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업계에 계신 분들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용어로 플립(flip)이 있습니다. 저희 최앤리의 칼럼에서도 몇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플립이란 한국에서 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미국 진출을 위해 미국에 본사를 설립하고 기존의 한국 법인을 지사로 만드는 거래입니다. [한국 모회사 – 미국 자회사]의 구조를 [미국 모회사 – 한국 자회사]의 구조로 뒤집는다는 의미에서 플립이라고 하지요.
사실 플립이 반드시 미국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99.9%의 플립은 미국 Delaware 주에 모회사(Delaware C Corporation)를 설립하는 형태로 진행되므로 이하에서는 편의상 한국과 미국의 법인이 모자회사 관계에 놓이는 구조를 가지고 설명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플립을 하여 미국에서 회사를 운영하든, 처음부터 미국에서 사업을 했든, 이러한 회사들이 모종의 이유에서 한국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도 모회사 – 자회사 구조를 뒤집는다(flip)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위의 “오리지널” 플립과 구별하기 위해 역(逆)플립, 백(back)플립, 플립백 등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역플립을 왜 하는지, 그리고 추진할 때 고려할 사항이 무엇인지(장단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역플립을 왜 하나요?
먼저 플립을 왜 하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으로 플립을 할 때는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하는데, 첫 번째는 시장, 두 번째는 투자입니다. 즉, 회사의 주된 시장이 미국(또는 글로벌)이며, 미국의 벤처캐피탈(VC)로부터 더 많은 투자를 받으려고 할 때 본사를 미국에 두어야 하겠다는 니즈가 생기게 됩니다. 특히 이 중에서도 두 번째인 투자의 관점에서, 잠재적 투자자들의 요구가 있을 때 플립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의 VC들은 당연하지만 미국의 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며, 법률이나 제도가 다른 한국에 모회사를 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어떤 VC들은 자신의 본사(가령 실리콘밸리)로부터 일정 거리나 소요시간 이내에 위치한 회사들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회사가 처음부터 한국을 기반으로 하고, 시장도 한국이며, 투자도 한국 VC로부터 받는 경우 미국에 본사를 둘 이유가 없습니다. 최초에 회사를 미국에 설립할 때는 향후 투자와 세일즈를 모두 미국에서 할 것이라고 기대하였지만, 막상 미국에 가 보니 생각보다 녹록치 않고, 여전히 매출은 한국에서 대부분 발생하며, 한국의 투자자들도 다시 한국으로 올 것을 요구하는 경우 한국으로의 귀환, 즉 역플립을 고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플립의 장점
역플립의 장점은 플립의 단점을 거꾸로 생각하면 됩니다.
가장 큰 장점은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 환경, 문화가 갖추어진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인 창업가가, 특히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지 못할 경우,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 플립을 고려할 때는 적어도 “미국 물 먹은” 믿을 수 있는 동업자가 꼭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 사업을 할 경우 TIPS를 포함한 다양한 정책 지원을 노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점이 의외로 간과되는 부분인데, 우리 나라는 여러 가지 정부의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스타트업에 대한 공적 지원이 생각보다 잘 되어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본사를 둘 경우 이 회사를 한국 회사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역플립의 단점
역플립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플립과 마찬가지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역플립이든 플립이든, 각 주주들의 지분을 교환(swap)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플립일 경우 미국 모회사의 지분과 한국 주주들의 지분을, 역플립일 경우 한국 모회사의 지분과 미국 주주들의 지분을 교환 또는 양수도해야 합니다. 특히 역플립을 고려하는 시점이 이미 플립을 한 번 한 이후라면 그만큼 당사자들의 수도 많고, 한국과 미국에 모두 투자자가 존재하여 이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아울러, 플립과 마찬가지로, 주식 양도에 따른 양도소득세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미국 법인의 주주들이 주식을 한국 법인에 어떤 형태로든 양도하여야 하는데, 회사의 기업가치가 높게 평가될 경우 미국에서 상당한 수준의 양도소득세가 발생하게 됩니다. 앞서 동의하였던 주주나 투자자도 막상 자신이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역플립을 계속 추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실무적인 측면에서 역플립은 플립보다 난이도가 높습니다. 미국에서는 회사를 설립할 때 반드시 자본금을 실제로 납입할 필요가 없고, 먼저 회사를 설립해 놓고 나중에 출자하는 방식이 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실무상 플립을 진행할 때는 대부분 Delaware C Corporation을 설립하면서 이 미국 회사와 기존 주주들이 주식 교환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불가능하므로, 역플립을 통해 한국 법인이 100% 모회사가 되려면 개별 상황에 따라 다른 방법을 강구하여야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역플립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앤리 법률사무소 윤현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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