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어떤 가게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가? 아마 그건 물건이나 서비스가 형편없어서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를 화나게 하는 건 무심한 직원의 태도거나, 불친절한 응대거나, 아니면 그저 ‘이 회사는 나같은 고객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느낌 때문이다.
경험 관리 전문기업 퀄트릭스가 전 세계 26개국 28,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감정적인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조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들이 물건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61%)과 고객 서비스(47%)라는 사실이다. 흔히 소비자들이 가격에 가장 민감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가격을 중요하게 여기는 비율은 43%에 그쳤다. 우리는 돈을 아끼는 것보다 인정받고 존중받는 느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젠데스크의 보고서는 더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 뇌가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오래 보관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이것이 소비 행동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2년도 더 지난 불쾌한 경험을 기억하는 사람이 46%나 되는 반면, 좋은 경험을 그토록 오래 기억하는 사람은 21%에 불과했다.
이런 통계를 보고 있자니 문득 진화론적 설명이 떠오른다. 우리 조상들은 달콤한 열매를 찾아낸 기억보다 독이 든 열매를 피하는 기억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소비 행동도 이런 오래된 생존 본능의 연장선상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 불쾌한 경험을 한 가게는 다시는 가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문득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거래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사고, 점심때 식당에서 밥을 사고, 퇴근길에 필요한 생필품을 산다. 그런데 이런 모든 거래가 단순히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고파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하나의 ‘경험’이 된다.
좋은 경험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내 필요와 감정을 이해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기업들은 더이상 제품이나 서비스만 파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팔려고 한다. 고객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고, 그들의 불편함을 미리 헤아리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려 애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흐름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차가운 거래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브랜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기업을 찾는다. 그래서 ‘고객 경험’이라는 말이 이토록 중요해진 것일까?
결국 모든 것은 이해다. 기업은 고객을 이해하려 하고, 고객은 기업이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만남과 대화, 거래가 바로 ‘경험’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찾는 것은 단순히 물건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나를 이해해주는 듯한 따뜻한 경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어떤 가게들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 아침마다 들르는 카페의 직원이 내 얼굴을 기억하고 웃으며 맞아주는 순간, 해외송금을 할 때 모국어로 상담해주는 상담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복잡한 보험 약관을 쉽게 설명해주는 직원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그저 소비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기업들이 그토록 연구하고 투자하는 ‘고객 경험’의 본질이 아닐까? 차가운 거래의 순간을 따뜻한 교감의 순간으로 바꾸는 것. 그래서 우리는 다시 그곳을 찾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들려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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