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개원을 준비하던 의사 A씨. 병원을 새로 열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인테리어, 임대보증금 등 보통 수억 원 이상의 개원 자금이 필요한데, 자금이 부족해 고민하던 A씨에게 ‘브로커’ B씨가 접근했습니다. B씨는 “대출을 쉽게 받게 해 주겠다”며 A씨를 설득했고, 이에 A씨는 신용보증기금에 과장된 사업계획서와 각종 허위 자료들을 제출해 보증을 받아 개원 비용을 대출받을 수 있었습니다. 찜찜한 A씨에게, B씨는 “업계 관행이다”, “어차피 대출금을 나중에 갚을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며 안심시키는데, 과연 그럴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이처럼 대출 시장에서 브로커들이 주도하는 부당, 편법, 불법 대출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1. 부당 대출은 전형적인 사기에 해당
얼핏 생각하면 대출받은 돈을 나중에 갚기만 하면 괜찮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는 대출이 되지 않았거나 적은 금액만 승인이 가능했던 조건의 차주가 허위 서류를 제출하여 추가 대출에 성공하는 것은 금융기관이나 보증기관을 기망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로, 전형적인 사기죄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대출에 필요한 서류들을 과장하거나 허위로 작성해 부당하게 대출 승인을 받은 경우 그 액수에 따라 형법상 사기죄에서 그치지 않고, 훨씬 처벌 수위가 무거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이른바 ‘특경법’)으로 의율되기도 합니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이 특경법이 적용되는데, 이 죄는 징역 3년이 하한선이며 벌금형이 없습니다. 설령 집행유예를 받더라도 의사라면 면허 취소도 걱정해야 하는 처벌 수준입니다.
이에 더해, 만약 제출한 서류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허위의 문서라면 사문서위조죄가 성립할 수도 있습니다.
2. 브로커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브로커의 말을 믿고 서류를 제출했다고 하여도 그 책임이 면제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자료들을 금융기관 등에 제출한 주체는 브로커가 아니라 차주이고, 이로 인해 대출을 받아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사람도 차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법원은 이렇게 대출을 받은 차주를 피해자라고 보지 않고 브로커와 공모하여 금융기관 등을 기망한 가해자로 판단합니다.
물론 이러한 행위를 주도한 브로커가 사기의 주범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대부업법에 따른 대출모집인 등록을 하지 않은 무자격자이므로, 본인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차주로 하여금 허위 서류들을 직접 제출하게끔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이를 악용하여 주로 사회 초년생이나 사업 운영 경험이 적은 개원 의사들을 대상으로 “대출에 문제가 생겼으니 돈을 다시 보내라”고 속여 대출금을 편취한 뒤 잠적하는 브로커의 사례까지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수사는 수사대로 받고, 금전적으로도 막대한 손해를 보는 결과가 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3. ‘관행’이라는 말에 주의하자
브로커 B씨는 관행을 이야기하며 “남들도 다 이렇게 한다”고 강변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이런 불법 대출이 개원 업계에서 만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수수료를 수취하는 브로커들은 물론이고 자금이 부족한 개원 의사들 역시 어떻게든 대출을 받아 개원에 성공하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일종의 공생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행은 면죄부가 결코 아니고, 오히려 그런 말을 믿고 조작된 서류를 넘기면 법적 책임의 굴레를 스스로 쓰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도의적으로도, 신용보증기금과 같은 보증 제도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청년 창업가 등을 위한 사회안전망입니다. 이를 악용하여 개인의 신용보다 훨씬 큰 자금을 이끌어내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되며, 이 때문에 법은 이러한 부당 대출 내지 대출 사기 행위를 엄격히 처벌하고 있습니다.
최근 개원가를 중심으로 이러한 불법 대출을 알선하는 브로커들에 대한 수사가 다수 진행되고 있습니다. 혹시 내가 받는 대출이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해 볼 때입니다.
최앤리 법률사무소 윤현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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