대부분인 이 사업은 어떻게 상황을 타개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로 위 최대경 매니저님 말씀대로, 용적률을 조정해 분양 물량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대책은 맞을 겁니다. 하지만 길게 보면 토지와 주택 가격 상승이란 악순환을 낳을 수도 있죠. 결국 지금으로선 지자체별 조례를 통해 특별한 지원책을 마련하거나 당분간 사업을 중단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한공협의 상생안, 프롭테크 업계는 “못 믿어”
지난달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그 법안은 일명 ‘직방 금지법’이라 불렸는데요. ‘직방’ 같은 부동산 중개 플랫폼들이 기존 부동산 공인 중개 시장을 교란하니 이를 예방하겠다는 취지의 법안입니다. 공인중개사 단체인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 단체화하고 부동산 중개 플랫폼들을 이 협회에 의무 가입시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게 법안 골자입니다(🔗관련 기사).
플랫폼 업체들은 거세게 반발 중입니다. ‘제2의 타다 금지법’이랑 뭐가 다르냐는 것입니다. 국민 청원도 진행해 약 1만명 가까운 동의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공인중개사들은 수차례 고소·고발로 압박을 더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조만간 정부가 중재에 나서기로 했으나, 원내 분위기상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 실제 중재가 가능할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선수가 심판을 봐선 안 될 것 같습니다”
투명한 정보 공유와 경쟁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게 시장 경제죠. 헌데 어느 단체의 권한이 커지면 소비자 입장에선 기득권을 위한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합니다. 투박하게 말씀 드리면, 법은 사각링 안에서 권투 심판을 보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데 선수가 심판을 보면 그게 공정해질 수 있을까요? 법안 통과 전 충분한 논의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후엔 소비자 입장에서 이 법의 역할이 뭔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들여다볼 관심이 떨어지니까요.
원문 : 2년 만에 수출 꺾인 속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