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팀코리아’가 30조원에 이르는 체코 원자력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따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한전원자력연료,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로 구성된 민관합동 ‘팀코리아’가 체코의 수도 ‘프라하’ 인근 지역에 각각 1200㎿ 규모의 원전 2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1990년부터 근 30년간 대한민국의 수출을 이끌었던 반도체, 자동차, 선박에 이어 ‘원자력 발전소’가 우리나라의 새로운 수출 품목이 된다면, 미래의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원동력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60여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된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이 중 약 70기 정도는 우리나라의 민관합동체인 ‘팀코리아’가 수주할 실력과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본 각 국가별들은 ‘에너지 자립’에 대한 중요성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고, 소형 모듈식 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럽, 아시아 각국에서 원전기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한국, 일본, 러시아, 독일, 프랑스, 미국 정도의 국가가 원전수출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독일은 탈원전으로 갔고, 일본은 후쿠시마 지진으로, 러시아는 전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한국, 프랑스, 미국의 경쟁인 시장이다. 2022년 폴란드 원전 수주경쟁에서도 이 3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었다. 앞으로 원자력 발전 폐기물 처리기술이 발전하면서, 안전성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 산업으로 키워야 함은 당연하다. 특히, 이번 체코 원전 수출규모가 약 30조원에 이른다는 소식은 원전기술 수출이 얼마나 큰 수익을 창출하게 될지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들만 팀코리아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100년기업 ‘웨스팅하우스’도 팀코리아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번 체코 원전수주에서 웨스팅하우스는 프랑스 전력공사(EDF)와 함께 우리나라와 3각 경쟁을 벌인 기업인데 왜? 한전과 비슷한 프랑스 EDF와 달리, 민간기업인 웨스팅하우스는 독특한 비즈니스 전략을 자랑한다. 그것은 바로 ‘원전 특허전략’이다. 수천개의 특허로 무장한 웨스팅하우스는 이미 100년전부터 에디슨과 ‘커런트워(Current War, 교류와 직류에 관한 표준제안 경쟁)’를 겪으며 유지되온 기업이다. 개인으로서의 특허왕은 에디슨이었지만, 기업으로서는 웨스팅하우스가 당시에 더 많은 특허를 보유했다고 전해진다. 타인으로부터 특허 기술료, 라이선스비를 받아서 GE(제너럴일렉트릭)를 키워온 에디슨을 옆에서 보면서, 웨스팅하우스도 항상 비즈니스 중심에 IP전략을 품어왔다.
이와 같이 웨스팅하우스는 수만건의 특허를 보유해온 역사가 있고, 지금도 수백건의 원자력 발전소 건축 및 운영 기술 특허를 각 국가별로 진출시키며 글로벌 특허전략을 펼치고 있다. 도시바 계열사였던 2017년에 미국법원에 파산신청을 했었지만, 특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2009년에 한국이 유사이래 최초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 우리에게 기술료를 받아갔었고, 당시 웨스팅하우스의 주주인 도시바의 장비를 강매했다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원전인 고리원전 1호기를 만들고 우리에게 기술을 이전해준 회사가 바로 웨스팅하우스이다보니, 우리나라 원전 기술자 1세대들은 그들의 매뉴얼을 보고, 그들로부터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훌륭한 원자력발전 엔지니어들이 양성되었고 ‘국산화’는 성공하였지만, ‘원천특허’에서 벗어나려면 완전히 ‘다른 구조’의 원전을 만들어야한다. (일단 이름부터 바꾸자. 팀코리아의 APR1000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과 너무 유사하다.)
웨스팅하우스는 전 세계에 최소 52,472건 이상의 특허출원을 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중에는 심사과정에서 거절된 것도 있고, 등록 후 존속기간 만료에 의하여 소멸된 특허들도 있겠지만, 양적으로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기가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 촘촘하게 특허를 진입시켰다. 이정도로 세계 각국에 특허를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연간 수십억 내지 수백억원의 지식재산 비용이 소요된다. 최근 우리나라 언론에서 웨스팅하우스가 팀코리아에 ‘몽니’를 부린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단순치부할 것은 아니다. 이들은 스스로 오랫동안 개발해온 원자력발전 기술을 담은 IP에 막대한 ‘투자’를 한 것이고, 투자회수의 수단으로 ‘기술료’를 받아가려는 것이다.
모회사인 브룩필드도 125년 역사의 에너지 전문 금융회사다. 우리에게는 ‘여의도 IFC를 매입한 캐나다 회사’로 유명한 브룩필드는 단순한 사모펀드 회사가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분야에서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금융회사기 때문에 이번 체코 원전 프로젝트에서 팀코리아의 협상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웨스팅하우스의 실제 ‘시공능력’은 팀코리아나 프랑스 EDF보다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IP경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웨스팅하우스는 앞으로도 강력한 R&D 중심의 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발전소를 짓지 않고도 발전소로 돈만 번다니! 얼마나 좋은가? 인텔, 엔비디아 등 미국의 팹리스 반도체 기업이 실제로 반도체를 만들지는 않지만, 반도체 IP로 대부분의 돈을 버는 것처럼 말이다.
웨스팅하우스가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기술은 원자로 설계 기술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APR1000과 APR1400 원자로 설계가 자신들의 ‘시스템80’ 및 ‘시스템80+’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80’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 Combustion Engineering, Inc.)이 개발한 2세대 원자로 디자인인데, 2001년에 CE가 웨스팅하우스에 매각되면서, 웨스팅하우스의 대표적인 기술이 되었다. 지금은 CE의 이름으로 진행된 미국 특허출원 약 1200개의 대부분이 존속기간 만료로 소멸되었지만, 대부분이 원자로 설계에 관련된 것이고, 노하우 영역도 많아 보인다. 웨스팅하우스 측은 특허 뿐만 아니라, 공개되지 않은 도면 등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은 저작자 사후 70년까지 존속기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출원 후 20년까지가 최장인 특허보다 더 유리하게 주장될 수 있다. 팀코리아에서 이러한 지식재산권을 회피하려면 상당한 특허, IP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수출은 ‘물건만 잘 만든다고’ 되는게 아니다.
웨스팅하우스가 팀코리아에 제기하고 있는 ‘지식재산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국내외 기사에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다. 대부분의 특허소송들이 그러하듯, 소송이 진행되더라도 합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강의 내용들은 한국 특허청에서 운영하는 키프리스에서 검색하면 알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특정번호의 특허를 지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는데, 위 특허들을 보면, 원자력 발전소의 A부터 Z까지 폭 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키프리스 데이터를 보면, 웨스팅하우스는 1974년부터 2,000개가 넘는 특허출원을 한국에 진행해왔고, 지금도 202개의 한국 등록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중국, 프랑스도 웨스팅하우스와의 특허소송 끝에 합의를 하고 진행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기술 종속성이 높아졌고, 프로젝트를 수주해도 마진이 높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소식이 있다.
결국, 선진국의 R&D가 축적된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는 쉽지 않다. 팀코리아가 이러한 ‘특허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깊은 생각에 기반한 새로운 발명을 해야 한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다시금 느껴지는 요즘이다.
-원문 : 팀코리아, 특허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필자소개 : 특허법인 BLT 박기현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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